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주먹밥 쥐던 손, 여의도에서 재현될 거라 직감"
역동적이다, 힘차고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X세대든, MZ세대든, 다 그렇습니다. 20대는 원래 역동적입니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를 통해 그 당연한 사실과 마주하고 감동하면서 한편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기성세대가 많습니다. 홍사훈 기자는 "우리가 세상을 바꿔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철저한 착각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거리에 선 20대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김예진 기자]
▲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재표결이 이뤄지는 14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서면의 한 카페에서 선결제 관련 안내문이 놓여 있다. 2024.12.14 |
ⓒ 연합뉴스 |
'시위도 밥먹고' 웹사이트 운영진이 이제까지 받은 메시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선결제로 꼽은 사례다.
'시위도 밥먹고' 운영진은 지난 17일 서면 인터뷰에서 "선결제처럼 사람이 사람을 돕고 싶은 마음은 인프라의 부재 따위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지금까지도 굳건히 사이트를 운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시위도 밥먹고'는 윤석열 탄핵 찬반 집회 주변의 선결제 매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웹사이트다. 이 사이트는 여의도와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 인근 매장에 선결제가 이어지면서 지난 8일 만들어졌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 화제가 됐다.
운영진은 두 사람이다. 인터뷰에 응한 A씨는 두 사람 모두 대학 생활과 직장을 병행하고 있는 20대 초반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A씨는 현재 대학생으로 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있고, 프로그램을 개발한 B씨 역시 대학생으로 IT기업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 12.3내란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표결에 붙여질 예정인 7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 모인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국민의힘 의원들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
ⓒ 권우성 |
이에 대해 A씨는 "이 사이트는 단순히 선결제 매장을 위치 기반으로 리스트화한 서비스가 아니다"며 "여의도는 대규모 시위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혼잡한 인파 속에서 선결제 수령과 대기로 인해 줄이 길어지거나 헛걸음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말했다.
"저는 여의도 시위에 한 차례 참여한 적이 있어요. 카페 쪽으로 향하는 길에 구조물이 놓여 있거나 꽤 복잡한 경우가 있더라고요. 특히 여의도 공원과 맞닿아있는 경계선에 나무나 잡풀이 자라 있는 둔덕이 매우 위험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둔덕들이 마치 선을 그리듯 넓은 공간에 드문드문 있었기 때문에, 인파가 많은 상황에서는 '자칫하다 정말 사고가 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 혹시 이태원 참사를 염두에 두고 사이트를 개설한 건가요.
"네, 맞습니다. 저는 이태원 참사 같은 압사 사고의 원인이 '사람들이 부주의하게 놀러 나가서 현장이 과밀해졌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러한 주장은 폭력적일 뿐더러, 또 다시 발생할 여지가 있는 사고를 예방하는 것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말입니다. 적절한 군중 통제가 사고 예방에는 아주 중요합니다. 조금이라도 인파가 한 곳에 과밀되는 것을 분산시키도록 서비스를 개발하고 싶었습니다."
▲ 사이트 <시위도 밥먹고> 신규 선결제 추가/수정 요청 구글폼 |
ⓒ 구글폼 캡처 |
그는 "2~3건이면 쉬운 작업이겠지만, 실시간으로 선결제 수량과 품목을 반영하는 건 어마어마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지난 14일에는 잠깐 바깥 바람을 쐬러 나갈 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잠깐 바람 쐬러 5분 정도 나갔다 오면 DM이 15개 넘게 쌓여있었어요. 시민분들의 열정적인 선결제 릴레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것들은 중복 제보도 많아서 저희 측에서 자체적으로 필터링을 하기도 했습니다. 둘 다 본업이 따로 있는데, 틈틈이 시간을 써서 일을 했습니다. B의 경우는 본업으로도 정신이 없을 텐데, 잠을 줄여가며 일을 해줘서... 정말 고맙고, 또 자랑스럽습니다."
- 이렇게 많은 선결제가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나요.
"네, K-POP 팬들의 기존 문화나 해외 교민, 중장년층이 내미는 손길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사심 없이 주먹밥을 쥐던 손이 2024년 여의도에서 재현될 거라고...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 같아요."
A씨는 "1200건, 600건 이런 식의 큰 주문들이 적지 않게 턱턱 들어왔다"면서 "평균적으로 50∼100건 정도를 선결제 하시는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 14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여의대로에 모여있던 시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
ⓒ 권우성 |
"가결 소식을 듣자마자 저희 둘 다 쓰러지듯 잠에 들었어요. 혹시라도 제 때 (선결제 정보가) 업데이트 되지 않으면, 시민 분들이 헛걸음을 하시거나 인파가 한 곳으로 몰리거나... 그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48시간 정도 일하다가 잠에 든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정치적 진영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이 안전하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든 서비스"라고 강조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집회가 이어지고 있어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힘 닿는 데까지 운영할 생각입니다. 사이트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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