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불편했지만 끝까지 읽어봤더니
[최서정 기자]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전화 너머 들려온 엄마의 목소리는 다소 격앙되어 있었다. 어렵게 책을 구해 읽었더니 에잇, 이건 예술보다도 외설에 가까운 것 같다며,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그녀가 그렇게 혹평한 책은 바로 한강의 <채식주의자>였다.
그땐 엄마의 반응이 과하다고 여겼다. 나는 <작별하지 않는다>를 감명 깊게 읽은 데다 노벨문학상이라는 권위까지 더해져, 작가에 대한 신뢰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쾌감까지 토로하던 엄마를 살살 달래던 기억이 난다.
"아직 절반밖에 안 읽었다며. 끝까지 읽어 봐. 다른 답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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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작가,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책들이 10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진열되어 있다. 시민들이 한강 작가의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
| ⓒ 이정민 |
적어도 <채식주의자>를 펼치기 전까지는, 이 모든 논란이 단순히 한국의 '편 가르기' 문화 현상이겠거니 싶었다.
'절반을 읽은' 엄마가 그랬듯, 노벨문학상 작품이라 해도 모든 독자를 만족 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더구나 예술인가 외설인가는 '성(性)'을 소재로 다룬 작품에서 늘 등장하는 논쟁거리다. 꼭 문학만 그런 것도 아니다.
마네의 '올랭피아' 같은 대작들도 당대에는 음란물 취급을 받았다. 오늘날 패브릭 포스터로 판매될 만큼 대중화된 것을 보면, 그 당시 비난한 귀족들은 까무러칠지도 모른다. 그만큼 시대와 보는 눈에 따라 평가는 달라진다.
'오지랖'이라는 얘기도 많았지만, 목사라는 작가의 삼촌마저 본인 SNS에 "형부와 처제 관계 및 장면 묘사는 비판받을 만하다"며 "세상을 밝고 아름답게 만드는 데 역기능을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마 목사라는 직업적 가치관이 크게 작용했을 테지만, 문학은 창의적이되, 근친상간이나 동물 학대같이 보편적 가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일각의 반응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한때 엄마의 혹평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됐다.
책을 다 읽고 내게 보내온 엄마
그런데 놀랍게도, '책을 다 읽은' 엄마는 내게 책을 권했다. 굳이 경주에서 서울까지 자신의 손때 묻은 책을 택배로 보내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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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표지 |
| ⓒ 교보문고 |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큰 고깃덩어리라도 얹힌 듯 가슴이 답답해졌다. 특히 형부와 처제가 관계를 맺는 부분은 파격적이었다. 불쾌감과 울렁거림이 스멀스멀 올라왔던 건, 작가 특유의 서정적이고 시적인 묘사가 너무나 실제 같은 느낌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엄마가 그랬듯 2부까지 읽고 덮었다. 작품에 내재된 함의가 무엇인지는 대략 알겠으나, 당시 이 소설을 껴안을 힘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역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냐며, 더러워서 안 읽고 싶다며 불평했다. 그런 내게 엄마는 '이유가 있다'라며 일단 끝까지 읽어보라고 권유했다.
시간이 지나 책을 다시 펼쳤다. 주인공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3부였다. 그간 영혜에게만 주목했던 나는 점차 인혜의 시선을 따라가며, 채식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결국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폭력'이었다. 그리고 그 폭력은 단지 가부장제에 국한된 내용만은 아니었다. 흔히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관습에서 벗어난 이들을 우리는 이상행동으로 간주한다. 이처럼 <채식주의자>는 사회 전반의 보편적 폭력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다.
영혜에게 폭력을 가한 건 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결혼 생활 내내 조금의 애정도 주지 않은 남편, 채식주의자에 대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남편의 직장 동료들 모두 그랬다.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인 것은 아니다.
성인이 되어 '비건(채식주의자)'임을 선언한 친구와 함께 했던 식사 자리가 문득 떠올랐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인도식 콩 카레를 파는 식당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육식을 굉장히 좋아하던, 서울에 몇 없는 비건 식당을 찾기 위해 식당을 여러 번 검색해야 했던 나로서는 친구에게 '왜 굳이 남들과 다른 길을 걸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었다. 아마 코를 찌르는 강렬한 항신료 냄새와 다소 빈약해 보이는 음식도 은연중 채식에 대한 거부감을 형성하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나 역시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를 바 없이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3부에 이르러 영혜는 스스로 식물이 되기로 한다. 육식을 거부하는 채식만으로 진정한 비폭력 인간이 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채식주의자>, p.179)
이 대사는 폭력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버티는 삶의 실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실상을 그린 작품.
그러니까 주인공은 영혜만이 아니었다. 영혜의 언니인 인혜 역시 가부장적 아버지 밑에서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참고 살아왔다. 차이라고 한다면, 영혜는 서서히 말라갔고, 인혜는 고통 속에서도 세상을 살아내려는 희망을 보여준다는 것.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작가 또한 작품에 외설 등의 논란이 덧씌워질 줄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왜 알면서도 '굳이' 폭력적이고 성적인 내용을 담았을까.
이에 대해 작가는 2016년 5월,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렇게 답한다. "(영혜가) 왜 폭력을 견디기 어려워하는지는 결국은 폭력적인 장면을 통해 말할 수밖에 없기에, 힘겹게 써야만 했다"고. (2016.05.17. KBS 'TV, 책을 보다 - 2016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을 만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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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16.05.17. KBS 'TV, 책을 보다 - 2016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을 만나다' 인터뷰 중 화면갈무리. |
| ⓒ kbs |
역설적이게도 불편함 덕분에 불편한 진실에 진정으로 가 닿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폭력적인 장면에 민감하다"던 작가가 고통을 참으면서까지 비극을 격렬하게 그려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한강 작가가 느꼈던 고통과 폭력의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결국 엄마와 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예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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