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동조' 국민의힘은 졌다...이미 '응원봉 혁명' 시작됐다
[손우정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7일 "윤석열 대통령은 퇴진 시까지 직무 배제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표결 불성립 후인 7일 오후 국회 본청 당 대표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계엄 선포 이후 여당 대표로서 대단히 송구스러웠고, 계엄 선포 사태는 명백하고 심각한 위헌 위법 사태였다"며 "그 계엄을 막으려고 제일 먼저 나선 것이고 군 관련자들을 직에서 배제하게 했다. |
ⓒ 남소연 |
윤석열 대통령도 비슷한 수순을 밟는 것처럼 보인다. 2분짜리 담화에서 국민도 국회도 아닌 여당에 국정운영을 넘기겠다며, 체포 대상에까지 포함했던 한동훈 대표에게 사실상 항복을 선언했다. 그러나 몰락해 가는 박근혜 정부와 단호하게 결별하고 탄핵에 동참했던 <조선일보>나 친이계와 달리 한동훈과 친한계는 결국 내란 열차에 몸을 실었다.
어떤 긴밀한 뒷거래가 있었는지, 어떤 캐비닛 협박이 오고 갔는지는 몰라도 이후 구상의 대략적인 밑그림은 드러나고 있다. 권력을 가능한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의 퇴진과 내란에 대한 최소한, 최소 범위의 처벌이 핵심으로 보인다. 어쩌면 유별난 아내 사랑의 진수를 보여준 윤석열 대통령이, 김건희만은 지켜달라 애원했을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불참할 수도 있었던 것을, 굳이 모양 빠지게 김건희 특검법을 한사코 반대하고 온갖 조롱을 받으며 본회의장을 떠난 것도 그런 징후다. 그리고 두문불출하던 내란의 핵심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핸드폰을 말끔하게 처분한 뒤, 내란 수사권도 없는 검찰 특별수사본부로 달려갔다. 한동훈의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가 수장으로 있는 그곳으로.
한계 드러낸 한동훈, 전염된 망상?
국민의힘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정리했다. 내란의 밤에 한동훈 대표는 추경호 원내대표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18명의 의원을 동원해 계엄 해제 요구안에 힘을 보탰다. 계엄 정국에 한동훈 대표가 보여준 결단은 그가 합리적 보수를 대표할 큰 정치인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번 탄핵 투표에서도 그런 결단이 이어졌다면, 적은 수의 친한계 의원만으로도 탄핵의 주역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빠르고 어이없게, 자신의 한계와 욕망, 밑천을 동시에 드러냈다. 내용 없는 빈껍데기 사과에, 국민도 국회도 아닌 여당에 전권을 위임한다는 어이없는 2분짜리 담화를 명분으로, 결국 내란 세력의 편에 섰다. 마치 자신이 국민 전체의 의사를 위임받은 양, 대통령을 직무에서 배제하겠다며 '질서 있는 퇴진'을 장담했다.
대통령 직무 배제, 책임 총리제 등 향후 정국 구상이란 것이 얼마나 황당하고 불가능한 구상인지가 드러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어떤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한 대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이어 내란의 주범 중 하나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말단 공무원도 범죄 혐의가 있으면 마음대로 사직할 수 없다. 퇴직수당과 연금도 받을 수 없도록, 죄를 물어 파면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아무 권한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는 윤 대통령은 내란의 핵심만 꼭 집어 사표를 수리해 '줬다.' 당장 직무에서 배제하겠다던 한 대표는 이것을 '적극적 직무행사'로 보기 어렵다는 기상천외한 말을 또 만들어 냈다.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7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무산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나서고 있다. |
ⓒ 남소연 |
어쩌면 성동격서일지도 모른다.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향후 정국 시나리오에 관심이 묶인 사이, 내란죄의 범위와 대상을 최소화할 준비를 다그치고 국민의 불만이 잠잠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보수층을 다시 결집할 시간을 벌기 위한 술수라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이미 보수층 일각에서는 탄핵은 곧 민주당과 이재명의 독재로 이어진다거나, 여의도 시위에 중국인이 동원됐다는 등의 소문을 확산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사이 시급하게 검거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할 내란범들은 여전히 증거 은폐, 사건 축소를 위한 시간을 벌고 있다.
설령 이 와중에 내란 수괴가 기소되더라도, 탄핵 반대를 외쳤던 태극기부대의 시위가 좀 더 커지면, '갈라진 대한민국', '화해와 용서가 필요', '증오 버리고 화합으로 나가야' 따위의 메시지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의도가 무엇이든, 내란의 밤에 계엄 해제 동의안 표결에 대다수가 불참하고, 탄핵 표결에 조직적으로 불참한 국민의힘이 내란의 동조집단, 최소한 방조 집단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위기의 보수를 구해낸 새로운 메시아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한동훈 대표는 겨우 벼랑 끝에서 구해낸 자신의 당을, 다시 내란 세력과 튼튼한 고리로 묶어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다.
내란 수괴의 탄핵과 처벌, 윤석열 없는 질서의 구축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는 한, 내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리고 국민의힘은 아직 종결되지 않은 내란의 와중에, 결국 내란범의 편에 확실히 섰다. 관련자들이 구속되어 내란 정국이 막을 내리더라도, 이들은 잔당으로 남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이나 사퇴는 질서의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거국내각이니 책임 총리제니, 개헌이니 하는 것은 모두 대통령 탄핵 이후에야 시작할 수 있는 논의다. 이것을 우회하는 합법적 절차나 사회적 동의를 이룰 방법은 없다.
▲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 실현! 사회대개혁 범국민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아이돌 및 프로야구 응원봉 등을 흔들며 국민의힘 의원들의 탄핵투표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
ⓒ 이정민 |
돌아보자. 2008년 총선 직후 여중생들이 주도한 촛불시위는 대중의 급진성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형성되었으나, 촛불에 호응할 제도적 권력이 취약한 상황에서 실패로 귀결됐다.
그러나 당시 촛불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했지만,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자체의 문제의식으로 옮겨갔다. 체제에 대한 비판, 대안에 대한 갈망, 다음 세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은 실패 이후에도 제도적 권력을 키워내고 운동적 에너지를 새롭게 불어넣어 2014년 세월호,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로 이어졌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에는 사상 최대의 인원이 결집했고,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성공적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단 한 가지 목표로 결집한 광장의 촛불은 박근혜 이후의 새로운 방향은 담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가 촛불 정신을 구현하지 못한 탓이라고 진단하지만 어불성설이다. 각자가 자신의 열망을 촛불에 투영했을지는 몰라도, 2016년 촛불은 어떤 방향성이 담겼던 것이 아니라 철저히 '박근혜 퇴진', '민주주의 사수'에 맞춰져 있었다.
지금의 광장은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어느 때보다 가장 충격적이고 복잡한 정국이다. 그래서 응원봉으로 진화한 우리의 촛불도 단지 '윤석열 탄핵'만을 외칠 수 없다. 탄핵을 외치는 곳곳에서 윤석열 이후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공론장도 함께 열려야 한다.
4년 중임제나 책임 총리제와 같은 통치구조만이 아니라, 국민의 주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통치구조, 사회 여러 분야의 대안적 전망에 대한 전문가와 시민의 지혜가 탄핵 광장과 결합해야 한다. 국회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곳곳이 미래를 입안하는 시민의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87년체제를 만든 민주화의 어두운 면, 각자도생과 고립, 끊임없는 분투의 사회를 바꿀 새로운 비전, 새로운 방향, 새로운 질서를 찾아나가야 한다. 내란을 감행한 이들은 여전히 자기가 살 궁리만 찾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가 함께 살 궁리를 나눠 찾으며, 윤석열과 국민의힘, 87년체제 등 모든 낡은 것들과 완전히 결별할 준비를 다그쳐야 한다.
이미 응원봉 혁명은 시작됐다. 그리고 똑똑히 알려주자. 이것은 무질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초입이라고. 이렇게 들어선 질서에서는 아직도 냉전 시대의 향수에 젖어 있는 내란범과 동조 세력이 설 자리는 없다고. 첫 번째 탄핵 시도는 불발됐지만, 여전히 웃는 것은 우리고, 썩은 표정을 짓는 것은 당신들이라고. 당신들은 이미 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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