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하다 반했어요” 사진 봉사가 만든 기적 [개st하우스]
“유기견 공고를 올릴 때 강아지들에게 장신구를 달고 예쁘게 꾸며서 촬영하면 입양이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사진 봉사를 시작했죠. 그런데 봉사 중 제가 꿈에 그리던 강아지를 만나게 됐어요. 알감자처럼 생긴 강아지였는데 보자마자 마음을 뺏겼고 입양하게 됐습니다.”
유기견에 대해 입양자가 알 수 있는 건 보통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구조 당시 상황입니다. 슬프게도 유기견 ‘감자’는 그마저도 알려진 게 없었습니다. 모견과 새끼 3마리가 충북 청주 시내를 떠돌고 있다는 신고가 지자체에 접수됐고, 이후 4마리가 보호소로 동시에 들어왔다는 게 감자에 대해 알려진 사실의 전부입니다.
그나마 엄마 개는 구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습니다. 그렇게 보호소에는 새끼 세 마리만 덩그러니 남게 됐죠. 모견이 왜 거리를 떠돌게 됐는지, 누가 어떻게 신고를 하고 구조했는지, 이 가족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려진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겠죠. 보호소에 입소한 유기견의 상당수는 안락사되는 게 현실. 감자는 운이 좋았습니다. 살아남았고, 이슬씨를 만났습니다. 비록 감자네 가족의 과거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미스터리로 남게 됐지만 감자에게는 기적처럼 한번 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렇게 보호소를 벗어나 제2의 견생을 살기 시작한 감자를 지난 10월 28일, 청주에서 직접 만났습니다. 보호소에서 떨던 시절을 잊은 듯 감자는 천진난만하고 행복해보였습니다.
대전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이슬씨는 몇년 전부터 유기견 사진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보호소 측이 SNS를 통해 입양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유기견 사진을 예쁘게 찍어주는 봉사활동입니다. 최근에는 뜻이 맞는 동료들과 매달 한 번씩 보호소를 방문하고 있는데 그들과 지난 1년간 촬영한 강아지 수가 200마리가 넘습니다.
동물단체 활동가 못지 않은 열정의 소유자 이슬씨. 뜻밖에 그는 반려견을 키운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왜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을까요. 용기를 내지 못했을 뿐 반려견에 대한 이슬씨의 관심과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갈색 털의 강아지를 꼭 입양하겠다는 결심도 진즉에 한 터였죠. 털 색깔에 맞춰 감자라는 이름도 미리 지어뒀습니다.
그날도 보호소에서 사진봉사를 하던 이슬씨. 구석에 쭈그려 앉은 갈색 털 뭉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감자였습니다. 그 순간 이슬씨는 “이 녀석이다” 확신했다고 해요. 이슬씨는 “감자를 만난 건 운명 같았다”며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계속 눈이 갔고 그때 이 강아지를 입양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슬씨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를 바로 보호소로 불러 입양을 결정했습니다. 처음에는 고민하던 예비 남편은 품에 안겨 콧구멍을 핥는 감자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둘의 인연은 시작됐습니다.
확신을 갖고 결정했지만 이슬씨와 감자의 동거는 시작부터 불안했습니다. 겁이 많고 소심했던 감자는 이슬씨 집에 온 뒤 얼어붙어버렸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거리를 떠돌다가 보호소에 입소하자마자 엄마를 잃었고, 보호소에 적응을 하자마자 다시 낯선 공간으로 끌려온 셈이었으니까요. 입양 둘째 날에는 불안해하며 밥도 잘 먹지 못했습니다.
이슬씨가 노련한 반려인이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슬씨 역시 초보였어요. 강아지를 처음 키워보는 이슬씨는 불안한 감자 모습에 감자보다 더 초조해졌습니다. 문제를 해결한 건 시간이었어요. 입양 당시 생후 2개월이었던 감자는 어린 강아지답게 하루가 다르게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편안해졌다고 해요. 이슬씨는 “밥은 잘 먹는지 변은 잘 보는지 하루하루 마음이 내려앉았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지금은 잘 적응해서 혼자 두고 외출해도 잘 자고 잘 논다”고 말했습니다.
감자를 입양한 뒤 이슬씨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사실 이슬씨는 봉사를 함께 다니던 동료 중 유일한 비반려인이었다고 하더군요. 사진 촬영 보조를 담당하는 청주의 카페 대표 왕영이(33)씨는 반려견 ‘치치’를, 같은 사진작가인 김지현(33)씨는 ‘타타’라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거든요.
이슬씨도 입양 이후 반려인의 삶이 어떤지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슬씨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다”며 “스트레스 받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도 감자가 걷기만 해도 좋고 말 그대로 힐링”이라며 웃었습니다.
감자는 다른 강아지들보다 유독 작은 세모 모양의 눈, 하트 모양의 엉덩이, 그리고 하얀 꼬리 끝처럼 독특한 외모로 이슬씨네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개인기도 맹연습 중입니다.
감자는 운 좋게 이슬씨를 만나 행복한 견생을 보내고 있지만 유기동물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매년 10만 마리 이상의 유기동물이 발생하고 있고, 이중 상당수가 새로운 가족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슬씨와 동료들처럼 작은 실천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유기동물의 삶도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이슬씨가 사진봉사를 하는 보호소의 직원은 “실제로 보호소 방문자 중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보고 방문하는 분들이 많다”며 “사진봉사 이후 입양 문의도 많이 늘어서 기여도가 상당히 큰 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슬씨와 동료들 덕분에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는 시민도 생겼습니다. 취재진이 감자를 만난 날 생애 첫 봉사를 위해 보호소를 찾은 전희나(29)씨는 “평소 강아지를 좋아해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참여하는 건 처음”이라며 “직접 보니 유기동물이 너무 많아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사진봉사 동료인 지현씨도 “사진관에 방문하는 손님들이 사진봉사 사실을 접하고 유기동물에게 사용해달라며 물품을 기부해주기도 한다”며 “입양길을 조금이라도 더 열기 위해 예쁘게 꾸며서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슬씨는 동료들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사진봉사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함께 사진봉사를 해온 영이씨는 “사진 촬영에 그치지 않고 유기동물의 입양 문화 개선을 위해 입양후기나 봉사 이야기를 담은 잡지도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감자는 운명처럼 새 가족을 만나 행복한 삶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유기동물이 감자처럼 따뜻한 가족을 기다리고 있죠. 유기동물 입양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이슬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처음 입양을 생각할 때는 걱정이 많을 것 같아요. 저도 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용기를 내서 감자를 입양했거든요. 하지만 생명에 대한 책임감과 애정만 있으면 강아지들도 금방 마음을 열어줄 거예요.”
개st하우스에서는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유기동물들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개st하우스 출연 견공들의 입양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 링크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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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진 기자 orc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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