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헌정 초유 감액예산안 강행…여당행 임박에 입맛대로 추경 구상?
"건전재정으로 위기 극복 못해…
증액 필요한 부분은 추경 통해서"
'4.1조 감액' 된 내년 예산 673.3조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이 야당 단독 순감 수정을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본회의 직전까지 증액안을 제시하며 더불어민주당과 협상을 시도했으나 끝내 결렬됐다.
10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는 정부안 677조4000억원(총지출 기준) 대비 약 4조1000억원을 감액한 673조3000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이 의결됐다. 예산 증액에는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순수한 감액의 경우 정부의 동의가 필요 없다. 즉 야당이 '칼질'한 그대로 내년 정부예산을 확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민주당은 계엄·탄핵 정국으로 경제 위기 상황이 닥친데 대한 국회의 '책임'을 강조하며 이 같은 예산안 단독 처리를 강행했다. 내년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추경(추가경정예산)' 공언까지 덧붙였다.
이를 두곤 민주당이 아직 야당이지만 조기 대선 기류 형성에 따라 '여당으로의 전환 기대'가 고조되면서, 입맛대로 추경을 구상하고 있단 관측이다. 과반 의석의 국회 권력에 더해 비상계엄 논란으로 정국의 주도권과 예산 편성 주도권까지 장악하면서, 벌써부터 집권당을 방불케 하는 광폭 행보를 펼치는 셈이다.
내년 예산안에서는 정부안에 대비, 구체적으로 △정부 예비비(2조4000억원) △국고채 이자 상환(5000억원) △검찰 특정업무경비(506억원)와 특수활동비(80억원) △대왕고래 프로젝트(497억원)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특활비(82억5000만원) 등이 삭감됐다.
지난 8일 민주당은 "내란(계엄) 사태를 반영했다"는 이유로 기존 감액 금액인 4조1000억보다 7000억원 늘어난 4조8000억원 규모까지 깎겠다고 했으나 이는 보류한 바 있다. 추가 삭감을 예고했다가 철회한 범위는 전직 대통령 경호예산, 대통령실 공무원 급여 삭감 등이었다.
다만 이날 여야는 본회의에 민주당안인 삭감 예산안을 상정하기 직전까지도 협상을 이어갔다. 민주당 의원들 입장에서는 지역구 민원 예산도 증액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국민의힘에서도 이 때문에 느긋한 인식이 있었던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공백 등이 변수가 돼 제대로 협상을 이어가지 못했던 것은 변수가 됐다. 이에 민주당은 '10일'까지란 의장의 제시 시한에 맞춘 '감액안 처리'를 하면서도, 이를 상쇄할 '추경' 카드를 동시에 꺼내들며 상황을 역전시켰다.
정부의 동의가 필요한 증액심사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막판 증액 협상을 거부하고 기존 삭감만 반영된 내년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겠다는 민주당의 행태에 '이재명 대표 방탄용이자 국가마비용'이라 지적했다. 또 향후 감액 예산안 단독 처리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점은 전적으로 민주당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는 경고를 했지만, 민주당은 여기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민주당의 이 같은 행보는 민주당이 내년 상반기 중 정권 인수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는 것에 따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본회의에 앞서 열린 비상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 모두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오늘 우리 민주당은 예산안 처리를 끝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역대급 내수 한파에 고용은 더 악화됐고 생산·소비·소투자, 트리플 감소로 민생이 파탄 지경이다. 신속한 예산안 처리가 현재의 불안과 위기를 해소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박찬대 원내대표는 "경제 불확실성을 빠르게 해소하고, 정부가 내년 국가 살림을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오늘 본회의에서 즉시 통과시키겠다"며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해 증액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추후 추경 등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했다.
삭감 예산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민주당 소속 박정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지금은 건전재정 정책으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좀 더 과학적 예산이 추경을 통해서 마련돼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민주당 정책위의회도 본회의 종료 후 보도자료에서 "감액 중심의 예산안으로 국채발행 규모를 3조7000억원 줄여 재정여력이 확보된 만큼, 이를 통해 향후 정부가 민생경제에 필요한 사업에 대해 추경을 편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 관계자는 "어쨌든 민주당으로선 예산안을 빨리 늦지 않게 처리해 혼란한 국정을 자신들이 다 해결한다는 면모를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최근 철도노조 파업 현장을 방문하고, 야당 정무위원들이 한국거래소를 방문하는 것 등 경제를 강조하면서 일을 잘한다는 행보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냐"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런 것들도 조기대선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이고, 추경 발언으로 사실상 예산 증액과 복구를 시사한 것 또한 '어쨌거나 우리 경제를 민주당이 살릴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민주당은 이번 예산안에서 대통령실·검찰·경찰특활비를 전액 삭감하고 정부 예비비를 크게 줄이는 대신, 지역구 민원 예산마저 포기하는 '강공'에 나서기도 했다. 이와 관련, 지역구 예산은 추경을 통해 충당할 수 있으니 결국 시간의 문제로 보는 기류가 감지된다. '이재명표 예산'으로 수식되는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도 반영되지 않았는데, 추경에 얼마나 배정될지도 관건이다.
이날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에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예산 3000억원 증액을 포함해 총 1조8000억원을 증액하고, 예비비 등 1조6000억원은 복원하는 등 총 3조4000억원 예산 증액을 제안했지만 민주당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며 막판 협상은 결렬됐다. 민주당이 대왕고래 예산 전액 삭감, 고교 무상교육 국비지원 유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확대 등에 대한 입장을 고수한 데 따른 것이었다.
특히 '지역사랑상품권'과 관련해 김상훈 의장은 "민주당은 끝까지 자신들의 몫을 챙기겠다며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예산 1조원을 요구했다"고 협상 결렬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역사랑상품권은 2018년부터 올해 예산까지 총 국고 5조5000억원 이상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세재정연구원에서 효과가 미비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고 감사원 감사 결과 경기도 지역사랑상품권 운영대행사가 선수금을 불법적으로 운용하는 등 심각한 문제가 적발된 바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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