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의 문화난장] ‘아리랑 목동’ 대신 K팝…저항가의 세대교체

K팝과 응원봉이 주도하는 탄핵 촉구 시위가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K팝 콘서트’(워싱턴포스트) 같은 ‘축제 분위기’(가디언)라며 신기해한다. 로제의 ‘아파트’, 에스파의 ‘위플래시’ 등 K팝 최신 히트곡을 함께 부르며 응원봉을 흔드는 집회 참석자들의 모습은 8년 전 ‘박근혜 탄핵 정국’의 촛불집회 때와 확연히 다르다. 국회 바깥세상만큼은 86세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세대교체가 이뤄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2016년 겨울 촛불집회 때는 ‘하야가’가 거리를 휩쓸었다. ‘야야 야야야야 야야야야 야야야’로 시작하는 ‘아리랑 목동’의 첫 구절을 ‘하야 하야하야 하야하야 하야해’로 개사한 곡이다. ‘아리랑 목동’은 1955년 나온 옛노래지만, 86세대에겐 학창시절 응원가로 친숙했다.
![반짝이는 응원봉과 K팝 ‘떼창’은 시위 주도 세력의 세대교체를 상징한다. 사진은 지난 24일 서울 경복궁역 인근에서 열린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연합뉴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26/joongang/20241226002224349kdrc.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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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핵 집회 29%가 2030 여성
자발적 연대·헌신의 K팝 팬덤
참여민주주의 주체로 입지 강화
극단적 대립 정치 도구 우려도
」
4·19 땐 학교서 배운 '삼일절 노래' 불러
시위대가 ‘떼창’으로 부르는 노래는 그 집단의 특성을 드러낸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의 『광장의 노래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2018)에 따르면 1960년 4·19 혁명 때는 ‘삼일절 노래’ ‘광복절 노래’ 등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보급한 노래들이 자주 불렸다. 대중이 악보 없이 외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이 노래들이어서다. 1950년대에 초·중학교 교육을 통해 이를 익힌 당시 10대 후반∼20대 초반들이 시위의 주역이었다는 얘기다.
1987년 6월 항쟁의 주축은 ‘넥타이 부대’였고, 전국 곳곳 시위대가 모인 곳에서 ‘아침이슬’이 울려 퍼졌다. 1975년 금지곡으로 묶인 ‘아침이슬’을 저항의 아이콘으로 여기고 대학 시절을 보낸 이들이 이 노래로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준 것이다.
12·3 계엄령 선포로 촉발된 올겨울 탄핵 촉구 집회에선 2030 젊은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서울시 생활인구 통계를 분석해보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14일 여의도 집회 참석자의 29.37%가 20~30대 여성이었다. 2007년 소녀시대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가 이번 탄핵집회의 대표곡으로 부상한 것도 이들과 연관이 있다. 이 노래는 이화여대 학생들이 2016년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반대 농성 당시 경찰과 대치 상황에서 불러 화제가 됐다. 학내 비리를 파고든 이들의 단체행동이 ‘정유라 특혜’ 논란과 ‘최순실 게이트’를 거쳐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면서, ‘다시 만난 세계’는 여성의 연대와 투쟁을 상징하는 노래가 된다.
가수 선결제 응원은 K팝 '역조공' 문화
시위대의 노래만 K팝으로 바뀐 게 아니다. 집회 문화 자체가 K팝 스타일로 변화했다. K팝 팬덤 특유의 자발적 연대, 자발적 헌신이 새로운 형태의 정치 참여 문화를 만들어냈다.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흔들던 응원봉을 촛불 대신 들었다. 아이유와 뉴진스 등이 집회 참가자들을 위한 선결제 응원에 나선 것은 스타가 팬들에게 간식·선물 등을 제공하는 K팝계의 ‘역조공’ 문화와 연결된다.
K팝 팬덤은 성취 경험이 있는 집단이다. 열정을 공유한 개인들이 수평적 연대로 결집해 세상을 바꾼 경험이다. 세계 대중음악계의 변방에 머물렀던 K팝은 헌신적인 팬덤의 앨범 대량 구매와 해시태그 홍보, 음원을 연속 재생하는 ‘스밍 총공(스트리밍 총공격)’ 등에 힘입어 주류 문화의 반열에 올랐다. 미국 빌보드 시상식에 ‘K팝 부문’이 따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이들의 활동 영역은 K팝을 넘어 정치·사회 문제로 확장됐다. 스타의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기 위한 기부와 봉사활동, 공연장 일대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 등에서 시작해 점차 그 반경을 넓혔다. 미국 외교전문 매체 ‘더 디플러맷’은 2020년 일찌감치 K팝 팬덤에 대해 “디지털 지식이 풍부하고 정치적 관심이 높은 Z세대의 표본”이라며 “K팝 산업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고려돼야 하는 세력”으로 분석한 바 있다. 팬 네트워크를 활용해 많은 수의 온라인 사용자를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했다.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유세장에 방탄소년단 팬덤 아미가 집단으로 ‘노쇼’ 시위를 벌인 사건과 관련한 기사에서다.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참여민주주의의 주체로서 K팝 팬덤의 입지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를 통해 청년 세대의 주체적인 정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겠다는 기대가 크다. 동시에 우려도 있다. ‘내 새끼’ 의식이 강했던 맹목적인 팬덤 문화는 극단적 대립 정치를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지영 문화스포츠부국장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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