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 직전에 은인 만난 유기견 ‘귀남이’ [개st하우스]

이성훈,전병준 2024. 12. 14. 00: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만날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구조된 유기견 중 노견, 장애견 등 입양 문의가 끊긴 개들은 보호소에서 쓸쓸히 삶을 마감한다. 그런 '입양 기피견'들에게 가정견으로 살아갈 기회를 주고자, 동물단체 팅커벨프로젝트 황동열 대표는 자택을 보호소로 개조해 10마리를 직접 돌본다. 전병준 기자 동물구조단체 팅커벨 프로젝트의 황동열 대표

영하 6도 한파가 덮친 지난 3일 새벽 경기도 양주의 깊은 산골. 산등성이 너머로 외딴 벽돌집이 보입니다. 동물단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 뚱아저씨(본명 황동열)의 집입니다. 마당에 들어서자 개별 견사 안에 두꺼운 담요를 깔고 앉은 개 8마리가 빼꼼히 고개를 듭니다. 모두 뚱아저씨와 팅커벨이 구조한 유기견들입니다.

그중 유독 활발한 녀석이 눈에 띕니다. 취재진을 발견하자 달려와 곁에 얌전히 앉는 수컷 보더콜리 ‘귀남이’입니다. 2~3살 정도 나이에 건강하고 붙임성까지 있는 녀석. 뚱아저씨가 얼마 전 로드킬 위기에 놓인 귀남이를 우연히 발견해 직접 구조했습니다.

로드킬 위기서 직접 구조…보더콜리 귀남이

로드킬 위기에서 구조 당시 보더콜리 귀남이 모습. 동물단체 팅커벨프로젝트 제공

지난달 20일 오전, 경기도 양주의 외딴 국도를 운전하고 있던 뚱아저씨. 약 500m 이어진 급경사 도로 한복판을 위태롭게 떠돌던 보더콜리 귀남이를 발견했습니다. 산 속 도로는 비좁은 데다 커브와 경사가 심해 평소에도 고라니 등 야생동물의 로드킬이 잦은 위험한 구간이었죠. 그대로 두면 사고 위험이 큰 상황. 뚱아저씨는 급한 대로 인근 주유소 직원의 도움을 받아 녀석을 구조하기로 했습니다.

낯선 곳을 떠도는 유기동물을 구조하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잔뜩 긴장한데다 불안한 상태여서 포획 틀이나 그물 같은 전문 장비를 동원해도 성공을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다행히 귀남이는 경계심이 강하지 않았어요. 뚱아저씨가 챙겨온 간식을 흔들며 조심스럽게 유인했는데요. 싱겁게도 녀석은 도로를 쪼르르 가로질러 뚱아저씨 품에 그대로 안겼답니다. 뚱아저씨는 귀한 반려견으로 살아가라는 뜻에서 수컷인 녀석에게 ‘귀남이’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구조 당시 보더콜리 귀남이 모습. 동물단체 팅커벨프로젝트 제공


구조된 귀남이는 즉시 동물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수의사는 귀남이가 밭에 묶인 채 길러진 방치견 같다고 추측했어요. 방치견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심장사상충에 걸린 상태였거든요. 또 귀남이는 동물등록칩도 없이 철물점에서 파는 불편한 목걸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심장사상충이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다행히 초기여서 두달간 매일 치료약만 챙겨주면 완치는 어렵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소유권이었어요. 누가 구조했든 유기동물은 시보호소에 10일간 머물며 주인을 찾기 위한 공고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열흘 동안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동물의 소유권은 지자체로 넘어가고 이후 입양모집 혹은 안락사 절차를 밟게 됩니다.

귀남이가 시보호소에 입소하면 치료는 사실상 물 건너갑니다. 아픈 귀남이를 차마 시보호소로 보낼 수 없었던 뚱아저씨는 보호소 측과 상의해 방법을 찾았는데요. 귀남이의 10일 공고는 담당 지자체에서 진행하되 치료와 돌봄은 뚱아저씨네 집에서 진행하기로 합의한 것이죠. 공고 기간 동안 견주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귀남이는 팅커벨의 정식 구조견이 됐습니다.

산속 벽돌집에서 구조견 8마리와 사는 남자

그렇게 입성한 귀남이의 새로운 임시 집. 견사들과 함께 덩그러니 놓인 뚱아저씨네 벽돌집은 사실 아늑한 살림집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어요. 실내로 들어가도 몸이 덜덜 떨릴 만큼 추웠거든요. 말을 하는 뚱아저씨 입에서는 하얀 김이 쉴새 없이 나왔습니다. 그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인 탓도 있지만 야외에서 춥게 지내는 우리 개들을 두고 차마 혼자 따뜻하게 지낼 수 없어서 실내 난방은 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곳에서 뚱아저씨는 뒷다리 한쪽이 절단된 진돗개,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견, 13살을 넘긴 노견들까지 8마리를 살뜰하게 보살피고 있었습니다. 귀남이를 제외하면 모두 입양 가능성이 거의 없는 ‘기피 대상견’ 들이죠. 이날 아침에도 뚱아저씨는 사료와 식수를 담은 파란 플라스틱 양동이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구조견들의 빈 밥그릇을 채웠습니다. 개들은 한 그릇 가득한 사료를 단숨에 비우고는 견사를 나와 마당을 뛰어다녔습니다.

입양길이 끊긴 개들의 요양원을 겸하는 뚱아저씨의 자택 모습. 전병준 기자


사실 이곳은 팅커벨의 정식 보호소가 아닙니다. 입양길 끊긴 개들이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일종의 개들의 요양원 같은 곳입니다. 한해 대략 200마리쯤의 유기동물을 구조해 대부분을 입양보내는 팅커벨에서도 입양 기회를 영영 놓친 유기견들은 늘 생깁니다. 대부분은 나이가 많거나 장애가 있는 기피견들이죠. 그런 녀석들이 딱했던 뚱아저씨는 자택 마당에 10마리를 수용하는 간이 보호소를 꾸린 거였습니다. 뚱아저씨는 “월급의 35%는 동물 구조 및 돌봄비에 보태고 있다”면서 “입양 문의가 끊긴 동물을 돌보는 것은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지만 한번 인연이 닿은 동물은 책임지는 것이 단체의 목표여서 버티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려울수록 뚱아저씨가 절대로 빼먹지 않는 일은 또 있습니다. 전날 후원금 결산입니다. ‘사료비 18만7600원, 입양센터 운영비 60만원, 2개월 치 식수 구매비 3만6000원(…)후원금 잔액 514만600원.’ 이날도 오전 7시, 컴퓨터 앞에 앉은 그는 동전까지 계산해서 단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지했습니다. 그는 “회계가 투명하지 않으면 단체의 신뢰가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며 “내게 후원금 정리는 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한번 배우면 척척… 보더콜리 귀남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이날 취재에는 귀남이의 입양 적합도를 평가하기 위해 14년 차 행동전문가 미애쌤도 동행했습니다. 귀남이는 뚱아저씨와 지내며 그새 ‘앉아’ ‘기다려’ 등 기초 행동을 배웠더군요. 크고 작은 다른 개들과도 잘 어울리는 데다 산책 도중 오리나 고양이를 만나도 덤비지 않고 차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높은 곳을 오르내리지 못하는 개 훈련 방법. 보호자 동행 하에 낮은 곳부터 오르내리며 자신감을 키워야 한다. 전병준 기자


다만 방치견으로 자라온 탓인지 계단, 의자 등 구조물을 무서워하더군요. 산책길에 계단을 앞두고 주저앉았습니다. 미애쌤은 두 가지 교육법을 제시했는데요. 먼저 보호자와 함께 낮은 바위를 천천히 오르내리며 자신감을 키우고, 다음으로는 보호자가 먼저 계단을 한두칸씩 디디며 시범을 보여주는 겁니다. 미애쌤은 “보더콜리는 목장에서 가축을 돌보는 목양견 출신으로 영리하고 습득력이 뛰어나다”며 “차근차근 배워나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귀남이는 두 번의 시도 후 의자, 난간 등 높은 곳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렸습니다.

영리한 보더콜리, 귀남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기사 하단을 참조해주세요.

■영리한 보더콜리, 귀남이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3살, 22kg, 수컷 (중성화 예정)
-사람을 좋아하고 교육 습득력이 뛰어남. 앉아, 기다려 가능
-새, 고양이, 다른 개에 대한 공격성이 전혀 없음
-심장사상충 경증 치료 중 (1개월간 약 복용)

■입양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이메일을 보내주세요.
- tinkerbell0102@hanmail.net

■귀남이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48번째 견공입니다 (106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전병준 기자 tellm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