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할 가치…한국 찾은 파브리스 이베르 개인전 [더 하이엔드]
■ 이달의 전시 : 2024년 12월
「 더 하이엔드에서 매달 볼 만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일상에 통찰을 더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이달의 전시를 만나보세요. 관람에 도움이 되는 팁도 준비했습니다.
」
서울에 둥지 튼 우손갤러리의 첫 전시
파브리스 이베르: 삶은 계속된다
기간: 12월 12일 ~ 2025년 2월 8일
장소: 서울 성북동 우손갤러리, 대구 봉산동 우손갤러리 동시 개최
나무들이 뿌리 내린 숲, 흙으로 만든 사람 형상의 조각-. 프랑스 예술가 파브리스 이베르는 자연의 유기적 형태와 생명체의 순환을 그린 그림을 통해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한다. 그는 2022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개인전 ‘더 밸리’와 지난해 이탈리아 루이비통 파운데이션 전시 ‘보이지 않는 숲’으로 큰 화제를 모은 63세 거장이다. 그림은 어린아이가 봐도 이해될 만큼 쉽게 다가온다. “물과 뿌리처럼 생명이 시작되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작가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거나 스스로 질문한 것들을 이야기처럼 드로잉하고 높은 채도로 색을 입힌다. 수채화처럼 묽게 채색하는 오일페인팅 기법은 작가만의 특징이다.
직관적인 표현을 위해 그림 속에 단어도 자주 등장한다. 한글이 쓰인 한 작품에 대해 묻자 “한국 관람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라며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서울에 영감을 많이 받았는데,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모습이나 파란 지붕이 유독 많은 풍경이 인상 깊었다”고 답했다. 프랑스 방데 지역에서 자란 작가에게 자연은 중요한 주제다. 그는 어릴 적 살던 터가 황폐하게 개발되자, 99만㎡(약 30만 평) 땅을 사들여 다시 숲을 조성했다. 씨앗을 심지 않고 훌훌 뿌려서 자연스럽게 생명체가 자생할 때까지 기다리는 과정 역시 작품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현대 사회가 전쟁·정치·경제·기후 위기로 어지러울 때 이베르의 작품은 삶의 근본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게 한다.
Tip. 이번 전시는 대구에 소재한 우손갤러리의 서울점 개관 기념전이다. 서울 성북동에 소재한 50년 전 붉은 벽돌 주택을 김세진 건축가가 성공적으로 리노베이션했다. 파브리스 이베르의 작품은 서울 22점, 대구 30점으로 나누어 소개하므로 두 전시를 이어서 관람하는 것도 좋겠다.
강남에 문 연 프로젝트스페이스라인 개관전
박기원, 박소희 2인전: 모든 조건이 조화로울 때
기간: 11월 12일 ~ 2025년 2월 8일
장소: 서울 삼성동 프로젝트스페이스라인
2008년 설립된 라인문화재단이 올해 11월, 삼성동에 비영리 독립전시공간인 프로젝트스페이스라인을 개관했다. 강남 고층 건물 사이 위치한 단독 문화공간으로, 시각 예술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장르의 문화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첫 개관전은 설치미술과 박기원과 식물 아티스트 박소희의 전시로 꾸려졌다. 두 작가는 전시장 1층부터 3층까지 건축적 재료와 식물의 조합으로 공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2층 전시장에는 박기원 작가가 벽면에서 빛이 뿜어 나오는 작품 ‘중정’을 설치하고 박소희 작가가 바닥 면에 식물 뿌리의 형태와 구조를 재해석한 ‘Le sol_soil’을 구성해 이목을 끈다. 라인문화재단은 프로젝트스페이스라인을 시작으로 2026년에는 서울 성북동에 1만㎡ 규모의 미술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일상적 노동의 현장이 일깨우는 것
박진아: 돌과 연기와 피아노
기간: 12월 3일 ~ 2025년 1월 26일
장소: 서울 삼청동 국제갤러리
미술관, 레스토랑, 피아노 공장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박진아 작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건을 회화로 그려냈다. 매일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장면이지만, 작업자들이 최상의 결과물을 선보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순간이 그림으로 옮겨지자 더 큰 에너지를 전달한다. 전시 제목인 ‘돌과 연기와 피아노’는 작가가 다룬 세 가지의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돌’은 지난해 부산시립미술관 그룹전에서 목격한 미술품 설치 현장을, ‘연기’는 국제갤러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주방의 분주한 모습을 담았다. ‘피아노’는 독일 바이로이트에 위치한 슈타인그래버 피아노 공장에 방문했을 때 포착한 풍경이다. “위계질서 없는 수평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 바 있는 작가는 화면에서 사회적 맥락이나 특정 시간대를 제거함으로써 관객에게 상상의 여백을 제공하고, 회화의 순수한 존재감을 일깨운다.
수행으로 완성한 기하학적 화면
한나 허: 8
기간: 11월 13일 ~ 12월 21일
장소: 서울 연지동 두산갤러리
정교하게 구획된 그리드 위로 기하학적 형상이 펼쳐지는 한나 허 작가의 회화. 언뜻 보면 기계의 힘을 빌린 것 같지만 작가가 수없는 붓질로 완성한 대작이다.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미국 LA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인 허 작가는 두산갤러리에서 국내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8’이라는 숫자를 많이 생각했다”며 입을 뗀 작가는 “조형적으로 대칭이면서 아름다운 완벽에 가까운 형태를 떠올리며 전시 내외부 공간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장 가운데 4개의 가벽을 설치해 8개의 작품을 안팎으로 걸었는데, 트인 사각형의 구조로 설치해 작품 사이마다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유도했다. 관객은 자발적으로 유기적인 형태의 동선을 그리며 공간의 안과 밖을 의식하게 된다.
두산갤러리는 14년째 한국 국적의 청년 예술가를 해외에 소개하는 지원 사업을 운영했다. 올해부터는 한국 작가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한다.
Tip. 갤러리 밖 윈도우갤러리에는 허 작가가 초청한 나미라 작가가 신작 ‘Chord’를 선보인다. 허 작가 작품의 주재료 및 색상 모티프를 참조한 설치 작업으로 연결성을 부여했다.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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