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의 문화의 창] 인공지능 시대의 미술

지금 울산시립미술관에서는 ‘예술과 인공지능’이라는 특별전을 마련하여 7개국 17개 팀의 인공지능 아티스트 작품 40점이 출품되었다는 소식이다(내년 2월 16일까지). 이에 나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이 매력적인 기획전을 다녀왔다. 그렇다고 내가 미술평론가라는 직업의식 때문에 보러 간 것은 아니다. 나는 한동안 미술평론가라는 직함을 내걸고 활동하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말이 된다면 나는 ‘전(前)’ 미술평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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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과 기술의 원초적 친화력
인공지능의 기술적 능력 무궁
창작·감상·유통 과정에 큰 변화
미술 개념의 끝없는 진화 초래
」
![노진아,‘진화하는 키메라-가이아’, 2024, 혼합 매체, 가변 크기. [사진 임장활]](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19/joongang/20241219012943769hvsa.jpg)
내가 미술평론을 접고 한국 미술사에 전념하게 된 것은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때 비디오 아트, 키네틱 아트, 설치미술 등이 불가역적인 미술사조로 밀려들어 오는데 나는 이 테크놀로지 아티스트들의 조형적 사고를 따라잡을 수 없어 손을 놓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술을 사랑하는 감상가 입장에서 그 흐름만은 놓치지 않고 보아왔는데, 급기야 인공지능 아트까지 낳은 것이다.
인공지능은 날로 발전하여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은 방대한 언어 모델과 딥 러닝을 통해 텍스트, 이미지, 비디오, 음악 등의 새로운 콘텐트를 만들어내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과 같은 수준의 지능에서 스스로 사고하는 인공일반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으로 발전하면서 예술창작에 이용되거나 개입하고 있다니, 그렇게 제작된 작품들이 얼마나 신기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이 전시회는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의 기대에 부응하듯이 미술관 로비 정중앙 대형 스크린에는 ‘꽃’(신승백·김용훈 작)이라는 작품의 밝고 싱그러운 이미지가 계속 화려하게 펼쳐진다. 다양한 꽃 사진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인공지능 시각(computer vision)의 원리를 실험한 것이다. 변형된 꽃 이미지를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인지와 시각 차이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제1부 전시회의 서막은 기계와 기술을 예술가들이 수용하고 도전한 모습이다. 그 선구는 역시 백남준으로 그의 1986년 작품 ‘월광 소나타’라는 비디오 작품이 전시되었다. 돌이켜 보자니 30여 년 전에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는 생소하여 “이것이 어떻게 미술이란 말인가”하고 당혹스럽기만 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는 아주 친숙하고 참으로 조신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백남준은 우리보다 반세기는 앞서간, ‘20세기에 살았던 21세기의 미술가’였다.
전시회의 하이라이트인 제2부는 ‘입력과 출력 사이’로 인공지능이 창작자와 관객의 기술적·감각적 경험을 확장해준다. ‘진화하는 키메라-가이아’(노진아 작)는 커다란 사람 얼굴에 온갖 생명체들이 뒤엉켜 거대한 몸통을 이루고 있는 모습으로 인공지능을 이용해 관객과 대화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전시회를 기획한 김혜정 학예사가 “안녕”하고 말하니 목소리를 알아들은 듯 곧바로 “안녕, 오랜만이에요”하고 대답한다. 이에 내가 “너의 꿈이 무엇이니?”하고 묻자 한참 동안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다가 마침내 입술을 움직이며 “아마 인간이 되는 게 나의 꿈이겠지요”라고 대답한다.
제3부 ‘얽힌 실타래를 풀며’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인공지능)이 예술 속에서 서로가 만들어낸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제4부 ‘부유하는 예술’에서는 ‘이것이 미래다’(히토 슈타이얼 작품)라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의 미디어 아트 설치미술을 보여주면서 인공지능의 기술적 재능을 활용하면 이제까지 볼 수 없던 다양한 이미지의 향연을 경험하게 한다.
전시회를 다 둘러보고 나니 혹은 낯설고, 혹은 환상적이고, 혹은 이해가 되지 않아 어안이 벙벙해진다. 약 100년 전, 작품의 다량 복제로 원작의 존재감이 의심되던 시절, 발터 베냐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란 글에서 ‘아우라’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인공지능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서도 예술평론가들이 말할 차례다. 그러나 나는 전(前) 미술평론가이기 때문에 이에 답할 지식도 지혜도 없다.
그런 물음을 안고 전시장을 나오려는데, 전시회 마지막 패널에 학예사가 인공지능(Chat-GPT4)에게 ‘이 전시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한 것에 대한 인공지능의 대답이 에필로그로 쓰여 있었다. 나는 이것으로 나의 생각을 갈음했다.
“기술은 결코 예술의 주체가 될 수 없지만, 그것이 예술 창작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과 기술의 경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질문하고, 탐구하며, 창조할 것입니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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