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짚모자에 볏단 든 '박정희 동상'에 갈가리 찢긴 대구 민심

조정훈 2024. 12. 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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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야당 반대에도 동대구역 광장에 동상... 홍준표 "대구 3대 정신에 박정희 기념물만 없어"

[조정훈 backmin15@hanmail.net]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만규 대구시의회 의장, 강은희 대구시교육감 등이 23일 오후 동대구역 광장에서 박정희 동상 제막식을 가진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조정훈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구의 3대 정신을 기린다며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겠다고 밝힌 지 10개월 만에 동대구역 광장에 동상이 들어섰다. 하지만 대구의 민심은 찬반 양론으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대구시는 23일 오후 동대구역 광장에서 박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을 열었다. 제막식에 지역 국회의원은 한 명도 오지 않았고 강은희 대구시교육감과 이만규 대구시의회 의장, 대구시의회 상임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제막식이 진행되는 동안 박 전 대통령 동상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홍준표는 대구시장직을 사퇴하라"고 외친 반면 찬성하는 보수단체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홍 시장은 "대구에 3대 정신이 있다고 제가 쭉 이야기해 왔다"며 구한말 국채보상운동과 이승만 정권 당시 독재 정권에 항거한 2.28자유정신, 우리 민족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조국 근대화를 첫 출발했던 산업화 정신을 들었다.

이어 그는 "대구에 2.28공원도 있고 2.28탑도 있고 국채보상운동공원도 있는데 유일하게 없는 것이 산업화 정신의 출발점이었던 상징물이 없는 것"이라며 박정희 동상 건립은 "지난 5월 시의회의 동의를 얻어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23일 오후 동대구역 광장에서 진행된 박정희 동상 제막식에 앞서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
ⓒ 조정훈
홍 시장은 국가철도공단으로부터 관리권을 이양 받았기 때문에 동상을 세우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권한이 대구시에 있다며 조례도 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동상 건립을 규탄하는 시민들을 한동안 쳐다본 뒤 "요즘 시국이 어수선하다 보니까 저 사람들이 또 기승을 부리는 것"이라며 "신경 쓸 것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공과는 역사적 평가가 다 있다. 그러나 공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대구시민은 잊어서는 안 된다"며 "시민들 70% 이상이 (동상 건립에) 찬성한다"며 "저래(저렇게) 해본들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 '박정희 동상' 항의 시민들... 홍준표는 "저렇게 해본들" [현장] 2024년 12월 23일 동대구역 광장에서 '박정희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이날 제막식 전부터 '박정희 동상' 설치 반대 시민들은 "홍준표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항의했다. 반면, 홍준표 대구시장은 "역사적 인물에는 공과 과가 다 있다"라며 '대구만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을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취재 조정훈 기자 ⓒ 조정훈
 대구시가 동대구역 광장에 세운 박정희 동상.
ⓒ 조정훈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박 전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 6.25전쟁 등으로 굴곡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산업 보국과 교육입국을 내세워 선진 대한민국의 초석을 굳게 다지신 분"이라고 칭송했다.

그는 "특히 사범학교 출신으로 교육에 대한 관심과 지식이 남다른 대통령이셨다"며 "중학교 의무교육, 고교 평준화, 실용주의 교육 등 수많은 교육개혁을 추진하셨고 이는 교육의 기회 균등과 우수한 인재 양성으로 이어져 우리나라 교육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대구시교육청은 박정희 대통령의 교육 개혁과 그 바탕이 된 정신을 오롯이 계승하여 아이들이 더 좋은 학교에서 더 행복한 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의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밀짚모자에 볏단을 들고 있는 높이 3m의 박정희 동상이 모습을 드러낸 제막식은 불과 30여 분만에 끝났지만 제막식을 앞두고 찬반 단체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범시민운동본부, 박정희 동상 반대·홍준표 시장 사퇴 촉구
 박정희우상화반대범시민운동본부는 23일 오전 대구시청 산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동상 반대와 홍준표 대구시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 조정훈
 동대구역 광장에서 박정희 동상 제막식이 열린 23일 오후 박정희우상화반대범시민운동본부 시민들이 동상 철거를 외치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 조정훈
박정희우상화반대범시민운동본부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동상 반대와 홍준표 시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범시민운동본부는 이날 오전 대구시청 산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란범죄 비호하는 홍준표 시장, 내란원조 불러내는 박정희 동상 걷어치우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각계의 반대 목소리가 있었지만 홍 시장은 기어이 박정희 동상을 세우고 말았다"며 "윤석열의 12.3 내란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지금 대권 야욕에 눈이 멀어 내란의 원조인 박정희의 망령을 불러내는 홍준표의 반역사적이고 반민주적인 작태를 엄중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의 함성, 자유의 물결이 넘쳐야 할 시민의 광장에 '내란원조'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가당치 않다"며 "동대구역 광장의 소유권을 가진 국가철도공단과의 협의도 없이 동상 설치를 강행한 것은 법적,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또 "정치사회적으로도 수많은 갈등이 유발될 것이 뻔한데도 홍 시장은 동상 설치를 강행했다"며 "이는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위한 대권 놀음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홍 시장은 대구시장의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범시민운동본부는 오후에도 동대구역 광장에서 박정희 동상을 철거하라며 규탄대회를 이어갔다.

이들은 동대구역 '박정희 광장' 표지판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동상을 철거할 것과 홍준표 시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홍준표 시장이 제막식장에 들어서자 야유를 보냈고, 제막식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경찰, 대구시 공무원들과 대치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은 23일 오전 동대구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희 동상 설치 반대와 홍준표 시장을 규탄했다.
ⓒ 조정훈
앞서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도 이날 오전 동대구역 광장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박정희 동상 철거와 홍준표 시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허소 대구시당위원장은 "독재자 찬양을 강요하면서 도시의 다양성과 대한민국 정체성을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인권 없는 독재국가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타락시킨 박정희 동상은 시민에 의해 반드시 끌어내려질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동대구역 광장에 불법으로 설치된 박정희 동상은 대구의 다양성을 짓밟아 도시의 미래와 경제력을 갉아먹고 대한민국의 헌법과 정체성을 부정하도록 선동하는 것"이라며 홍준표 시장과 대구시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박정희 동상 제막식이 열린 23일 오후 동대구역 광장에 모인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와성조기 등을 들고 환호하고 있다.
ⓒ 조정훈
하지만 박정희 동상 찬성 단체들은 오전부터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와 집회를 열어 동상 반대 단체들을 향해 막말을 퍼부었다.

이들은 "누구 때문에 먹고 살게 됐는지 아느냐"며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한으로 가라", "문재인 구속, 이재명 구속"을 외치기도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개막식장에 들어서자 "홍준표 만세"를 연호하며 환호했고 개막식이 진행되는 시간에는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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