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87년 체제, 국민 둘로 쪼개…선거법만 바꿔도 해결" ['포스트87' 길을 묻다]
■ ‘포스트 87’ 길을 묻다
「 12·3 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권력자 개인의 과오만큼 '87년 체제'의 불완전성을 고스란히 노출했다는 평가다.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야할까. 이에 주요 정치인의 의견을 릴레이로 전달한다. 첫 인터뷰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다.
」
지난 7일 국회 본회의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되자, 당론으로 ‘투표 거부’ 방침을 정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우르르 퇴장했다. 텅 빈 여당 의석에는 안철수 의원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앉았다. 지난 대선 사전투표 전날(2022년 3월 3일) 윤 대통령과 단일화하며 ‘공동 정부’를 약속했으나, 2년 9개월 만에 탄핵안 통과에 앞장선 처지가 됐다.
안 의원은 2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양극단 정치가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까지 둘로 나누고 있다”며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정치를 시작한 목적 중 하나가 국민까지 둘로 쪼개는 모습을 바꾸자는 것이었는데, 정치 상황은 훨씬 더 나빠졌다”며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굉장히 절박하다”고 말했다.
Q :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헌정 사상 세 번째다.
A : “앞으로는 모든 대통령이 탄핵의 위험에 빠질 거라고 본다. 다음에 누가 집권하든 상대방은 약점을 파고들어서 탄핵하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할 거다. 이제는 정치 시스템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
Q : ‘87년 체제’ 극복을 위해 개헌을 하자는 건가?
A : “사람들은 개헌 얘기를 하지만, 더 중요하고 먼저 해야 하는 건 선거법 개정이다.”
Q : 왜 그런가.
A : “현재 선거제는 승자독식 소선거구제로, 극단적인 양당제에 가장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 합리적인 중도 정당이 있어도 모두 사표(死票)로 전락한다. 그러니 양당이 상대방을 죽이기 위한 대결만 펼친다. 이걸 바꾸는 건 복잡한 개헌이 아니라 선거법 개정만으로도 가능하다. 선거제만 바꿔도 정치 문화가 굉장히 많이 바뀔 것이다.”
Q : 선거법도 이견이 심하다.
A : “방법은 여러 가지다. 도농복합형(도시는 중대선거구제, 농촌은 소선거구제)도 가능하고, 독일처럼 정당 득표에 의석을 맞추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도 있다. 어쨌든 다당제가 가능한 선거제로 가면, 갈등을 해소하고 대화·타협·합의가 가능한 ‘진짜 정치’가 가능해진다.”
Q : 대통령 4년 중임제 같은 개헌도 해법으로 거론된다.
A : “양당에 유리한 선거제를 그대로 두고 대통령 4년 중임제를 도입하면 국민 갈등만 더 심해진다. 대통령 임기 첫해부터 탄핵 빌드업을 시작하면서 임기 내내 탄핵 전쟁이 이어질 것이다.”
Q :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나 영국·일본 같은 의원내각제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A : “이원집정부제였으면 윤석열 대통령에 이재명 총리 체제였을 것이다. 그러면 나라가 운영되겠나. 행정부 내부에서 계속 싸울 거다. 의원내각제는 독일처럼 잘 작동하는 곳도 있지만, 일본처럼 수상이 수시로 바뀌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 선거제를 그대로 두고, 의원내각제로 바꾼다? 장담컨대 지금보다 나빠진다. 선거제부터 고민해야 한다.”
헌법재판관 임명, 특검법 거부권 행사 등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를 놓고 여야가 사사건건 대립하는 상황에 대해 안 의원은 ‘국가 기구의 정상 작동’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우리나라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경제도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라고도 했다.
Q : 헌법재판관 3인을 임명해야 하나.
A : “이번이 국회 추천 몫 아닌가.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하더라도 임명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민주당도 국가 기구가 제대로 정상 작동하도록 윤 대통령 이외엔 탄핵소추를 철회하는 등 협조해야 한다.”
Q : 탄핵 표결에 처음부터 찬성했다.
A : “사실 탄핵은 국민 분열이란 후유증이 생긴다. 그래서 처음엔 대통령 자진 사퇴, 그리고 거국 중립 내각을 만들어 연착륙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통령께선 퇴진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해 차선책이던 탄핵에 찬성했다. 미리 의원총회에서도 말했다.”
Q : 윤석열 정부가 왜 실패했다고 보나.
A : “집권엔 찬성하지 않던 사람도 설득하고 끌어들여서 더 넓은 ‘통치 연합’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선거 때 있던 ‘집권 연합’을 깨고 이념 전쟁에 사로잡혔다.”
Q : 어떤 모습이 그랬나.
A : “집권 초창기부터 ‘공동정부를 하겠다’는 약속을 깨고, 마이너스의 정치를 했다. 제가 정리한 110대 국정과제엔 ‘의료 개혁’도 없었다. 연구·개발(R&D) 예산을 깎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Q : 국민의힘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A : “국민께 사과하고 혁신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미래가 있다. 최근 자꾸만 극우당, 영남당, 친윤(親尹)당의 모습으로 가고 있는데, 좋지 않다. 급속하게 극우 정당으로 가버리면 이재명 정당, 전체주의 정당이 대부분 지지를 가져가 버린다. 민주주의 퇴행이다.”
Q : 그래도 ‘이재명 대통령은 막아야 한다’는 정서가 강하다.
A : “보수층에서 ‘대통령 탄핵은 바로 이재명 대통령’이란 공포감에 많이 사로잡혀 있는데, 둘은 다른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사법리스크에 쌓여 있다. 특히 선거법은 2심과 대법원 최종심이 각각 석 달 안에 끝나야 한다. 국민은 균형 감각을 갖고 있다. 역대 최고의 의회 권력을 가지고 있는데 대통령 권력까지 주겠는가. ”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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