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윤석열은 국민 마음속에서 이미 지워졌다" [월간중앙]

2024. 12. 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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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인터뷰|보수 원로 헌법학자, 이석연 전 법제처장

“비상계엄 5일 전 만난 이재명, 계엄 걱정하길래 무시했는데…”
“계엄령 요건, 형식, 절차 모두 위헌…탄핵·내란죄 못 피할 것”
“헌법 준수 의지 강한 대통령 나와 4년 중임제 개헌 추진해야”

" 사기(史記)에 ‘부지기군 시기소사(不知其君 視其所使)’라는 말이 있다. 군주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으면 그가 부리는 신하를 보라는 뜻이다. 지금 대통령을 보라. 한 자리 바라보는 부나비 같은 사람들 말고 직언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지. "

보수 성향의 원로 헌법학자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12월 12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서울의 개인 사무실에서 가진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을 위반한 명백한 내란행위라고 규정했다. 최기웅 기자

이석연(70) 전 법제처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정부 법제처장,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대표를 지냈고,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선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보수의 새 판 짜기에 막후 역할을 했던 그로선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보수를 바라보는 심정이 누구보다 비통했을 터다. 깐깐하기 그지없는 헌법학자인 이 전 처장은 윤석열 정부 들어 특히 여러 경로로 위험 징후를 경고하고 쓴소리를 마다치 않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잠수함의 토끼’였고, ‘탄광 안의 카나리아’였다.

지난 11월 2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직후 이 전 처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윤 대통령에게 할 말이 많았던지 흔쾌히 수락했다. 다만 그는 정국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조금 시간을 두고 만나자고 했다. 뜬금없는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를 예감했던 걸까. 이 전 처장 자신도 “놀랐지만, 돌이켜 보니 징후가 있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기 이틀 전인 12월 12일 서초동에 있는 법무법인 서울 사무실에서 이 전 처장을 만났다.


“부정선거 주장은 헛소리… 이긴 선거엔 입 닫아”

Q :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기 5일 전에 이재명 대표를 만났는데 뭔가 짚이는 게 있었나?

A :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나서 이 대표가 했던 말이 번뜩 생각났다. 여의도 63빌딩에서 만나 20분간 공개적으로 대화하다가 비공개로 돌렸는데, 이 대표가 대뜸 ‘계엄령이 염려된다’고 하더라. 내가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했더니 ‘여러 낌새로 봤을 때 적어도 경비계엄 정도는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윤 대통령 성격상 그런 약한 거로 할 사람은 아닌 것 같다’면서 걱정을 하는 거다. 그러면서 내게 널리 알려 달라고도 했다. 아무래도 보수적 학자인 내가 얘기하면 좀 더 관심을 환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난 그때 계엄은 있을 수 없고, 만약 선포해도 국민 저항권 행사의 대상이 되는 데다, 계엄군도 국민의 편에 설 거라고 잘라 말하고서 얘기를 끊었다.”

Q : 정말 온 국민이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충격이 컸다.

A : “그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들이 비상계엄이 선포됐다고 깨워서 알았다. 창피하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고시 합격하고 검찰총장, 대통령까지 됐는지… 대통령이 말끝마다 헌법정신, 헌법 원칙 찾고 그러는데, 헌법 조문이나 제대로 읽고서 포고령을 손질했는지 묻고 싶다. 자기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일으킨 친위 쿠데타로 볼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두 번째 탄핵소추안 표결을 이틀 앞둔 12월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끝까지 주장했다. 이틀 뒤 국회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204명 찬성으로 의결했다. [사진 JTBC]

Q : 조금 전 윤 대통령이 네 번째 담화에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봤나?

A : “오늘 담화는 국민을 향해서 전쟁하겠다는 선포나 다름없었다. 마지막까지 어떻게 하면 여론을 호도할까 궁리하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는 거다. 극우 유튜버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선동해서 90%가 넘는 국민과 편 가르고 혼란을 조성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뻔히 보여서 안타까울 뿐이다.”

Q : 오늘 담화는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정당성을 내세우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부정선거가 의심된다는 게 이유가 될 수 있을까?

A : “난 부정선거 주장하는 사람을 정신병자라고 본다. 서버 조작 못 한다. 부정선거 얘기하는 사람들은 자꾸 진 선거만 부정선거라고 주장한다. 그럼 0.7% 차이로 이긴 대통령선거는 어떻게 설명할 텐가? 선거 결과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고작 0.7% 조작 못 할까? 이런 유치한 선동과 주술에 대통령이 빠져 있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의 명분으로 삼은 부정선거 의혹은 극우 진영의 단골 소재다. 이들은 보수진영이 승리한 선거는 문제 삼지 않고 패한 선거만 부정선거라고 주장한다. 2024년 7월 29일 수원지검 앞에서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부정선거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중앙포토]

Q : 야당에 겁만 주려고 했다는 식의 변명도 황당하다.

A :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는데, 자유민주주의가 뭔가? 국민이 선출한 대표가 국회에서 국민을 대신해 표결로 국정을 처리하는 거다. 자유민주주의를 총칼로 지키나? 머릿속에 아무것도 든 것 없는 ‘헌법 무지렁이’가 헛소리하는 거다. 야당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거대 야당을 누가 만들어줬나. 대통령이 못하니까 국민이 만들어주지 않았나. 국민주권주의 원리를 무시하고 자유민주주의 기본 이념도 무시하면서 그런 가당치도 않은 말을 지껄일 수 있나.”

Q : 비상계엄 선포 행위는 사면권이나 외교권처럼 고도의 정치성을 띤 통치행위다, 이런 주장도 있다.

A : “그걸 궤변이라고 한다. 헌법을 제대로 안다면 그런 얘기 못 한다. 통치행위란 과거 군주제적 시각의 헌법 이론의 산물이어서 지금은 거의 인정받지 않는다. 설사 통치행위라도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어야 한다. 헌법을 벗어나는 순간 헌정질서 파괴, 국헌 문란이다. ”


“헌법기관 국회의 권능 정지, 그게 바로 내란”

이 전 처장은 ‘헌법 지킴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이번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거쳐 참여정부 때 신행정수도특별법 헌법소원을 제기해 위헌 결정을 끌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Q :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해 몇몇은 헌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 정당한 권한 행사였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A : “대통령도 그랬고, 정치학자들 중에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 간혹 있다. 계엄 선포 행위는 헌법과 하위 법률인 계엄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대개 일반적인 법률은 헌법보다 하위 법률에 따라 세부 요건이 규정되는데, 계엄에 관해선 계엄법보다 헌법에 더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 헌법에 의해 발동되는 것이지 계엄법에 의해 발동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가 일어나서 군사상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한해 계엄령을 발동한다고 명백히 헌법에 규정돼 있다.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자. 지금이 군대를 동원해 질서를 유지해야 할 만큼 혼란한 상태였나?”

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 밤 계엄군이 국회 본청에 진입해 국회 보좌진과 대치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Q : 절차적 요건은 어떤가?

A : “국무회의를 형식적으로나 거쳤다고 하는데 이것도 문제가 있다. 헌법 82조는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고, 문서에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副署), 즉 반드시 서명해야 한다. 군사 명령도 마찬가지다. 또 계엄을 선포하고 해제할 때에도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다. 지금 증언으로는 국무회의 개회선언도 없이 한 2, 3분 자기 얘기만 하다가 뛰쳐나가서 발표했다는 것 아닌가.”

Q : 회의 자체가 성립됐다고 볼 수 없는 상황인 건가?

A : “한덕수 총리가 그랬잖나. 자기나 다른 사람 누구도 서명한 적 없고, 문서도 없다고 말이다. 매우 중요한 문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행위 자체가 헌법이 정한 절차를 안 거쳤기 때문에 위헌이 되는 거다. 사면권이나 외교권의 경우 헌법에는 대통령의 재량행위로 나온다.”

Q : 실제 비상계엄 선포 이후 행위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A :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능을 정지시키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걸 두고 ‘쿠데타’, 내란이라고 한다. 두 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냐는 변명도 말이 안 된다. 내란은 예비음모 단계에서도 처벌한다. 실행에 착수하면 5분이든 10분이든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 말처럼 두 시간도 아니다. 해제까지 5시간이다. 윤 대통령 스스로 내란을 획책했음을 자백한 것이고, 내란이 미수에 그친 걸 본인이 아쉬워하는 장면이다.”

Q : 국회를 봉쇄하고 군이 국회의사당 본청에 진입한 건 누가 봐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A : “대통령이 헌법 교과서 한번 제대로 봤는지 의심스럽다. 밝혀진 바로는 계엄포고령을 대통령이 최종 수정했다고 하는데, 초헌법적·위헌적인 내용 일색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돼도 국회 권한은 손 못 댄다. 그래야만 국회가 계엄 해제도 요구하고 심사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정치, 정당 활동 금지한다면서 국회에 진입했잖나. 박정희 때 유신헌법 만들려고 국회 해산한 것 이후로 초헌법적인 조치다.”

Q : 대부분의 국민이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검사 출신 대통령이 이렇게 행동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A : “국민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하는데, 윤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한 10%나 될까 말까 한 사람들 모아서 사회 혼란 조성하겠다는 건가. 이제 대통령 직무 정지되면 아예 보도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전파를 주는 것도 낭비다. 국민이 왜 거대 야당으로 만들어줬는지 그걸 알아야지. 야당과 협치하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라는 것 아닌가. 김건희 특검법을 자기 가족 지킨다고 세 번이나 부결하고, 옛날 왕들도 그렇게는 안 했다.”


“헌법재판관, 사사로운 인연과 성향에 휘둘리지 않아”

Q : 대통령의 폭주를 막기에 시스템에 문제가 있던 건 아닐까.

A : “본래 제도 자체는 선악이 없다.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다. 시스템으로는 다 돼 있다. 위헌행위로 탄핵하고 내란죄로 처벌하면 되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을 가를 헌법재판관 6인. 왼쪽부터 김복형, 정정미, 이미선 재판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김형두, 정형식 재판관. 우원식 국회의장은 공석인 재판관 임명을 서둘러 9인 체제를 복구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Q : 기사가 나갈 때쯤이면 이제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될 거다. 재판관 성향 따져가며 예상이 분분하다.

A : “재판관 전원 일치로 파면 결정이 나올 거라 본다. 적어도 40년에 걸친 내 헌법적 경험과 우리가 걸어온 헌정사를 볼 때 내 판단은 확신에 가깝다. 계엄군이 국회에 진입하는 걸 국민이 다 지켜봤다.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극단적 사고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내가 임명했으니 나를 따르겠지’라는 얄팍한 기대는 접는 게 좋다. 우리 헌법재판관들의 헌법적 양심과 양식은 결코 그런 사사로움에 휘둘리지 않는다.”

Q : 완전체에서 3명 부족한 6명이 심리를 진행한다는 게 좀 못 미덥긴 하다.

A : “박근혜 대통령 당시 재판관 전원 일치로 탄핵 인용됐다. 윤 대통령 탄핵 요건의 중요성과 명백성과 국가 해악성에 비하면 박 전 대통령은 새 발의 피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당시 보수 성향 재판관이 더 많았지만 모두 탄핵에 찬성했다. 헌법재판은 본래 정치 재판이다. 헌법 자체가 정치적 성격을 지닌 규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핵 심판은 당시의 정치 상황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국민 마음속에 대통령 윤석열은 이미 지워졌다.”


“윤 대통령 정상참작 요소는 ‘심신미약’뿐”

Q : 형사소송이 진행 중이면 탄핵심판을 멈출 수 있다는 변수도 있다고 한다.

A : “그건 일반 형사범에 관한 것이지, 국가가 대내외적 위기에 처해 있는데 헌재가 몇 달 걸릴지 몇 년 걸릴지도 모를 내란죄 재판을 기다리겠나. 당치도 않은 논리이고 한가한 소리다. 그 조항은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설령 그렇다 해도 그 조항 효력부터 정지해 놓고 탄핵심판을 진행할 거다.”

Q : 지금까지 말씀대로라면 윤 대통령이 법원에서 주장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보인다.

A : “지금까지 상황에선 정상참작 요소가 전혀 없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심신미약을 주장할 순 있겠다. 심신미약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오늘 대통령 담화를 보고 저건 정상적인 사람, 법조인 출신 대통령 입장에서 나오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오죽하면 내가 이런 얘기까지 꺼내겠나.”

Q :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면서 이재명 대표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보수 원로로서 그를 만나보니 어떻던가?

A : “굉장히 실용적인 사람이었다. 지난 대선 때 3일 전쯤 이 대표가 내게 지지 선언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그때 정중히 거절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 원칙을 준수한다는 것과 기득권층에 대한 한풀이식 정책 안 하겠다고 하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곧바로 발표하더라. 지금 윤석열 보니 그때 지지하지 않은 게 아쉽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이 대표는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라고 하더라. 유연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Q : 일각에선 인기에 영합한 포퓰리스트, 독재자라고 비난하기도 하는데, 의외다.

A : “이념적으로 경도돼 있는 것 같진 않다. 빈곤했던 과거와 노동운동 등의 경험 때문에 맺힌 한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만나서 주 52시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것 예외를 넓혀 달라고 했다. 또 소액 주주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강화하는 상법 개정에 대해서도 기업에서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는데 다른 방법 있지 않냐고 하니 이 대표도 자본시장법을 먼저 개정하면 된다는 걸 알더라. 지금 민주당의 당론은 상법을 개정한다는 건데 이 대표가 막고 있다. 그런 유연한 행보를 계속 이어가라고 했다.”

비상게엄 사태를 계기로 대통령 임기 5년 단임제 대신 4년 중임제로 바꾸는 헌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20대 대선을 앞둔 지난 2021년 12월 30일 국회에서 김두관 민주당 의원(오른쪽 네 번째) 등 개헌국민연대 회원들이 ‘국민주권, 지방분권, 균형발전을 위한 개헌국민연대 개헌안’을 발표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Q : 이 전 처장은 그동안 개헌 필요성을 늘 강조해왔다. 이번 사태를 통해 5년 단임제의 폐해나 개헌의 필요성에 많은 국민이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개헌의 적기가 아닐까.

A : “2002년 대선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이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번에 이 대표를 만난 가장 중요한 이유도 이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면 4년 중임제로 개헌해 자기는 임기 4년만 하고 물러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도 호응했고, 김진표 국회의장이 재작년 8월에 여야 합의해 임기 1년 단축 개헌안을 가져오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게 이뤄지지 않았던 거다.”


새 헌법은 4년 중임제 적당… 임기 단축 없이 개헌 가능

Q : 그땐 지방선거랑 시기를 맞추려고 임기 1년 단축안이 나왔던 건데 이제 조기 대선을 치르면 그럴 필요는 없나?

A : “간단하다. 누가 되든 임기 단축 없이 퇴임하는 날부터 새 헌법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부칙을 달면 된다. 헌법 개정안을 만들어 여야 합의하고 국회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부치고, 새 헌법을 공포하기까지 과정을 거치려면 아무리 빨라도 1년은 걸린다.”

Q : 새 헌법은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하나?

A : “권력구조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기본권, 인공지능(AI) 등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기본권 조항이 필요하다. 헌법학자로서 개인적으론 내각제가 적당하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은 그래도 대통령은 내 손으로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큰 것 같다. 4년 중임제에 부통령제, 결선투표제 도입 정도만 해도 좋다.”

Q : 앞으로 대통령이 꼭 갖췄으면 하는 자질에 대해 한 말씀 부탁한다.

A : “헌법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헌법 정신을 준수하고 구현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그게 바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시장경제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는 거다. 그리고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결단과 선택을 스스로 창출하지 않고 자기한테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사람은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왜 다시 선택했겠나. 그리고 이번에는 개헌을 꼭 실천하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책상에 있는 핸드북이 눈에 띄었다. 이 전 처장이 쓴 〈사마천 사기 산책〉(범우사, 2020)이란 수필집이다. 무심코 책을 펼치자 눈에 들어온 제목, ‘직언하는 신하 없이 성공한 군주 없다’. 이 전 처장은 사마천의 〈사기〉를 ‘직(直)’이란 한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고 했다. ‘곧다, 바르다’는 뜻의 ‘直’은 ‘十(열 십)’과 ‘目(눈 목)’, ‘乚(숨을 은)’의 합자라는 해석이다. 즉, ‘열 개의 눈으로 숨어 있는 것을 바르게 본다는 뜻’이란 거다. “직언하는 사람이 이 정권에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이 전 처장의 눈은 허공을 향했다.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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