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일상은 명멸하는 권력보다 소중하다
[정근 기자]
▲ 신길역에서 국회로 가는 시민들의 행렬 신길 지하철역에서 국회로 가는 시민들의 행렬이 횡단보도와 문화다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
ⓒ 정근 |
▲ 국회로 가는 지하철로 환승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민들 탄핵 표결 당일 국회로 가는 지하철로 환승하기 위해 시민들이 노량진역에서 기다리고 있다 |
ⓒ 박석순 |
▲ 문화다리에서 국회로 가는 시민들의 행렬 신길역에서 국회로 가는 시민들의 행렬이 문화다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
ⓒ 정근 |
▲ 국회 앞으로 모여든 시민들 국회 앞으로 모여들며 거대한 물결을 이룬 시민들 |
ⓒ 정근 |
그 날 밤 그 카톡을 받기 전까지 나는 내 일상의 소중함을 몰랐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었고, 과거의 나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 노동자들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지만, 야간 근무를 수 년간 이어오고, 챗바퀴 돌듯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지쳐있었다.
일을 마치고 귀가한 늦은 밤, 주차를 하고 보니 여러 개의 카톡방에서 메시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하나의 메시지만 올라온 방을 클릭해보니 현직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고 군대의 통제를 받으며 포고령을 어기면 처단 당하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할 요건도 아니었고, 비상계엄이 선포돼도 국회가 계엄을 해제할 권한을 갖고 있었지만, 뉴스 속에서는 경찰이 국회 출입을 봉쇄하고, 공수부대를 태운 헬기가 국회 주차장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늦은 저녁이라도 한 술 뜨려던 생각도 잊고, 큰 충격에 차에서 내리지 못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이 눈 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계엄이라는 국민적 트라우마, 불면의 일상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광복을 맞이한 후에도 우리 국민들은 16번이나 선포된 계엄 속에 억압된 채 살아가야 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고 서서히 민주화되기 시작하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 1조 제 2항을 체감하는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제 계엄으로 인한 처절한 비극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서울의 봄>과 같은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서만 복기하는 것인줄 알았다. 그 누구도 2020년대에 공수부대를 태운 헬기가 국회 상공으로 날아오는 악몽 같은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는 어느 집회 참가자의 절규처럼 용감한 시민들의 합세로 국회가 무사히 계엄해제권을 행사한 이후에도 자다 깨면 혹시나 싶어 뉴스를 보는 불면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군 관련 회의 소집 속보가 뜨면 국민들의 가슴은 또 한 번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하면서도 2차 계엄에 대한 공포가 우리 사회에 만연했다.
비루하고 하찮고 무미건조한 것이 우리네 삶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일상을 총칼과 군홧발로 짓밟을 권리는 그 어떤 권력자에게도 없다. 국민 개개인이 이 나라의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 원혼들을 어찌 하려나
2024년에도 비상계엄이 선포되었으니 이제 다시는 계엄이 없으리라고 그 누구도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은 유한하고 10년도 집권하지 못하고 평생을 숨어 살아야 했던 독재자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학살 명령을 부인했지만, 수감 중인 연쇄살인범이 밤마다 피해자 귀신들이 보인다고 자신에게 호소했다던 어느 교도관의 증언처럼, 그 역시 자기가 죽인 사람들의 원혼에 시달리지 않았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영화 <혈의 누>에서 만신이 무관에게 들려준 말처럼 말이다.
"원혼이 구천을 떠도는데 칼로 덮어둔다고 마냥 편안하시겠습니까."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종전이 임박하자 쉰들러는 자신의 유대인 노동자들을 공장으로 다 불러 모으고, 그 유대인들을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온 독일 군인들에게 "모두 여기 모여있잖아요. 지금이 기회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명령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독일 병사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었던 말을 들려준다.
"가족에게 돌아가세요. 살인자가 되지 마세요."
탄핵 가결 현장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첫걸음
▲ 탄핵이 가결되자 질서있게 되돌아가는 시민들 탄핵이 가결된 후 집회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질서 있게 되돌아가고 있다 |
ⓒ 정근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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