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울만큼 적중한 경제학자의 예언, 윤석열의 마지막은... [전강수의 경세제민]

전강수 2024. 12. 1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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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윤석열 내란 사태] 국민의 도덕성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전강수 기자]

 12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저녁 비상계엄 선포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는 가운데,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 권우성
19세기 후반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는 불후의 명저 <진보와 빈곤>에서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부패한 민주정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거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떠오른다. 악한 자는 더 악한 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국민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이 구절은 이명박 정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실체와 한국 사회의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한다고 여겨져 여러 사람이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8·2009년에는 부동산 때문에 한국 국민의 도덕성도 타락한 듯 보였다. 세월이 지나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을 맞으면서 부동산 정책이 완전한 실패였음이 드러나자 헨리 조지의 예언이 다시 기억되기 시작했다.

헨리 조지의 예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실현되다

내가 2021년 1월 1일 '알릴레오북스'(https://buly.kr/3CMzOSW)에 출연해 이 예언을 소개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서 실패하면 그다음에는 선동가가 나온다고요. 선동가가 출현해서 국민들이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이명박보다 더한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보죠"라고 전망한 것은 그래서였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의 독재와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을 경험한 우리 국민은 그들보다 더한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뿔싸! 그런 사람이 나오고야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년 7개월 동안 갖은 실정과 비합리적인 행태를 거듭하다가 급기야 국회와 국민을 무력으로 짓누르려는 친위 쿠데타를 자행했다. 말 그대로 최악이 아닌가.
 '12.3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여의도 국회에 투입된 무장 군인들.
ⓒ 연합뉴스/AFP
12.3 비상계엄 선포 후 윤석열이 보인 행태는 기괴하기 짝이 없다. 계엄군에게 국회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한 자가 담화를 통해 자신의 행위는 통치행위이지 내란이 아니라고 강변하며 국민들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지는 모습은 차라리 한편의 블랙 코미디였다. 145년 전 저 멀리 미국에서 한 경제학자가 썼던 문장이 21세기 선진 민주국가로 평가되는 대한민국에서 그대로 구현되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2023년 7월 21 일자 <오마이뉴스> 칼럼("어느 경제학자의 끔찍한 예언... 국민의 전반적 상태 걱정된다" https://omn.kr/24sjm)에서 헨리 조지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우리 국민의 도덕적 상태를 고려할 때 앞으로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정권이 회복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한 바 있다. 대한민국이 이미 국가 소멸의 장기 과정에 들어섰다고 본 것이다.

나는 헨리 조지의 예언에 또 하나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바로 "악한 자는 더 악한 자에 의해서만 쫓겨날 수 있다"는 구절이다. 이 프레임대로 된다면, 포악한 윤석열(12월 12일의 4차 담화에서 드러난 윤석열의 성정은 포악하다는 말 말고는 묘사하기가 어렵다)을 축출하는 일은 그보다 더 악한 자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열보다 더 악한 자라니, 상상하기도 싫지 않은가.

부패하기는커녕 시퍼렇게 살아있는 국민의 도덕성

그러나 비상계엄 사태를 지켜보며 나는 작년에 했던 진단을 수정하게 됐다.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시민들은 물밀 듯 국회로 모여들었고, 국회의원들은 담장을 넘어가며 본회의장에 집결했다. 시민들은 군인들을 밀어내고 버스와 장갑차를 막아섰다. 70세 고령의 노교수 부부가 '이제 우리는 죽어도 괜찮아요!'라며 특임대 버스를 온몸으로 가로막는 모습은 많은 국민의 눈물을 자아냈다.

국회 보좌진들은 스크럼을 짜고 군인의 진입을 막았고, 국회 전산 담당 회사 직원들은 힘겹게 국회에 들어가 본회의장 의결 전광판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대비했다. 그동안 정치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매도당했던 MZ세대 청년들은 대거 국회 주변에 모여서 불퇴전의 결의를 드러냈다. 계엄 활동에 동원됐던 군인들조차 최고 지휘부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국회의원과 시민들을 해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 우리 국민은 악한 대통령을 부러워하지도 닮지도 않았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존중하며 지키려는 국민의 도덕성은 부패하기는커녕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부패한 것은 국민 대중이 아니라 대통령을 비롯한 최상위 기득권 카르텔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윤석열의 '협박'을 들으며 두려움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장으로부터 희망의 고동 소리를 듣는다.

물론 미국 정부가 윤석열의 잘못을 명시적으로 지적하며 민주시민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는 점이 대세 결정에서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최종 심급에서는 국민의 도덕성이 결과를 결정한다. 윤석열과 그 잔당이 아무리 2차, 3차 쿠데타를 획책한다고 하더라도 이 싸움의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야당들과 시민사회 세력이 안심하고 대충 대처해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시민촛불’ 집회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거부권을거부하는전국비상행동 주최로 열리고 있다.
ⓒ 권우성
망가진 나라 복원하는 일에도 신경써야

지금부터는 윤석열을 끌어내리는 일과 함께 망가진 나라를 복원하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비상계엄 선포 이전에 윤석열 정권이 망쳐놓은 일이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법인세 감세, 종합부동산세 무력화, 지방교부세 감액, 투기를 조장하는 급진적 규제 철폐,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여기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책임도 크다), 복지지출과 R&D예산의 축소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지난 2년 7개월 동안 악한 대통령과 그 배우자를 옹위하느라 여념이 없던 검찰도 제대로 수술해야 한다. 또 악당들이 그동안 해먹은 모든 부당이익을 철저히 조사해서 남김없이 몰수해야 한다.

비관적인 예언을 남겨서 우리를 낙담시켰던 헨리 조지는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인권을 쟁취하려고 할 때 이기심의 깃발이 꽂혀 있는 곳이 아니라 의무감의 깃발이 꽂혀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사회문제의 경제학>, 돌베개) 여기서 그가 말하는 의무감이란 정의감·애국심·이타심 같은 것이다. 나는 이번 사태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 다수에게 바로 그 의무감이 충만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니 마음속에서 희망이 고동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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