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해외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
외국 학자·기자 관심 쏟아져
한순간 위상 추락한 대한민국
경제는 외국 투자자 요릿감 돼
몇십년 미래 결정할 중대 기로
납득할 조치 빨리 진행시켜야
무거운 마음을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은 12·3 비상계엄 이틀 후인 5일 밤이었다. 수개월 전부터 예정돼 있던 두 건의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도하포럼은 작금의 우크라이나 및 하마스 전쟁과 전후 질서의 향방,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이후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토론하고 기후변화와 디지털 전환을 논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내가 만난 외국 인사들은 하나같이 한국에서 진행되는 내란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했다.
12월 7일 첫날 그들은 대통령의 소위 비상계엄 조치가 불과 몇 시간 만에 국회에 의해 뒤집힌 상황에 대해 놀라워하고,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궁금해했다. 8일 회의 둘째날에는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두 가지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려 있었다. 내란으로 성격이 규정돼 가는 그 조치를 주도한 대통령이 어떻게 아직도 모든 권한을 갖고 심지어 행사하고 있는지, 그리고 집권당이 왜 대통령 권한 박탈 조치를 막아서고 있는지에 대해서였다. 전자의 경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상황이 수습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다든가, 후자의 경우 여당도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합의하느라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설명에 대해서는 별로 수긍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현재 내란이 계속 진행 중이며, 집권당이 대통령과 뜻을 함께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더 믿는 것 같았다.
이 분야 전문가라는 일부 정치학자들은 쿠데타에는 무수한 반쿠데타가 오가고 혁명기에는 무수한 반혁명이 생긴다는, 소위 전문가 진단으로 한국 상황을 일방적으로 규정해버려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우리가 저렇게 보이는구나 생각하면서도 진실을 규명하고 회복하려는 노력을, 법치를 지키려는 노력을 좀 더 강조하고 싶었다. 게다가 대단히 문제 많은 개도국에서 온 인사들은 동질감을 느끼며 깊이 이해한다고 해 나를 당황하게 했다. 수치스러움은 온전히 혼자서 삭여야 하는 나의 몫이었다.
외국 언론사 관계자들의 질문은 좀 더 날카롭고 직설적이었다. 누가 이길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 나를 당황케 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사례를 들며 이런저런 추론을 하는 걸 듣고 있기에는 상당한 심리적 방어기제가 필요했다. 나는 4년 전 미국 수도에서 일어났던 의회난입 사태를 언급했다. 한순간에 주요 7개국(G7)에 버금가는 선진국에서 어느 평범한 개도국으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그렇게 간주해버리는 서방 언론의 냉혹한 단호함을 확인하고 모골이 송연했다.
급전직하하는 한국경제의 현 상황에 대해서는 깊은 서글픔을 느꼈다. 우연히 얘기해본 어느 투자은행 인사와의 대화에서는 마치 살찐 양을 앞에 놓고 어떻게 요리해 볼까를 궁리하는 탐욕스러운 눈빛을 봤다. 어쨌든 그들에게 지금의 한국은 1997년보다는 훨씬 덩치가 큰 요리감에 불과하다. 불확실성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고, 지난 토요일의 결정은 그들의 믿음에 확신을 더해 준 것 같았다. 그들은 한국에서 분란과 대치는 계속되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럴 것이라고 믿고 싶어했다.
어느 경제전문지 기자는 인적 청산을 얘기했다. 사람이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내란이 수습된다고 판단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일부 고위관료들이 한국을 대표해서 한국경제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그들이 문제의 계엄 국무회의에 참석한 인사인지를 질문해 나를 무척 놀라게 했다. 대통령의 성정을 아무리 자세히 얘기해도, 국무회의는 의결기구가 아니라 심의기구라고 해도 그들에게 계엄 국무회의의 참석은 일종의 주홍글씨였다. 적어도 선진국의 책임 있는 정책결정자라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예견하고 어떠한 수단을 쓰더라도 막았을 것이라고, 이도 저도 안 되면 당장 사표를 쓰고 반민주적 폭거를 공개했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지금 그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리스크라는 말을 덧붙였다.
두 번째 회의가 시작됐다. 세계 경제 전망, 일자리의 미래, 경제안보와 지정학, 국제무역질서의 미래에 관해 그동안 얘기한 것들이 모두 공허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정성 들여 가꿔온 잔칫집에 누가 폭탄을 던진 상황에 처해 있다. 부서진 집을 어떻게 수선하는지 누가 봐도 납득하고 신뢰할 만한 조치를 단호하고 빠르게 진행시켜야 한다. 향후 몇십년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모두 허리 굽혀 사죄하세요”…김문수, 홀로 뻣뻣
- 계엄 1주일, 금에 511억 몰렸다…6일 연속 상승
- ‘국민의힘 해산’ 국민청원 24만명 돌파… 분노한 민심
- ‘끝까지 지지합니다’… 대통령실 앞 응원화환 100여개
- 의대 교수들 “내란 수괴의 의대증원, 원천무효 선언하라”
- 김어준 “계엄 선포후 36시간 은신…죽는 줄 알았다”
- 김건희 모교에도 대자보…“더는 부끄럽게 말고, 내려오라”
- “박수홍이 여자랑…” 허위사실 유포 형수, 결국 ‘벌금형’
- 11월 취업자수 12.3만명 늘었지만…제조업 9.5만명 줄어
- 이 와중에… 국민의힘 원내대표 추대 놓고 시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