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한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 "외면할 수 없는 질문 던져"
[윤현 기자]
▲ 수상 소감 밝히는 한강 작가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열린 연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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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은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랜드마크인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았다.
아스트디르 비딩 노벨재단 이사장은 시상식 개회사에서 각 분야 수상자를 소개하면서 문학상과 관련해서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배경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심오하게 탐구한 작품에 수여됐다"라고 말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잔혹성과 상실감 이야기해"
한강은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에 이어 네 번째로 문학상을 받았다. 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은 시상에 앞서 연설을 통해 한강의 작품 세계와 수상 배경을 설명했다.
맛손은 한강의 작품들에 대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형언할 수 없는 잔혹성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을 이야기하고 있다"라며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며, 궁극적으로는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그는 한강의 주요 작품을 관통하는 색상을 '흰색'과 '빨간색'이라고 풀이했다. 이어 "흰색은 한강의 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눈(雪)으로 화자와 세상 사이에서 보호막을 긋는 역할을 하지만, 슬픔과 죽음의 색이기도 하다"라고 묘사했다.
또한 "빨간색은 삶, 한편으로는 고통과 피를 의미한다"라며 "흰색과 빨간색은 한강이 작품을 통해 되짚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한다"라고 밝혔다.
맛손은 한강이 2021년 발표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언급하며 "한강의 작품에서는 꿈과 현실, 과거와 현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변화가 끊임없이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상처를 입고 부서지기 쉬우며 나약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거나 질문을 던질 만큼의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밝은 표정으로 노벨문학상 수상하는 한강 작가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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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한강은 모든 참석자가 기립한 가운데 무대에 올라 놉 메달과 증서를 받고 미소를 지었고, 곧이어 국왕과 악수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이며, 노벨문학상을 받는 것은 1901년 이 상이 제정된 이후 123년 만에 처음이다.
노벨상 시상식을 상징하는 무대 위 '블루 카펫'을 밟은 한국인은 한강이 처음이다. 김 전 대통령이 받은 평화상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별도의 시상식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로써 한강은 세계 최고 권위인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한국 문학의 위상을 높였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물리학상 존 홉필드와 제프리 힌턴, 생리의학상 빅터 앰브로스와 게리 러브컨, 화학상 존 점퍼와 데미스 허사비스, 데이비드 베이커 등이 상을 받았다. 수상자는 상금 1100만 크로나(약 14억4000만 원)도 받는다.
"문학,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
한강은 시상식이 끝난 뒤 노벨상 연회에서 밝힌 수상 소감에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라며 "우리를 서로 연결해 주는 언어, 이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품게 된다"라고 밝혔다.
그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여덟 살 때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중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다른 아이들과 함께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고, 그 처마 아래에도 여기만큼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라며 "쏟아지는 비와 내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모든 사람들과 길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이 비를 보고 있었고, 그들도 축축함을 느끼고 있었다"라며 "경이로운 순간이었고, 수많은 일인칭 시점을 경험했다"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읽고 쓰는 데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저는 이 경이로운 순간을 반복해서 경험했다"라며 "나는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 깊은 곳으로,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그 실에 맡기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난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등은 수천 년 동안 문학에서 제기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라며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인간으로 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묻는 언어가 있다. 이 언어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관점을 상상하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한강은 "문학상이라는 상의 의미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라며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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