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칼럼] 문제의 근원 ‘김건희 특검’ 피할 수 있겠나
尹도 같은 보고 받아 그 직후 계엄 선포… 한동훈도 체포 명단에
특검안 위헌성 없애면 김 특검 못 막아
무엇이 윤석열 대통령을 압박해 이런 일까지 벌이게 만들었느냐는 의문이 계속 맴돈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가 정부 각료와 검사들에 대한 탄핵을 남발하고 민주당 단독 예산을 통과시키려 한 것을 계엄 선포의 주 이유로 들었다. 부정선거 의혹에도 빠져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윤 대통령의 무모한 계엄 선포를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사람이 모든 것을 걸고 모험하려 하면 주변 사람들도 ‘이 문제 때문에 무언가 터지겠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런데 민주당의 각료 탄핵과 예산안 처리 때문에 윤 대통령이 엄청난 일을 벌일 수도 있겠다고 느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대통령 비서실 사람들조차 그랬다. 부정선거 의혹도 해묵은 것이다. 그래서 각료 탄핵과 예산 문제 외에 윤 대통령을 심각하게 압박한 것은 무엇이었느냐고 묻게 된다.
이 의문을 푸는 열쇠는 계엄군의 체포 명단에 들어있다. 명단에 여권 인사로는 유일하게 한동훈 전 대표가 들어있다.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 각을 세워왔지만 민주당의 각료 탄핵과 예산 독주에 대해선 누구보다 강하게 비판해 왔다. 윤 대통령이 순전히 민주당의 각료 탄핵과 예산 때문에 계엄을 한 것이라면 한 전 대표를 체포할 이유가 없다.
시중에서는 계엄 다음 날부터 윤 대통령의 ‘김건희 수호 계엄’이라는 말이 나왔다. 과정 전체를 보면 이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김건희 특검안’은 작년 이후 언제나 정국의 최대 이슈였다. 특히 윤 대통령 부부에게는 더 그랬다. 김건희 특검이 윤 대통령의 가장 약한 고리라는 사실을 확인한 민주당은 집요하게 이 약점을 파고들었고 윤 대통령의 위기감과 분노도 동반 상승했다.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위기감과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한동훈 대표가 김 여사 문제를 “국민 눈높이에서 봐야 한다”고 언급하자 윤 대통령은 한 대표 사퇴를 요구했다. 한 대표는 수류탄 정도를 던졌는데 윤 대통령은 원자폭탄으로 대응했다. 총선 직전이어서 윤 대통령의 원폭은 국민의힘 선거를 망칠 수 있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 여사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 윤 대통령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다. 선거 자해임이 명백했지만 그조차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위기감을 최고조로 올린 사건은 지난 10월 4일 김건희 특검법 국회 재의결이었다고 본다. 이 표결에서 국민의힘 이탈표가 4표 나왔다. 그토록 표 단속을 했지만 ‘철통 단결’은 허상임이 드러났다. 다음 표결에서 4표만 더 이탈하면 특검법은 통과될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의 자신감은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그 즈음부터 윤 대통령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바닥 수준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김 여사 문제가 가장 큰 악재였다. 대구에서도 김 여사 비판론이 비등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 분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이탈표 추가 가능성은 점점 높아졌다. 위기를 느낀 윤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여의도로 보내 국민의힘 의원들과 단합 오찬까지 하게 했다. 매우 이례적인 일로 사실상 표 단속이었다.
이런 가운데 김건희 특검법 3차 재의결 날짜가 12월 10일로 잡혔다. 윤 대통령 주변에서 ‘특검법을 수용하면 정국 주도권을 되찾아 올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 부부를 모르는 ‘순진한’ 충언이었다. 이와 동시에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논란이 격화됐다. 한 전 대표를 겨냥한 친윤 측 공격이었다.
그러자 친한계가 국회의 12월 10일 표결에서 김건희 특검법에 찬성할 수 있다는 얘기가 11월 하순부터 여권에서 돌기 시작했다. 11월 27일 친한계 의원이 라디오에서 특검 찬성 가능성을 언급했고, 11월 28일엔 한 신문이 ‘한 대표, 김건희 특검 고려’라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은 이미 이 보도와 같은 내용의 보고를 당에서 받고 있었다. 윤 대통령이 군경 핵심들을 불러 모아 계엄을 본격 논의한 것은 이 보도 3일 뒤였다. 그리고 이틀 뒤 계엄이라는 수소폭탄을 던졌다. 체포 명단에 ‘한동훈’은 빠질 수 없었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이 계엄처럼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하고 막으려 한 것은 김 여사 문제뿐이었다. 김 여사 문제의 폭발력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 여사 특검은 더 이상 막기 어렵다. 윤 대통령은 특검에서 부수적으로 김 여사 국정 개입 실상이 드러나는 것을 가장 우려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에 어떤 정권이 오더라도 김 여사 문제는 수사를 피할 수 없다. 수사 이전에 무차별 폭로부터 나올 것이다. 어차피 맞아야 할 매라는 뜻이다. 윤 대통령 탄핵 소추가 기각돼 직무에 복귀하더라도 특검이란 시련을 거쳐 그가 부인 문제에서 해방됐으면 한다. 그게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지금 민주당 특검안은 민주당이 특검을 지명하는 것으로 위헌이다. 이제 여야가 특검을 추천해도 공정성이 담보되는 상황인 만큼 민주당도 특검안에서 위헌성을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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