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철수 “5년짜리 왕 뽑는 체제로는 누가 대통령 돼도 탄핵”
“권력축소형 대통령제 필요”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이 핵심”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이 윤석열을 낳고, 윤석열이 이재명을 강력한 대권 후보로 만드는 이 비정상적인 고리를 끊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고 단언했다. 상대 진영에 대한 보복의 정치를 반복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게 시급하며, 그것은 현재의 기형적 정치 구조 개편을 통해 달성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안 의원은 24일 국회 의원사무실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를 야기한 정치 난맥상의 원인으로 고착화한 ‘정치 양극화’를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안 의원은 이런 난맥상에 대한 해법으로 크게 개헌과 선거제 개편 두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제왕적’으로 평가되는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분산시키는 개헌이다. 안 의원은 “한국의 대통령은 행정부 권력에다 인사권, 예산권, 감사원, 정부입법권까지 5대 권력을 모두 쥐고 있다”며 “상·하원의 강력한 견제를 받는 미국 대통령보다도 권한이 막강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렇다 보니 한국 대선은 대통령을 뽑는 일이 아니라 ‘5년짜리 왕’을 뽑는 과정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안 의원이 구상하는 개헌의 방향은 5대 권력 중 2~3가지를 대통령 손에서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안 의원은 이를 “권력축소형 대통령제”라고 말했다.
안 의원은 동시에 선거제 개편 논의가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60~70%가 사표가 되는, 국민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제도”라며 “민심과는 동떨어진 국회가 구성되다 보니 어떤 결과가 나와도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은 ‘나쁜 민주주의’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사표’를 최소화하기 위해 독일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또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안 의원은 “개헌과 선거제 개편 없이는 앞으로 모든 대통령은 탄핵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며 “‘난파선 선장 뽑기 대회’에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는 지금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안 의원과의 일문일답.
-계엄·탄핵이라는 비상 국면에서도 여야의 극단적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 양극화가 고착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설 때가 사람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국민통합의 최적기였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오히려 적폐청산 등을 통해 국민을 반으로 가르기 시작했고, 그때를 기점으로 양 진영 간 서로를 적대시하는 모습이 심화하기 시작했다. 그 양극화 경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양극화 해소 방안은 무엇인가.
“우선은 선거제를 개편해야 한다. 지금 소선거구제는 거대 양당에 극도로 유리한 제도다. 사실상 거대 양당 두 후보 중 한 사람을 뽑는 것 아닌가. 예컨대 내가 정의당 후보를 찍고 싶어도 당선 가능성이 없으니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찍게 된다. 사표가 거의 60~70%는 되는 것 같다. 이러다 보니 투표 비율과 국회 의원구성 비율이 너무 다르다. 국민의 의사가 반영이 안 된 국회를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선거제 개편의 방향은.
“사표를 줄여야 한다. 일단 독일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가장 좋은 방안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당이면 아무리 작은 당을 찍어도 그 표가 계산돼서 의원이 배출된다. 다당제가 될 수밖에 없고, 제1당이 과반을 못 얻으니 연정을 할 수밖에 없다. 타협, 양보, 합의가 필요하고, 중도적인 정치로 이어진다. 국민 생각 구성과 의회 구성 비율이 똑같으니, 국회에서 합의가 되면 국민이 받아들인다.
그게 아니라면 중대선거구제를 고려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과거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했다가 실패했다고 하는데, 그건 2명을 뽑았기 때문이다. 한 지역구에 2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는 지금의 거대 양당 구조를 더 심화시킬 뿐이다. 3명 이상을 뽑아야 제3의 정당이 나온다. 중대선거구제로 간다면 최소 3~4명을 뽑는 식으로 가야 한다.”
-최근 개헌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선거제 개편과 동시에 대통령 권력을 줄이는 방향의 개헌이 필요하다. 한국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보다도 막강한 5대 권력을 모두 쥐고 있다. 행정권력만 가진 미국 대통령도 상·하원의 엄청난 견제를 받는데, 한국 대통령은 행정권에다가 인사권, 예산권, 정부입법권을 갖고 있고, 감사원까지 행정부 소속으로 두고 있다. 이런 권력의 절대 반지를 끼게 되면 누구든 완전히 눈이 돌아가게 된다. 개헌의 방향은 대통령의 이런 권력을 축소하는 게 핵심이다.”
-기존에 논의되는 대통령제 개편 방안은.
“하나씩 보자. 의원내각제는 안된다. 국민은 대통령보다 국회의원을 더 신뢰하지 않는다. 또 앞서 얘기한 선거제 개편 없이는 거대 양당 중 다수당 권력을 잡은 사람이 자동으로 총리가 되는 것인데, 이것은 지금보다 더 최악이다. 이원집정부제는 간단하다. 윤석열 대통령에 이재명 총리가 되는데 국정 운영이 되겠나.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제일 잘못 생각하는 게 4년 중임제다. 지금 대통령 권한을 그대로 둔 채 4년 중임제를 하면 ‘5년짜리 왕’을 ‘8년짜리 왕’으로 만드는 것밖에는 안 된다. 그래서 권력축소형 대통령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권영세 비대위원장 지명을 어떻게 보시는지.
“지금까지 대통령부터 당대표까지 ‘0선’ 실험을 계속했는데, 이제는 당의 경험 있는 중진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가급적 수도권이나 충청권 의원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영남당’ ‘극우당’ ‘친윤당’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친윤 색채가 약한 분이었으면 했다. 장관을 하셨으니 권 의원을 아예 친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무리하게 친윤적 행태를 하진 않았다. 이제 탄핵안은 헌법재판소에 맡기고, 수사는 수사기관에 맡기고, 나머지 중요한 민생을 챙기는 일을 여당이 정부와 앞장서서 해 나가야 한다.”
-두 번의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서 모두 찬성표를 던졌는데.
“국회의원이라는 게 항상 다수 국민 뜻과 당론이 배치될 때는 헌법과 국회법에 따라 소신대로 자기가 생각하는 다수 국민의 뜻을 따르라고 명시돼 있다. 저도 고민했다. 하지만 이건 대통령이 국회 의결을 방해하려고 군대를 보냈잖느냐. 이건 명백한 헌법 파괴행위다. 국민 신뢰도 잃고, 국제사회 신뢰도 잃은 사람이기 때문에 더는 대통령으로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물론 자진사퇴 후 연착륙이 더 좋은 방안이었지만, 스스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기 때문에 탄핵밖에는 답이 없었다.”
-만약 조기 대선이 현실화한다면 도전할 의향이 있나.
“솔직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직 헌법재판소 결정도 안 났다. 이미 헌재에서 탄핵이 결정 난 것처럼 막 출마 선언하고 그러는 분들은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대선을 경험해 보니 정말로 자기가 잘 할 수 있고 공헌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그 일이 많은 사람이 원하는 방향과 들어맞을 때 결국 그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것 같더라.”
정현수 구자창 기자 jukebo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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