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상승 땐 수출 호재? 그건 과거의 ‘환상’
고환율이 악재인 이유
최근 이어지는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 현상이 내년 수출 기업의 어려움을 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통상적으로 원화값이 내려가면 수출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최근의 환율 변동은 국내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관측이다.
1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5.3원 내린(환율은 상승) 1432.2원(오후 3시 30분 기준)을 기록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화값은 큰 변동성을 보이며 1500원대에도 이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원화값 하락은 우선 대기업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국내 대기업의 수출 전략이 과거 ‘가격 경쟁’에서 ‘기술 경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동차·배터리 등 일부 업종은 현지 생산을 확대하며 환율의 영향이 전보다 감소했다. 원화 가치가 내리면 더 싼 값으로 해외에 상품을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이 좋아진다는 말은 점점 옛말이 되고 있다.
산업연구원의 올 초 분석 결과 실질실효환율(한 나라의 화폐가 교역 상대국 화폐보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가졌는지 나타내기 위해 물가나 교역조건 등의 변동까지 고려한 환율)이 10% 하락(원화 가치 저평가)하면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은 0.29%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화값 하락은 미국에 설비투자를 늘릴 계획인 SK하이닉스, 달러화로 부채를 일으켜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 LG에너지솔루션 등의 대기업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중소기업에게 원화값 하락의 영향은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국내 산업구조상 중소기업이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하고 이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경우가 많다. 환율 때문에 중간재 수입 비용은 높아지는데, 중소기업은 대기업 납품 가격에 이를 반영하기 쉽지 않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중소기업의 채산성(이익이 나는 정도)부터 하락한다는 이야기다. 중소기업중앙회의 12월 중소기업경기전망에 따르면 지난달 중소기업이 느끼는 경영 애로 요인에서 ‘환율 불안정’이 15.4%로 전월(11%) 대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원화값만 내리는 게 아닌 것도 변수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달러 대비 원화 가치만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가치도 낮아졌기 때문에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옛날처럼 크게 확보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실제 뉴욕타임스(NYT)와 블룸버그 등은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면 중국은 맞불 조치로 위안화 평가절하를 통해 대응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 수출 입장에선 경쟁자가 많아지는 격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앞서 ‘환율 변동이 수출입과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수출 대상국의 달러 환율 상승은 (한국) 수출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전날보다 0.33% 오른 106.39를 기록했다.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식품 등의 업종에도 원화 가치 하락은 특히 부담이다. 일례로 CJ제일제당은 지난 3분기 사업보고서를 통해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세후 이익이 142억원 감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집계한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5% 상승한 127.5(2014~2016년 평균=100)를 기록했다. 점점 비싸지는 곡물 등 원자재를 환율 때문에 더 비싸게 사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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