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싸울 때” “‘단일대오’만으론 안돼”…의협회장 후보들의 출사표
“10개월간 ‘단일대오’ 투쟁만 주장하며 우리가 얻은 게 뭔가? 더 이상 의사들 내부의 힘만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
“의사들 얘기를 ‘들어야만 한다’는 자세를 정부와 정치권이 갖출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지금은 싸울 때다.”(주수호 미래의료포럼 대표)
차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을 노리는 후보들이 10일 정견발표회에서 내놓은 말들이다. 정부의 의대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하면서 촉발된 의정갈등이 10개월째 지속되는 가운데, 의료계 유일 법정단체인 의협을 이끌 인물에 관심이 주목된다. 출사표를 던진 5명의 후보는 모두 정부가 추진해온 의대증원 등의 의료개혁 정책을 중단 및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세부 방안에서는 의료계 밖과 ‘소통’을 강조하는 온건파와 내부 결집을 호소하며 ‘투쟁’ 기조를 내세우는 강경파 등으로 의견이 갈렸다.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개최된 정견발표회는 지난 3일 후보자 등록 마감 뒤 개최된 첫 합동설명회였다. 강희경(53)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장, 김택우(60) 전국광역시도의사협의회장, 이동욱(53) 경기도의사회장, 주수호(66) 미래의료포럼 대표, 최안나(58) 의협 기획이사 겸 대변인 등 5명의 후보는 각자 이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의협을 대표할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후보자 중 유일한 의대 교수인 강희경 후보는 그간 의협이 의사 전체 직역을 대표하지 못한 문제를 지적하며 ‘발전적 해체’를 약속했다. 강 후보는 “의료대란의 배경에는 정부의 불통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의협도 못지않게 불통이라고들 한다”며 “의협이 (의사 전체에 대한) 대표성이 있느냐는 의문에 반박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시각에서 의협을 거듭나게 할 사람이 회장으로 선출돼야 한다”며 “더이상 의사들 내부의 힘만으로는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민과 연대해 지지를 획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의사단체에서 간부를 맡은 이력이 긴 후보들은 의료계 내부 결집에 방점을 찍었다. 2007~2009년 이미 의협회장을 지낸 바 있는 주수호 후보는 “그동안 의사들이 가야될 큰 목표에 대해 내부 의견 수렴을 못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국민들이 의사들의 목소리를 진짜로 귀담아 듣겠다는 자세를 갖출 때까지 우리는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주 후보는 “전공의·의대생을 보호하기 위해 회장이 감옥에 가야 한다면, 명예롭게 생각하고 기꺼이 가겠다” “정부로부터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두려운 회장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임기를 마치겠다” 등의 말로 대정부 투쟁에 강경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강원도의사회장 등을 역임하며 20년 넘게 지역 의사회에서 활동한 김택우 후보는 “의료계의 대표는 의협이라는 원칙을 세우고, 직역을 아우르는 요구안을 만들어낼 것”이라며 “전공의를 상임 이사진에 임명하고, 의대생들에게도 준회원 자격을 부여해 의협의 근본적인 체질부터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또 “의료정책연구원과 입법조사팀 기능을 강화해 의협만의 데이터를 만들고, 데이터에 기반한 의료정책을 제시하겠다”며, 정부의 의대증원 저지를 위해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문제점을 짚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부터 대통령실과 시청 앞에서 ‘의료농단 규탄 집회’를 주도해온 이동욱 후보는 “지난 1년 동안 나는 동일한 모습으로 투쟁의 선봉에 서왔다”면서 강한 투쟁력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단 한번도 전공의와 의대생들을 외롭게 두지 않았다. 경제적, 법률적 지원으로 끝까지 보호했다”며 전공의·의대생을 아우를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탄핵당한 임현택 전 회장 집행부에서 총무·보험·기획이사 등을 지낸 최안나 후보는 전공의 민심을 얻지 못한 전 회장과 자신은 다르다는 점을 부각했다. 최 후보는 “지난 6개월 간 이런 위기에 협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배웠다. 제 결론은 의협은 이대로는 안 된다, 바뀌어야 된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저는 사직 전공의와 휴학 의대생을 선대위원장·부선대위원장으로 정했다. 젊은 의사들이 직접 정책을 만들고 실현 가능하도록 머리를 맞대는 의협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 후보는 “계엄령 이후 정치권의 모든 관심이 의료현안을 떠났다”면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 “‘2025년도 정원도 유동적’이라고 하셨으나, 대통령실에 거부당한 바 있는데, 이제 그 대통령실이 무너졌으나 다시 주장하고 실현시키라”는 요구도 내놨다.
의협 회장선거 후보자 토론회는 오는 17일 부산, 19일 대구 등 지역에서 이어진다. 투표는 내년 1월 2~4일 전자 투표방식으로 이뤄지며, 과반 득표자 나오지 않을 경우 상위 후보 2인을 대상으로 1월 7~8일 결선투표가 실시된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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