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브다!" 국회 앞 모인 20대 청년들 "불안에 떠는 마지막 밤이길"

김성욱 2024. 12. 13. 2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장] 국회 앞 꽉 채운 수십만 응원봉... "윤석열 대국민 담화 황당, 국민의힘 옹호 그만둬야"

[김성욱, 권우성 기자]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촉구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 권우성
"12월 7일 탄핵안 통과 안 되는 거 보고 나서 오늘까지 매일 저녁 나왔어요. 계속 추워진다는데 다음주엔 더 안 나와도 됐으면 좋겠어요." - 강아무개(여·23·경기도 용인)씨

"어제 대통령 담화 보고 오늘은 꼭 가야겠다 싶어서 왔어요. 가족들이 밤에 잠들기 전에 또 무슨 일 일어날지 모른다고 불안하다고 하는데, 제가 '사람들이 밤에 나와서 감시할 테니까 괜찮을 거야'라고 했어요." - 황아무개(여·21·서울 송파)씨

12.3 내란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국회 탄핵안 표결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1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의사당대로 여의도방면 3~4차로가 국회 정문 건너편부터 여의도공원 주변까지 형형색색 응원봉으로 꽉 들어찼다. 수십만 인파는 오후 9시 30분 현재까지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탄핵 이브"라 불린 이날 응원봉 집회의 주축은 조직된 노동조합도, 시민단체도 아닌 큼지막한 헤드폰을 목에 걸고 가방을 메고 통 큰 바지를 입고 모여든 20대 청년들이었다. 이번 내란 사태 이전까지 도심 집회에서 어김없이 흘러 나오던 민중가요 대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와 <소원을 말해봐>,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APT)>, GOD의 <촛불하나>,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같은 K팝 떼창이 국회와 국민의힘 당사 앞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영하의 날씨 속에 털모자와 털장갑, 망토로 몸을 싸맨 청년들은 쿵쿵거리는 리듬에 맞춰 허리를 들썩이고 노랑·파랑·보라·하양·핑크·자주색 응원봉을 든 팔을 위 아래로 휘저으며 환호했다. 청년들은 가사가 빈 사이사이에 "윤석열 탄핵", "국힘당 해체"를 외치며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으로 행진했다. 응원봉 대신 빵집에서 사온 긴 바게뜨 빵이나 크리스마스 장식용 리스를 흔드는 청년들의 모습도 보였다.

시위 행렬 중간중간 펄럭이던 깃발들도 응원봉의 색깔만큼이나 다양해지고 새로워진 젊은 세대를 대변하고 있었다. 청년들이 든 깃발에 쓰인 문구들은 더 이상 기존에 보이던 조직 단체들의 이름이 아니었다.

'전국 설명충 연합회' /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 / '트위터라 부르는 사람들' / '마인크래프트 광질 연합' / '대한오타게진흥연합회' / '이불 밖은 데인졀' / '전국수족냉증연합' / '달팽이들' / '나루토 달리기 동호회' / '헬9호선' / '걸을 때 휴대폰 안보기 운동본부' / 'Dive in Love…' / '홍대 지하 인디밴드 부흥 위원회' / '엘지 트윈스' / '행성연합 지구본부 한국지부' / '전국 뮤턴트 연합' / '밴드 푸사모'

국회의사당역과 여의도역 인근에서 핫팩과 '윤석열 탄핵'이라고 손수 적어 코팅해온 A4 용지, 초콜렛과 사탕을 나눠주는 청년들의 모습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집회 무대 대형 화면에 얼굴이 클로즈업 돼도 얼굴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손으로 'V'자를 그리며 즐거워했다. 국회 주변 카페와 버스 정류장에는 온통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윤석열 퇴진', '내란동조 국민의힘 해체하라', '페미니스트 이름으로 윤석열을 파면한다', '외계인 침공 시 윤석열 탄핵 반대한 사람부터 먼저 잡아 먹힌다' 같은 손 피켓을 든 청년들로 북적였다.

2차 탄핵안 표결 'D-1'… 국회 앞 모인 청년들 "어제 윤석열 대국민 담화 황당, 분노"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 촉구 집회에서 시민들이 자신들의 쓴 플래카드를 들고 나와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거리에서 만난 청년들은 특히 전날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룹 '라이즈'의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나온 김아무개(여·21·서울 강동)씨는 현장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어제 뉴스를 보고 '정말 대통령이 미친 건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라며 "무슨 짓을 또 할 지 모르겠구나,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 학교 시험기간 끝나고 바로 왔어요"라고 했다.

청년들은 그러면서 여전히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있는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그룹 '뉴진스'의 응원봉에 '탄핵'이라고 적힌 띠를 붙이고 나온 정아무개(남·20·서울 금천)씨는 "어제 대통령은 끝까지 남 탓만 했고, 결국 국민과 싸우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것처럼 들렸어요"라며 "이걸 옹호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국민의힘이 제발 내일 탄핵에 찬성해서 더 이상 위험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아이유의 응원봉을 들고 나온 최아무개(여·27·경기 의왕)씨는 "내일 토요일은 출근해야 하는 날이라서 오늘 밤에 퇴근하자마자 왔어요"라며 "아직도 국민의힘 의원 중에 1표가 부족하다던데, 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지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요"라고 했다.

그룹 '데이식스'의 응원봉을 흔들던 황아무개(여·23)씨는 "아직도 뻔뻔하게 대통령 편을 들고 계엄에 동조하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과연 시민들이 이렇게 모이지 않았으면 지금 이 나라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내일 탄핵이 될 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이만큼 온 것도 오로지 여기 모인 사람들 때문 아닌가 싶어요. 국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그걸 알고 반성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응원봉 든 청년들 "탄핵 이브, 불안에 떠는 마지막 밤 되길"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국민의힘 해체를 촉구하는 '윤석열차' 찢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권우성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국민의힘 해체를 촉구하는 '윤석열차' 찢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권우성
앞서 지난 7일 국회에서는 12.3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표결이 예정돼있었으나, 국민의힘의 단체 불참으로 끝내 무산됐다. 윤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12.3 내란의 정당성을 강변하면서 퇴진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내일 14일에는 윤 대통령에 대한 두번째 탄핵안 표결이 예정돼있다.

윤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국회 재적의원 300명 중 3분의 2인 200명 이상의 찬성이 나와야 한다. 현재 국민의힘에서는 순서대로 안철수(4선·경기 성남분당갑) → 김예지(재선·비례) → 김상욱(초선·울산 남갑) → 조경태(6선·부산 사하을) → 김재섭(초선·서울 도봉갑) → 진종오(초선·비례) → 한지아(초선·비례) 의원 등 총 7명이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등 탄핵에 찬성하는 야당이 192석인 점을 감안하면, 탄핵안 가결까지는 국민의힘 쪽 1표가 부족한 상황이다.

그룹 '아이브'의 응원봉을 들고 나온 박아무개(남·22·경기 안양)씨는 "오늘 밤은 긴 밤이 될 것 같아요"라고 했다.

"벌써 일주일도 지났지만 12월 3일 밤의 기억이 생생해요. 저는 몰랐는데 우리 형이 그날 국회 앞으로 갔었더라고요. 만약 그날 형이 죽었으면 어떡해요? 일반 사람들과 동떨어진 한 인간이 대통령 자리에 있는 게 너무 불안해요. 오늘 밤이 불안에 떠는 마지막 밤이 됐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없어져 버렸지만, 오늘이 탄핵 이브가 됐으면 좋겠어요."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