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당주 전수조사했다, 황제주·귀족주 순위 대공개
한국 배당주, 미국 기준으로 첫 전수조사
■ 경제+
「 -6.4% vs 16.9%. 올 한 해(1월 2일~12월 3일) 코스피 대비 고배당주 주가가 얼마나 선전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숫자다. 코스피가 6.4% 하락할 때, 코스피 고배당50 지수(코스피 종목 중 배당수익률이 높은 50개 종목 주가를 종합한 지수)는 16.9% 올랐다. 고배당주 인기는 올해 내내 압도적이었던 셈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고배당주 수익률이 내년에도 좋을 것으로 전망한다. 배당주 수익률은 경기 전망이 어두울수록 상대적으로 양호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증시 전반이 침체할 때도 우량 배당주 주가는 상대적으로 덜 떨어지는 이점도 있다.
」
오뚜기·농심·동서·유한양행·현대백…국가부도 위기서도 배당 늘린 ‘황제’
미국 증시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배당주 투자 문화가 자리 잡았다. 역사와 전통 있는 배당주도 많아 이들을 따로 일컫는 용어도 있다. 50년 넘게 매년 배당금을 늘려온 배당왕족주(Dividend Kings),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구성 종목 중 25년 이상 매년 배당금을 늘려온 배당귀족주(Dividend Aristocrats), 10년 넘게 배당금을 늘리고 풍부한 현금 유동성을 갖춘 배당성취자(Dividend Achievers) 등이다.
머니랩이 국내 최초로 이 기준들을 한국에 적용해 봤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와 한국상장사협의회가 보유한 데이터와 각 사 사업보고서 등을 활용해 국내 증시 대표 기업들인 ‘KRX300’ 편입 기업의 2000년 이후 현금 배당금과 재무지표를 전수조사했다. 그런 다음 개인투자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배당황제주·배당왕족주·배당귀족주·배당개근주로 나눠 ‘배당 우등생’ 목록을 작성했다.
코스피와 같은 종합주가는 경기선행지수와 비슷하게 가는 경향이 있다. 경기선행지수는 실제 경기보다 약 6개월 먼저 움직이는데, 증시도 실물경제를 한발 앞서 반영하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고배당주 주가 흐름은 예외다. 고배당주 수익률은 경기선행지수와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 투자자는 이를 대비하기 위해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배당주를 찾는다. 반대로 경기 호황이 예상되면 배당주보다 더 큰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성장주(미래 이익 성장이 기대돼 현재 가치보다 주가가 높게 형성된 종목)를 찾게 돼 배당주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국내 상장기업의 현금배당 총액은 2020년부터 크게 늘었다. 2011년 ‘코스피200’ 편입 기업의 연간 현금배당금 총액은 13조1563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37조7160억원으로 불어났다.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정책은 이런 흐름을 가속할 전망이다. 신희철 iM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정책 논의 속에서 배당주 관심도가 커졌고, 올해 예상 배당수익률(주당 배당금/주가)이 3%가 넘는 코스피 상장사에는 외국인 투자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현대차 등 29곳은 ‘왕족’…하나금융·다우기술 등 ‘귀족’도 24곳
국가부도 위기에도 배당 늘린 ‘황제주’=국내 우량 배당주의 최고봉은 ‘배당황제주’다. 머니랩은 최근 20년 이상 어떤 상황에서도 현금배당금을 줄이지 않고 증액했거나, 유지한 기업을 배당황제주로 이름 붙였다.
국내 상장사 중 가장 오래 배당금을 증액·유지한 기업은 오뚜기와 농심이다. 이들의 배당금 증액·유지 기간은 30년에 달한다. 동서식품을 계열회사로 둔 동서도 29년간 배당금을 줄이지 않았다. 이들은 1997년 외환위기, 2002년 카드채 부실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년 유럽 재정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 등을 거치면서도 꾸준히 배당금을 늘렸다. 유한양행과 현대백화점도 배당금 증액·유지 기간이 각각 24년, 22년에 달해 배당황제주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기업은 재무건전성도 양호하다. 현대백화점을 뺀 4개 기업 모두 올 3분기 부채비율(부채총계/자본총계)이 100%도 되지 않고, 유동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도 100%를 훌쩍 넘는다. 특히 동서는 부채비율 3.7%에 유동비율은 1719.7%로 모든 배당주를 통틀어 가장 우수한 재무건전성을 자랑했다. 이들 모두 배당수익률은 2%대 이하로 높은 편은 아니지만, 꾸준한 배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경제위기 빼고 20년 유지…배당왕족주= 주요 경제 위기를 제외하고 20년 이상 배당금을 증액·유지한 기업을 한국의 ‘배당왕족’으로 꼽았다.
우선 LS·LG·SK·한화 등 대기업 지주사들이 대거 배당왕족주로 선정됐다. 또 한국 제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현대차·현대제철 등도 이름을 올렸다. 매년 고배당주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KT&G와 신한지주·NH투자증권·키움증권 등 금융주도 포함됐다. 신한지주의 배당수익률은 3.27%로 신한은행 정기예금 이자율(기본금리 2.6%)보다 높아 은행 예금보다 주식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배당왕족 중 가장 배당수익률이 높은 종목은 SK텔레콤으로 5.9%에 달했다. 반도체 부품 제조사 리노공업은 부채비율 6.9%에 유동비율 1131.9%로 전체 우량 배당주 중 동서 다음으로 우수한 재무건전성을 자랑했다.
주가 하락해 배당수익률 높을 수도…건전성·수익성 지표 함께 체크해야
강산이 변해도 안 줄였다…배당귀족주= ‘배당귀족주’는 경제 위기 시기를 제외하고 10년 넘게 배당금을 증액·유지한 종목으로 뽑았다. 대표 종목으로는 GS·CJ·두산 등 대기업 지주사들과 통신주인 LG유플러스, 금융주인 하나금융지주·삼성카드·KB금융 등이 포함됐다. 정보기술(IT) 플랫폼 대표 종목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배당귀족주에 이름을 올렸다.
20년 넘게 잊은 적 없다…배당개근주= 배당금을 들쭉날쭉하게 책정한 시기도 있었지만 20년 이상 빠짐없이 배당한 종목을 ‘배당개근주’로 선정했다. 이들 기업 중에선 배당수익률이 6%가 넘는 우량주도 눈에 띈다. 한온시스템(7.76%), 현대해상(7.56%), 기업은행(6.49%), 코리안리(6.35%) 등이다. 삼성그룹 내 금융주인 삼성생명·화재·증권 등은 모두 배당개근주에 포함됐다.
‘진국’ 배당주를 고르려는 배당주 투자자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배당수익률이다. 배당수익률이 최소한 3% 이상은 돼야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되기도 쉽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배당금을 늘려서가 아니라 주가가 떨어져 배당수익률이 높아진 건 아닌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부채비율·유동비율 등 대표적인 재무건전성 지표도 확인해야 한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주주 배당을 하려면 자금을 영업하는 데 쓰고, 부채를 갚는 데 쓰고 난 뒤에도 남아도는 현금이 많아야 한다. 전설적인 투자가 워런 버핏이 가장 좋아하는 투자 지표로 잉여현금흐름을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잉여현금흐름이란 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영업활동 현금흐름)에서 사업에 필수적인 설비투자 지출액(CAPEX)을 빼고 남은 현금으로, 기업은 이 돈을 바탕으로 현금배당 액수를 정한다.
주당순이익(EPS) 등 수익성이 더 좋아질 여지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수익성이 과거보다 후퇴하는 상황이라면 적극적으로 주주 배당을 늘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선 이런 관점에서 LG유플러스·SK텔레콤·KT&G 등 전통적인 배당주와 금융주, LG·HDC현대산업개발·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네이버·에스엘 등을 투자 유망한 배당주로 꼽는다.
조재운 대신증권 연구원은 “시장 반등 가능성이 낮은 환경에선 배당 중심의 투자 전략이 유리하기 때문에 재무건전성과 수익성 전망이 양호하면서 안정적인 배당을 유지하는 종목의 선호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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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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