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남의 영화몽상] 영화 ‘서울의 봄’ 다시보기, ‘서울의 밤’ 새로 쓰기

실제 역사나 실화를 다룬 영화의 결말은 스포일러가 아니다. 각색과 상상을 가미할 수 있다고 해도, 이미 벌어진 사건과 역사 자체를 바꾼다면 관객을 설득하기 힘들다.
그런데도 지난해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내심 혹시나 하는 마음이, ‘만약에’ 라는 가정법이 여러 번 떠올랐다. 전두광(황정민)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의 군사반란을 어쩌면 좌초시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대목이 여러 차례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기대는 실현되지 않고, 이 영화의 결말은 1979년의 실제 역사를 벗어나지 않는다. 관객의 안타까움은 그래서 더 고조됐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치솟는 심박수를 측정하는 챌린지까지 등장했다.
![영화 ‘서울의 봄’.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412/10/joongang/20241210003732994blvw.jpg)
지난주 화요일 밤. 심장이 쿵쾅대며 심박수가 치솟은 국민이 한둘은 아니었을 터다. 2024년의 대한민국에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어처구니없고 충격적인 일은 농담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여러 가지 ‘만약에’가 떠올랐다. 만약에 그날 밤 국회에 모인 의원들이 계엄 해제 의결 정족수에 못 미쳤다면,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의결 전 본회의장에 난입했다면, 계엄군을 막아선 의원 보좌관들을 비롯해 시민들과 계엄군 사이에 유혈 출동이 벌어졌다면…. 천만다행으로 2024년 12월 3일 ‘서울의 밤’은 그런 비극 없이 날이 밝았다.
현실이 1년 전 영화를 다시 불러냈다. ‘서울의 봄’은 요즘 넷플릭스 오늘의 영화 인기 순위 1위다. 같은 영화를 다시 보면 주연만 아니라 조연도 더 잘 보인다. 극 중 전두광의 말을 빌리자면 ‘떡고물’ 받아먹으려고 반란에 합류한 선배 장성들, 위기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하는 대신 제 한 몸 지키기에 급급한 장관, 반란 세력의 의도를 간과하고 상황을 오판하는 군 수뇌부, 원칙을 내세우는 것 같지만 결국 ‘사후’ 재가의 흔적만 남기며 반란 세력의 요구를 수용한 위정자…. 영화가 알려주는 건 여기까지다. 신군부의 권력 찬탈이 불러온 이후의 역사는 더욱 비극적이고 처절했다.
2024년 ‘서울의 밤’에선 군부가 아니라 합법적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 스스로 헌법을 훼손하고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 했다. 더 이상 국정 운영을, 주연 자리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뚜렷하다. 밝혀내야 할 사실도 많지만, 이 현재진행형 역사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시민사회는 물론 이미 탄핵안이 한 차례 폐기되게 만든 의원들과 정치인들도 어떤 역할을 할지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한 과정을 통해 키워낸 한국 민주주의의 회복성을 실현하는 역할을 할 수도, 권력과 ‘떡고물’을 탐하거나 당리당략에 집착하며 민주주의의 역행을 방조하거나 방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 책임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다면 ‘서울의 봄’을 다시 보기를 권한다.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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