[우리말 바루기] 일상과 다르다는 말 ‘채’
의존명사 ‘채’는 주로 ‘-은 채(로)’ 형태로 쓰인다. 어떤 동작이나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는 걸 나타낸다. “옷을 입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노루를 산 채로 잡았다.” “벽에 기댄 채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 때나 ‘채’가 오지는 않는다. 옷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건 일상적이지 않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어야 옷을 입은 상태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노루도 살아 있는 상태로 잡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 잠은 누구나 누워서 잔다.
‘채’는 이처럼 일상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나 상태를 나타낼 때 자연스럽다.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구두를 신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같은 문장에서도 역시 알 수 있다. 고개를 숙이는 건 잘못을 저질렀다든가 뭔가 사정이 있을 때다. 그런 상태에서 말할 때 ‘채’를 가져온다.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는 상황에 따라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숙이고’에서는 일상적이지 않다는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방에 들어갈 때 구두를 신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다. 평범하지 않으니까 ‘구두를 신은 채’라고 하는 거다.
이런 기준이나 쓰임새에 기대면 다음 같은 문장은 어색해 보인다. “그는 모자를 벗은 채 인사했다.” 이 문장은 “그는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니까.
‘인사’ 대신 ‘거수경례’를 넣으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는 모자를 벗은 채 거수경례했다.” 거수경례는 모자를 쓰고 하는 게 더 일상적이다. “한복을 차려입은 채 절했다”는 “한복을 차려입고 절했다”가 자연스럽다.
한규희 기자 han.kyu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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