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가결의 순간, 집회 청년들에게 해준 말

박향숙 2024. 12. 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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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시민의 여의도 국회 앞 집회 상경기] 즐겁게 세상을 바꾸려는 모습에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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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향숙 기자]

"죄책감 때문에 나왔어요. 어른들이 말하길,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라는 말을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서울 시내, 그것도 국회 안에 총을 든 군인들이 쳐들어와서 너무 놀랐어요. 우리 이십대는 오로지 팀플(한팀으로 모여서 움직이는 행동)이에요."

"자네들이 무슨 죄책감을 가져. 청년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승리한 거야. 너무 고마워!"

14일 윤석렬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순간, 여의도 국회 앞 대열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환호성을 질렀다. 앞에 있던 20대 대학생(여)에게 어떻게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는지를 물었을 때의 답변, 그러자 옆에 있던 50대 기성세대가 보낸 감사의 말이다.

모든 국민을 충격에 떨게 한 지난 12월3일 밤 10시 30분, 윤석열의 계엄령 발표를 보는 순간, 소위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동시에 '정말이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두려움이 순식간에 밀려왔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학교 정문 앞을 들어갈 때 양 옆으로 게시되어 있던 5.18 광주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이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사실이었다.

밤새도록 눈을 뜨고 유튜브로 생방송을 지켜보았다. 계엄령 발표 후 곧이어 군인들이 들어오는 모습, 곧 이어 시민들이 몰려와 정문에서 대치하는 모습, 국회 건물 입구 앞에서 기자들과 시민들이 군인들과 처음 마주치며 밀고 밀치는 모습.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국회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 순식간에 190명이라는 의원들이 모여서 계엄령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모습까지 긴장감으로 뛰는 가슴을 쥐며 모든 사태를 전 국민과 함께 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쿠데타를 벌이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지를 수십번 수백번 수천번을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될 수 없었다. 도체 왜 그랬을까. 인간으로 태어나 최고의 위치, 대통령까지 올라간 사람이 무엇이 부족해서, 어떤 욕심이 더 생겨서 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일을 벌였을까.

지난 7일 1차 탄핵소추안 가결을 보기 위해 군산의 촛불행동팀과 함께 상경했다. 한 번이라도 여의도의 시민행렬에 참여해야 마음의 죄스러움이 줄어들 것 같았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8년 전 박근혜 탄핵 현장에 있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후로 8년이 지난 지금, 국민에게 총을 겨눈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몰려든 시민들의 세대는 달랐다. 수많은 20세대 남녀 청년들이 그 넓은 광장을 다 채우고 있었다. 대학생인 내 아이들 세대들이 이 나라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모습이었다.

동료들과 떨어져서 젊은 청년들 사이에 앉아 그들이 손에 쥐고 외치는 응원봉의 물결과 함성을 들었다. 그들이 부르는 K팝 탄핵송을 잘 듣고 따라하면서 40여 년 전으로 돌아간 나의 젊음 속에 용기가 없었음이 미안했다.

1차 탄핵소추안이 아예 상정도 되지 못하는 현장을 보면서도 청년들은 외쳤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아. 내일도 모레도 계속 나올 거야. 우리는 할 수 있어'라며 끊임없이 겁에 질린 우리 기성세대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던져주었다.

어쩌면 이렇게 담대하고 밝을까. 어쩌면 이렇게 긍정적이고 희망적일까. 어리다고, 철없다고, 이기적이라고 해석했던 그들의 행동들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저절로 20대인 아들 딸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또다시 일주일이 지나면서,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지역에서 촛불과 탄핵운동을 앞장 선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대부분의 시민단체활동들은 거의 자체 경비로 행동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후원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몇몇 지인들에게 1차 상경버스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노고를 글로서 설명하며 소소한 금액일지라도 후원금을 보내주자고 말했다. 뜻밖에 대부분의 지인들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면서 나의 글에 동의해주기도 했다.
▲ 군산시민단체, 탄핵현장에 서서 군산 하제팽나무지키기 단체와 함께 상경
ⓒ 박향숙
2차 탄핵소추안 가결을 위해 14일에도 상경했다. 박근혜 탄핵 때도 3번 올라왔으니 설사 이번에 안 되면 또 다시 올라와야지 하며 마음을 모았다. 지인들은 상경하는 나를 대신해서 집에서라도 기도하겠다고 했고, 반드시 이번에는 가결 될 거라고 믿음을 주었다. 핫팩과 응원봉을 준비해준 지인, 왔다 갔다 하는데 따뜻한 밥이라도 먹으라고 밥값을 보내준 지인도 있었다.

14일이 영원히 역사의 기록에 남을 날이 되도록 기도하면서 여의도에 도착했다. 일주일 전에는 주최 측 추산 100만 이라고 했는데, 버스가 도착하기 전부터 거리마다 여의도로 향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아마도 2배, 3배도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빛과 사랑으로 이 나라를 지켜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국회의사당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서 자리를 잡고, 탄핵을 위한 국민들의 외침을 절실하게 몸으로 들었다. 탄핵 찬성에 기꺼이 무대로 나온 가수들의 노래에 맞추어 응원봉을 흔들고, 빨강 하양 탄핵 피켓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들고 나오기를 반복했다.
▲ 20대 소녀들의 기쁜함성 민주주의를 너무 편하게만 생각했다고, 죄스러워서 현장에 나왔다고 말하는 그녀들
ⓒ 박향숙
K팝과 민중가요가 서로 손을 잡고 울려 퍼졌다. 가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20대 딸들이 소리 높여 부르고, '토요일 밤에'라는 가요에 환호하는 30대 청년들의 함성이 끊임없이 퍼져나갔다. 슬프고 우울해 하지 않고 즐겁고 신나게 탄핵송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2030세대들이 자랑스러웠다.
드디어 오후 4시, 국회의원들의 투표시간이 되었다. 지난주와 달리 다행히 여당 국회의원들이 투표 참여를 한다는 소식에 조금씩 기대했던 희망이 올라왔다. 일주일 사이 소신 있는 여당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탄핵 찬성을 발표했기에, 무기명으로 투표하는 과정에서 분명 200표는 넘길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 젊었을때 용기없었던 부채감을 이제라도 2030세대들 덕분에 탄핵가결의 기쁨을 함께해서 너무 고맙다고 전했다
ⓒ 박향숙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폭력 탄핵집회를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에서 어린 자녀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유모차 대열을 보면서 더욱 가결을 확신했다.

국회의장의 발표소리, '가 204명'이 나올 때 차가운 도로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서 서로 부둥켜 안고 뛰었다. 내 또래의 기성세대들은 곁에 있던 청년들에게 모두 고맙다고 말했다. "이 모두가 그대들 덕분이네. 고마워. 이렇게 함께 해줘서"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가슴은 뛰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새 옷을 입고 다시 새 길의 출발선에 섰다. 10대, 20대, 30대 젊은 그대들이 이끄는 세상으로 나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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