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건진·명도사 이어 노보살…용산 뒤집은 '무속 비선' 리스크

김서원, 이찬규 2024. 12. 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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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경기도 안산시 소재 한 반지하 빌라에서 다른 무속인과 함께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점집. 문에 ‘만(卍)’자와 ‘안산시 모범 무속인’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이찬규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에 민간인 신분으로 관여한 것으로 지목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무속인 활동이 드러나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싼 소위 ‘무속 비선’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천공·건진법사(전성배) 등 사주·역설·무속 관련 인물들이 윤 대통령 부부 주변에서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정치 브로커로 알려진 명태균씨 또한 “장님 무사 어깨에 올라탄 앉은뱅이 주술사”같은 말을 하며 일각에서 ‘명 도사’로 불렸다는 의혹이 나왔다.

20일 오전 찾은 노씨가 다른 무속인과 동업하며 운영하는 점집이 있는 경기도 안산 소재 한 다세대 빌라 지붕엔 무당이 꽂는 것으로 알려진 흰 깃발과 빨간 깃발의 ‘서낭기(점도 보고 굿도 한다는 의미)’가 휘날리고 있었다. 반지하에 위치한 법당 내부엔 제사에 쓰이는 것으로 추정되는 감 등 과일 박스가 여러 개 쌓여 있는 등 일반 점집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노 전 정보사령관이 다른 무속인과 동업하며 운영하는 점집이 있는 경기도 안산시 소재 한 주택 지붕에 무당이 꽂는 서낭기가 꽂혀있다. 이찬규 기자


노씨를 봤다는 빌라 인근 일부 주민들은 그를 ‘남자 보살’로 기억했다. 송모(40대)씨는 “굿 등 무속 의식을 도우며 허드렛일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다”며 “OO보살(동업자)의 보조로 안다”고 말했다. 최모(60대)씨는 “사주팔자 보고 작명해주는 사람으로 들었다”고 했다. 노씨는 문상호 정보사령관, 정모 대령 등과 점집 인근 롯데리아 매장에서 만나 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 계획 등 계엄을 사전에 모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윤 대통령 주변엔 법사와 도사들이 의혹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천공·건진법사(전성배) 등이 윤 대통령과 친분을 앞세워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대표적 무속인이다. 건진법사로 알려진 전성배씨는 윤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해 대선 캠프 고문을 맡아 선거운동에도 개입하는 등 윤 대통령에 대한 무속 비선 논란을 촉발시킨 장본인이다. 전씨는 2018년 6월 치러진 경북 영천시장 선거 후보자로부터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며 억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전씨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도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청탁에 개입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대통령실이 자체 조사에 나서 전씨에 경고하고, 대기업들에 주의를 당부한 일도 있었다.

대통령 부부의 공천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도 ‘지리산 도사’로 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김건희 여사와 영적 대화를 나누며 가까워졌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경남 창원 등지에서 정치 브로커로 활동해 온 명씨는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이다.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를 복구해 대통령 부부와 나눈 통화 녹음 파일과 메시지 등을 분석하고 있다.

사진 역술인 천공 유튜브 캡처


한때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천공은 대통령실 용산 이전 개입설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구독자 10만명 이상의 유튜브 채널 ‘정법시대’를 운영하는 천공은 지난 18일 영상을 통해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며 “향후 3개월이 중요한데, 윤 대통령을 바르게 봤다면 하늘이 힘을 모아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천공은 “2025년 윤석열이 한반도 통일 대통령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021년 국민의힘 대선경선 후보 토론회 당시 윤석열 대통령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가 그려진 모습이 포착됐다. 무속에선 손바닥에 왕자를 쓰는 게 부적처럼 사용된다고 알려져 있다. 연합뉴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통령과 관련 무속 논란이 불거지는 것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라며 “민주주의와 기본 정치에 대한 개념과 인식이 부재한 상황이며,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퇴행적인 정치 전반에 깔려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정치컨설턴트)는 “(무속 비선 논란은) 전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민주주의의 위기 요인으로 꼽은 ‘반(反)지성주의’의 대표격”이라고 지적했다.

이찬규·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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