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심판’에 반격 나선 의사들…의료현장 혼란 첩첩산중
신대현 2024. 12. 17. 06:01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10개월가량 이어진 의정갈등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의료계는 탄핵 정국 속에서 내년도 의과대학 신입생 모집을 포함한 의료개혁 정책의 전면 무효화를 요구하고 있고, 정부는 물러설 뜻이 없어 의대와 의료현장의 혼란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1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의료현장 혼란을 수습할 대책은 더 요원해졌다. 지난 4월 중증·필수의료 보상 강화, 의료전달체계 정상화,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도입,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등 의료개혁 과제들을 논의하기 위해 출범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는 해체 위기를 맞았다. 비상계엄 포고령에 담긴 ‘미복귀 전공의 처단’ 문구에 반발한 대한병원협회(병협) 등 병원 단체 3곳이 잇따라 특위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 의개특위 산하 전문위원회 회의는 잠정 중단된 상태다. 이달 말 예정됐던 비급여·실손보험 개선안 등 2차 의료개혁 실행 방안 발표 일정도 불확실해졌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이 이대로 진행돼 고착화된다면 의학교육과 의료 정상화의 길은 점점 멀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초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추진하면서 의료계와 갈등을 촉발했고, 의료공백을 야기한 만큼 관련 정책을 모두 무효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이날 성명을 내고 “전공의와 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를 떠난 상황이고, 지금으로선 내년 3월에도 그들이 복귀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며 “윤석열 정부의 어이없는 의료개악 정책들을 원점으로 돌려야 전공의와 의대생이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내년부터는 올해 휴학한 24학번까지 기존 정원의 2배나 되는 학생들을 향후 6년간 함께 교육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이라며 “예과 1학년 학생 상황을 고려하면 선발을 대폭 줄이거나 선발하지 않는 게 올바른 결정이다”라고 덧붙였다.
교육계에 따르면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정원은 기존 3058명에서 증원된 1509명을 합쳐 총 4567명으로, 이 중 수시모집을 통해 합격자 총 3118명이 발표된 상태다. 내년 의대 증원에 반대해 휴학한 의대생 3000여명이 복귀하면 신입생 4567명까지 기존의 두 배가 넘는 7500명가량이 예과 1학년 수업을 받게 된다. 의대 재학 기간과 졸업 후 대학병원에서의 수련 기간을 고려하면 학생들은 도합 10년 이상을 부대끼며 보내야 한다.
의료계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처분의 효력을 멈춰 달라’고 대법원에 낸 가처분 신청 사건의 신속한 결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서울시의사회는 이날 “의대 증원 변경 효력의 정지를 구하는 가처분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에 있다”면서 “대법원은 의대 입시를 즉각적으로 중단시키고 대한민국 의료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국가기관인 만큼 올바른 판단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6월 수험생과 의예과 1학년으로 구성된 8명은 이번 의대 증원 변경을 승인한 한국대학교육협회를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낸 바 있다. 가처분 소송은 1심과 2심에서 기각됐으며, 8월 대법원(민사 2부 박영재 대법관)에 상고됐다. 입시 관련 사건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전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대법원은 수시 합격자 발표가 지난 13일 마무리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이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서울시의사회는 “국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로 정부의 의료개혁 추진도 사실상 중단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된 만큼 의대 정원 증원도 원점에서 재논의 돼야 한다”라며 “탄핵당한 정권이 추진하던 의대 정원 증원은 당장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핵 정국 분위기에서 정부를 향한 의료계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협 비대위)는 오는 22일 교수, 봉직의, 개원의, 전공의, 의대생 등 전체 직역이 참여하는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개최한다. 의협 비대위는 전공의 등 의료인 처단 문구가 들어간 계엄사령부 포고령 작성자 색출과 처벌을 요구할 예정이다. 또 의대 증원을 비롯한 정부의 의료 정책에 대해 향후 직역별 대응 방안을 논의해 의료계 전체 직역의 공동 투쟁 방향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 직무가 14일부로 정지되면서 책임자 없는 개혁을 이어가게 된 정부는 고심에 잠겼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긴급 간부회의에서 “국민 건강과 취약계층 보호 등 민생 안정과 직결되는 보건복지 정책을 차질 없이 이행해 달라”고 당부했지만 의료·교육 등 개혁 정책 추진 동력은 급속히 약화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조 장관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지난 12일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조사를 받았다. 조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참여한 참석자 중 한명이다.
의정갈등 사태를 신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상황은 악화된다. 내년 3월부터 수련을 시작하는 신규 레지던트 모집 지원율이 8.7%에 그치면서 의료공백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휴학 중인 의대생들이 대거 현역 입대를 택하면서 향후 군의관, 공중보건의가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회(대공협)에 따르면 현역 입대한 의대생은 지난 8월에 1000명이 넘었고, 의대생 246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70.5%가 ‘현역 복무를 하겠다’고 응답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전국 37개 의대에서 1059명이 군 휴학 허가를 받았다. 지난 2021~2023년 100명대에 불과했던 군 휴학 의대생이 10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지역 의사들의 이탈도 가속화될 조짐이다. 김성근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대변인(여의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은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의정갈등 사태 이전엔 지방에서 서울로 오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서 못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번 사태를 겪으며 공석이 많이 생겼고 전문의 중심병원을 추진하며 정원도 늘어났다”라며 “그 자리를 지역에서 근무하던 의사들이 채우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 이 뒤에 정권을 누가 잡든 의료현장의 부담을 몇 년간 짊어지고 가야 한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문제를 해결하는 건 더 어려워진다”고 부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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