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절벽

고영창 2024. 12. 1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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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앞에 놓인 절벽은 짐 모리슨이나 존 레넌이 살던 시대의 절벽보다 훨씬 높아 보인다

[고영창 기자]

 지난 9월 17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CBS 라디오 일일 DJ로 나섰다.
ⓒ cbs
한동훈이 달리 보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한동훈의 청년 시절 사진을 보았을 때였다. 한동훈은 짐 모리슨(Jim Morrison)을 프린팅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록의 황금기인 60년대 말과 70년대 초에 전성기를 누렸던 밴드 도어즈(The Doors)의 로커 짐 모리슨. 록의 무대에서 그의 광기에 비견할 만한 로커가 또 있을까. 그 시대 록 음악에 유행처럼 번진, 세상을 향한 비난과 비웃음에 짐 모리슨은 가족까지 끌어드리는 패륜을 저질렀다.

아버지.
왜 부르느냐, 아들아.
나는 당신을 죽이고 싶어요.
어머니, 난 당신과 섹스하고 싶어요.

'The End'의 가사 일부다. 과도한 표현을 걷어내면 아버지로 상징되는 가부장적 사회를 타도하고 인간애가 풍기는 어머니의 세계에서 살고 싶다는 뜻인데, 지나치게 직설적인 내용을, 특유의 음산한 목소리에 담아 전달하는 짐 모리슨에 뜨악하지 않을 수 없다. 뒤이어 해군 제독이라는 짐 모리슨의 아버지 스티브 모리스가 궁금해진다.

거장 프란시스 코폴라는 이 문제적 노래가 자신의 영화에 더없이 좋은 선물임을 간파한다. 대표작 <지옥의 묵시록>의 영화 음악으로 삼았던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은 아버지가 준수하는 법과 질서, 아버지가 사용하는 언어를 답습하면서 성인으로 들어섰다. 그 문턱에 베트남 전쟁이 놓여 있었다. 군대에 복무한다는 것은 전쟁을 통해 힘과 권력, '거대한 국가'를 이룩한 아버지의 전통을 이어받고, 아버지를 넘어서 아버지와 동등하게 존중받는 개인으로 성장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미국의 지식인과 젊은이들은 아버지가 이룩한 세계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기성세대가 내세우는 세계 평화 뒤에 숨은 기만과 허위를 발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닮아 자신이 곧 법인 양 행동하는 아들이나, 아버지의 권력 앞에서 위축된 모습으로 쩔쩔매는 아들이나 동전의 앞뒤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컨대 스티브 모리스가 해군 제독이란 신분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다. 짐 모리슨의 'The End'는 생물학적 아버지를 향해서가 아니라 기성세대에게 던지는 공개 질의서에 해당한다.

엄한 아버지에게 혼나는 아들

지난 10월 21일이었다. 윤석열·한동훈 용산 면담을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두 사람은 직사각형의 기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누가 찍은 사진인지 대통령과 당 대표 사이인 두 사람의 간격을 그만큼 잘 보여주기 어려운 걸작이었다. 윤석열은 양손으로 책상을 부여잡은 채 얼굴을 조금 앞으로 내민 자세이고, 한동훈은 등을 보이고 앉은 자세였다. 두 사람은 무언가 격렬한 대화를 나누다 눈을 마주친 채 잠시 침묵을 지키는 상황인 듯싶었다. 정지 화면 속에서 눈을 부라리고 한동훈을 빤히 쳐다보는 윤석열에게 먼저 눈길이 닿는다.
▲ 한동훈 대표와 마주 앉은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2024.10.21 [대통령실 제공]
ⓒ 연합뉴스
내가 보기엔 엄격한 아버지가 아들을 꾸짖는 장면 같았다. 어느 날 온갖 기행에, 늘 마약에 절어 있기 일쑤인 아들 짐 모리슨을 간이 응접실 한쪽에 앉혀놓고 일목요연하게 잘못을 지적하는 해군 제독 스티브 모리스의 모습이 저와 같았을까? 그때 짐 모리슨의 어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 상황에서 김건희에게 짐 모리슨 어머니 역할을 맡기긴 어려울 성싶다. 그러나 윤석열과 한동훈의 기싸움에서 김건희를 빼놓을 순 없다는 걸 누군들 모를까. 이날 두 사람의 면담도 사실 김건희 때문이었다. "할 말을 다 하겠다"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인 한동훈은 면담 후 측근들에게조차 "할 말이 없다"며 곧장 귀가했다.

그 후, 한때 국회의사당에서 윤석열을 변호하느라 고군분투했던 한동훈의 모습은 찾기 어려워 보였다.

야당의 공세에 검은 테 안경을 번득이는 한동훈의 반박 논리는 역대 정부 각료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원이었다. 말과 호흡이 절묘하게 이어지거나 끊어지는 스타카토 풍 발음 역시 관전자의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때때로 한동훈은 자신의 반박 논리에 갈팡질팡하는 야당 의원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짓기도 한다. 비웃음을 당한 한동훈의 상대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장면을, 미디어를 통해 보는 나조차 기분이 썩 좋지 않았을 정도다. 급기야 야당은 '조선제일 혀' 한동훈 대처법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훈의 플레이 리스트

놀라웠다. 그 논리적이면서 냉정한 한동훈이 짐 모리슨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젊은 시절 한동훈이 도어즈의 짐 모리슨을 흠모했다는 사진 설명글도 아울러 보였다. 검은 테 안경을 착용하고 양복을 빈틈없이 빼입은 한동훈의 현재 모습과 너무도 이질적이었다. 매우 상식적인 깨달음이지만, 겉모습만 봐서는 사람을 알 수 없다는 말을 새삼스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놀라움은 올 추석인 지난 9월 17일에서도 이어졌다. 저녁 무렵 CBS라디오에 일일 DJ로 출연한 한동훈은, 그답지 않게 해맑은 웃음을 띠며, "음악에는 네 편 내 편이 있을 수 없으니까, 혹시 저를 안 좋아하시는 분도 음악을 듣다 보면 마음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나와봤습니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LP 카페나 공연장에 가서 음악을 들을 뿐 아니라, '방구석 기타리스트' 수준이지만 직접 기타를 연주한다고 했다.
 짐 모리슨
ⓒ 고원영
한동훈의 선곡은 모두 7곡으로, 60년대 록 음악에서부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폭넓었다. 그중 젊은 시절 티셔츠를 사다 입을 정도로 좋아한 도어즈의 곡, 물론 짐 모리슨이 노래하는 'Summer's Almost Gone'을 선곡할 때 내 귀는 자연스레 솔깃해졌다. 그러나 특별한 선곡 이유보다는 유난히 무더웠던 올여름 아니었냐고, 추석인 지금도 덥지 않냐면서 가벼이 웃었다.

마지막 선곡은 영국의 전설적 록밴드 비틀스가 1969년 발표한 앨범 'Abbey Road'의 첫 번째 트랙, 'Come Together'였다. 한동훈은 이 곡을, "마지막 곡은 정치적으로 끝내는 게 정치인의 도리라고 생각해서 가져왔어요"라고 선곡 이유를 밝혔다. 그러고는 당면한 정치 현실을 언급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옳으냐를 따질 때가 아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이냐, 다 같이 책임감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Come Together'는 제목과 달리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노랫말로 가득했다. 알고 보니 밴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갈등을 되풀이하는 상황을 은유한 곡이었다. 그럼에도 존 레넌은 일단 모여 봐, 함께하면 길이 보인다고 거듭 후렴을 넣는다.

문득 한동훈은 존 레넌이 폴 매카트니에게 건넨 말을 전한다. 존 레넌이 폴 매카트니에게, "넌 왜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느냐?"고 질책 비슷하게 물었다는 일화다. 느닷없는 절벽 이야기는 한동훈 자신이 처한 상황임은 두말할 나위 없었다.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를 냈다.

"절벽을 뛰어내려야 할 상황이 되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려 보려고 합니다."

반짝에 불과했던 '별의 순간'

그 절벽이 언제 한동훈 앞에 펼쳐졌을까. 12월 3일 한밤중, 윤석열이 느닷없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수부대가 국회의사당 안으로 침입했을 때임을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처음에는 민주당 의원들만 계엄 해제안에 찬성한 줄 알았다. 뜻밖에도 18명의 국민의 힘 국회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그들은 모두 한동훈계였다. 보수계 잡지인 <신동아>는 그때 한동훈이 보여준 모습을 '별의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한동훈이 보수의 희망으로 급부상했다면서. 한동훈이 아니었더라면 윤석열이라는 괴물이 우리를 더 괴롭히다 퇴장했으리란 정치평론가도 있다.

계엄 혹은 내란에 실패한 윤석열의 퇴진은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그러나 어떻게 퇴진하느냐가 문제였다. 이 난제 앞에서 한동훈은 민심과 정치적 실리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추위가 엄습한 여의도에 백만 시민이 모여 '탄핵'을 외쳤으나 정작 탄핵을 결정하는 투표장에 한동훈계는 보이지 않았다. 탄핵이 무산된 결정적 이유는 한동훈이 윤석열을 만나고 와서 느닷없이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한동훈이 윤석열의 자진 하야를 약속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동훈이 섣불렀다. 12월 12일, 윤석열이 갑자기 텔레비전에 나타나서 계엄은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며, 하야할 바엔 차라리 탄핵당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그로써 한동훈은 민심과 정치적 실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어버린 셈이었다. 결국 야당과 국민이 주장하는 탄핵 외에는 윤석열을 퇴진시킬 방법이 없었다. 한동훈이 빛을 낸 시간은 그야말로 '반짝'에 불과했다고 사람들은 후일담을 나누지 않을까.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온 국민이 환호했지만, 한동훈은 웃지 못했다. 탄핵 반대에 실패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제히 한동훈에게 총구를 돌렸고, 미디어는 입을 모아 당 대표직이 위태롭다고 보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12월 16일 한동훈은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힘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다. 탄핵 찬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회견을 마무리하는 말은 심상치 않았다. "계엄이 잘못이라고 해서 민주당과 이재명의 폭주와 범죄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라고 짚고 넘어갔던 것이다. 회견장을 나서 지지자들에게는 "저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였다고 한다. 이 말이 절벽을 뛰어내리는 모험을 앞으로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절벽을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윤석열의 그림자·이인자 ·소통령으로 불렀던 시간이 짧지 않았단 사실도 뛰어넘기 쉽지 않은 절벽에 해당한다. 게다가 미래의 한동훈이 절치부심해서 이 모든 불리한 여건을 덮어버릴 수 있을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아마 한동훈 자신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과연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지금 정치인 한동훈 앞에 놓인 절벽은 짐 모리슨이나 존 레넌이 살던 시대의 절벽보다 훨씬 높고 가팔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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