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느리다, 늘이다, 늘리다
‘길이’는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의 거리다. 그렇지만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낮과 밤의 길이’에서처럼 ‘시간’을 나타낼 때도 있고, ‘글의 길이’에서처럼 ‘분량’을 가리킬 때도 있다. ‘강폭’은 “강을 가로질러 잰 길이”인데, 이때 ‘길이’는 ‘면적’도 아우른다.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길이’는 더 섬세하게 의미가 갈라진다.
‘느리다’ ‘늘이다’ ‘늘리다’는 이런 ‘길이’와 연관돼 있다. 길이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뜻이 구분된다. ‘느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동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다. 단순히 시간의 길이가 길다는 걸 뜻한다. ‘늘이다’ ‘늘리다’와 명백하고 뚜렷하게 차이가 나서 이 말들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렇지만 ‘늘이다’와 ‘늘리다’는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한다면 경계가 선명해 보이지만, 이 기준을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사전은 표면적인 ‘길이’와 관련된 상황에선 무조건 ‘늘이다’를 쓰라고 안내한다. 그래서 “바지 길이를 늘이다”가 된다.
‘늘리다’는 ‘넓이’ ‘부피’ ‘분량’ 등과 관계될 때만 쓰라고 한다. ‘늘리다’는 ‘길이’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규모를 늘리다” “학생 수를 늘리다” 같은 때만 ‘늘리다’가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앞에서 밝혔듯이 ‘길이’는 단순하지 않다. ‘길이’는 면적이나 분량 같은 것들도 수반한다. ‘늘리다’도 ‘길이’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바지 길이를 늘이다”는 면적이 늘어나는 걸 의미한다. 따라서 “바지 길이를 늘리다”가 더 적절하다. ‘훈민정음 국어사전’도 그렇다고 설명한다.
한규희 기자 han.kyu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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