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와 등지며 ‘불통’ 마이웨이… 尹, 1000일만에 ‘계엄’ 자충수
정치권 겨냥 ‘강골검사’ 국민적 신뢰
‘국민이 키운 대통령’ 모토 대권 잡아
편중 인사 등 초반부터 온갖 구설수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 발생시킨 비상계엄 선포 태풍에 휘말려 탄핵 위기라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 3일은 윤 대통령이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1000일째 되던 날이었다.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겠다”며 느닷없이 계엄을 발령했던 대통령은 정작 본인 스스로가 반헌법적 행위 여부를 심판받을 처지가 됐다. 거리의 집회 물결로 확인되는 커다란 국민적 분노 속에서 윤 대통령의 정치생명은 이대로 막을 내릴 공산이 큰 상황이다.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정치인·기업가를 다수 수사한 강골 검사의 이미지로 인식돼 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에 의해 검찰총장에 임명됐던 그는 2021년 3월 문재인정부의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크게 반발하며 총장직에서 사퇴했다. 이후 정치 입문을 선언했고, 본인의 첫 선거였던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선거에 당선됐다. 윤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은 ‘국민이 키운 대통령’이었다.
검사 시절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을 모두 수사했으며 정치적 기반이 전무했던 그는 공정과 법치의 이미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윤 대통령이 2013년 여주지청장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때 윗선의 외압에 부딪히자, 국정감사장에 나와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며 의사결정 과정 모두를 설명했던 일이 유명하다. 그는 문 전 대통령에 의해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에 연이어 임명됐음에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문재인정부 인사들의 비리를 다수 수사했다. 이는 권력에 좌고우면하지 않는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각인됐다.
하지만 이렇게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오른 윤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많은 실망과 비판을 받기 시작했고, 민의는 곧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검찰 편중 인사, 사적 채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 이후 욕설 의혹 등 그를 향한 크고 작은 비판과 의문이 계속됐다. 야당은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 여러 의혹 제기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김 여사에게 많은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총장이었던 윤 대통령 때문에 공정한 수사와 단죄를 받지 못했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팽배했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야당의 주장들을 ‘가짜뉴스’에 기반한 불법적 정권퇴진운동으로 인식했다. 물론 ‘쥴리 의혹’ ‘청담동 술자리 의혹’ 등 제기된 의혹 자체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된 것들도 다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한 더욱 큰 문제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 점점 배타적이고 극단적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전 정권의 실정을 탓하거나, 참모의 간언에도 본인의 의사를 굽히지 않거나,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 “반국가세력을 척결해야 한다”고 자주 표현하기 시작했다. 취임 직후 50%를 넘었던 지지율은 불과 2개월여 만에 20%대로 떨어졌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대통령의 권위와 국민 여론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 어려워했다.
윤 대통령의 대통령직 수행 기간은 곧 야당과 불화한 기간이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껏 모두 25건의 법률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거부권을 쓴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대통령실은 야당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했으며 거부권 숫자가 아닌 위헌적 법률 발의 숫자로 고쳐 읽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윤 대통령이 본인과 친인척의 특별검사 수사를 막기 위해 사적인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비판은 결코 잦아들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야당뿐 아니라 ‘국민 눈높이’를 강조한 여당과도 불화해 왔다. 지난 1월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문제와 관련해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다가 윤 대통령으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철회당한 일이 대표적이다. 이후 당정이 갈등을 봉합했다고 밝혔으나 4월 총선은 범야권이 300석 중 192석을 가져가는 여권의 초유의 패배였다. 윤 대통령은 한동훈 위원장의 국민의힘 대표 선출 전후로도 ‘영부인 문자’ 파문 등 크고 작은 갈등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은 의사 증원 등 ‘4대 개혁’을 내세우며 유능한 정부를 강조했지만, 임기 내내 ‘여소야대’ 국면 속에서 정책이 꽃을 피우기엔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윤 대통령은 국회 개원식과 시정연설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정치브로커 명태균씨 의혹이 불거지자 야당의 공세는 최고조에 달했다.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여론조작, 공천개입, 창원 산업단지 부지선정 정보 유출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하지만 야당은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연쇄적인 탄핵안, 사상 초유의 야당 단독 감액 예산안을 올렸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본인이 말해온 모든 가치를 뒤집어버리는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절차상 필요로 소집된 한덕수 국무총리 등 일부 국무위원이 반대를 표했으나 흥분한 대통령을 막지 못했다. 야당은 참석 국무위원들에 대해서도 계엄의 책임을 묻겠다는 태세다. 윤 대통령은 취임 당시 세계 시민을 향해 “공권력과 군사력에 의한 불법 행위로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고 자유 시민으로서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모든 세계 시민이 자유 시민으로서 연대하여 도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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