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기자의 ‘영화로 보는 茶 이야기] 비천무·중천 배경 ‘청명상하도’ 찻잔 다구에 살아 숨쉬는 중국 국보 1호
중국의 보물은 중국에 없다? 팩트인 듯 팩트 아닌 팩트 같은 이 문장은 어느 정도 팩트에 가깝다. 국공합작(국민당과 공산당이 협조해서 함께 일본 제국을 토벌하자는 취지 아래 이뤄진 협정)이 깨지고 1949년 장개석정권이 대만으로 쫓겨가던 시절, 장개석 총통은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곳이 중국의 정통성을 가진다”며 중국 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던 송~청대 유물 대부분을 대만으로 실어날랐다. 그렇게 가져간 유물로 타이베이에 ‘국립고궁박물원’을 열었다. 찬란한 중국 역사의 가장 귀한 보물은 대부분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중국에도 고궁박물원이 있나?” 의문을 표하는 분도 있을 터, 우리가 명~청 대 궁전으로만 알고 있는 ‘자금성’이 바로 중국 고궁박물원이다. 1912년 청나라 마지막 황체 푸이가 자금성에서 쫓겨난 후 세워진 중화민국은 궁안의 보물들을 정리해 1925년부터 일반에게 공개했다. 이게 베이징 고궁박물원의 시작이다. ‘관광객은 보통 정문인 남문을 통해 자금성에 들어가는데, 북문 현판 아래에 ‘고궁박물원’이라는 커다란 편액이 걸려 있다. 고궁(古宮)’은 자금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베이징 고궁박물원에는 고궁은 있지만 유물이 없고,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에는 유물은 있지만 고궁이 없다’는 우스개소리도 나왔다. 장개석의 국민당정부는 군벌을 토벌하고 1928년 베이징에 돌아오면서부터 고궁박물원 유물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1931년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키자 장개석 총통은 고궁박물원 유물을 상하이로 옮겼다. 이후 대만으로 갈 때 60만여 점의 보물을 모두 대만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은 영국 대영 박물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일컬어진다.
베이징 고궁박물원 국보 1호는 ‘청명상하도’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은 3대 보물로 유명하다. 녹색 비취 취옥으로 만든, 여치와 메뚜기가 배춧잎 사이에 숨어있는 조각 ‘취옥백채’가 첫손에 꼽힌다. 대만 국보 1호인 취옥백채는 청나라 11대 황제 광서제의 부인인 근비가 시집올 때 가져온 혼수품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는 먹음직스러운 동파육 모양 ‘육형석’이다. 예로부터 벽옥은 다양한 무늬와 색채를 지니고 있어 자주 조각 작품으로 만들어졌는데, 육형석이 바로 벽옥으로 만들어졌다. 작가가 천연 벽옥에 물감으로 색깔을 입혀 실제 동파육처럼 윤기가 흐르는 색감과 구멍 숭숭한 털구멍까지 재현해냈다. 세 번째 보물인 모공정(毛公鼎)은 서주 시대 청동기 솥(식기)이다. 솥 안에 497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정치를 부흥하고 기강을 바로잡는 간절한 기대감 등의 내용이 라고 전해진다.
청명상하도의 기구한 운명은 이후로도 계속된다. 영화 ‘마지막 황제’로 유명한 푸이가 자금성을 떠날 때 청명상하도를 가지고 나가면서 청명상하도의 행방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 됐다.
1950년 겨울 한 미술감정사가 랴오닝성 박물관 임시창고에서 청명상하도를 찾아냈다. 그렇게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세상을 떠돈 덕분에 타이베이 고궁박물원이 아닌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남게 됐으니, 중국 입장에서 보면 새옹지마인 셈이다.
청명상하도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겨울을 지나 만물에 물기가 돈다는 절기인 청명절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세로 24.8㎝에 가로는 무려 528㎝의 긴 두루마리 형태 그림에는 당시 수도였던 변경(지금의 허난성 카이핑)의 교외부터 성 안까지가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서로 다른 복색과 표정을 한 800명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 인물 한 명 크기가 고작 1~2㎝인데 화가는 그들이 처한 현실과 심정을 전부 잘 살려놓았다. 북송 시절, 겨우내 얼었던 강이 풀리면 여러 척의 배가 곡물과 사람을 싣고 물자 유통의 중심지인 변경에 줄줄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 배가 들어오는 것도 구경하고 배가 싣고온 상품도 구입할 겸 배들이 들어오는 곳에 모였다. 그 활기찬 순간의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 바로 청명상하도다.
헝디엔 스튜디오라고 들어보셨을지? 저장성 둥양시에 위치한 중국 최대 규모 사극 세트장이다. 중국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가장 거대한 세트장으로 꼽히는 헝디엔 스튜디오는 1년에 무려 2000만 명이 찾는 유명 관광지다. 원래는 1996년 ‘아편전쟁’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찍기 위해 광저우 거리 풍경구 세트장을 짓는 데에서 시작했다. 그 다음해 진시황이 주인공인 영화를 촬영하려고 진나라 황궁인 함양궁 세트장이 추가로 지어졌다. 이후 자금성, 당나라 거리, 청명상하도 풍경구, 원명신원(원명원은 청나라 황실 정원인데 아편전쟁 당시 영국이 불태워버렸다. 중국은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로 원명원을 복원하지 않았고, 헝디엔 스튜디오가 2015년 원명원을 1:1 비율로 복원하면서 원명신원이라 이름 붙였다.) 등이 줄줄이 완성됐다.
휘종은 중국 차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워낙 예술가적 기질이 강했던 휘종은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글씨, 그림, 여인 등에만 몰두했다. 휘종은 또 엄청난 차 애호가였다. 휘종은 표면에 용과 봉황을 새긴 용봉단차를 주로 마셨다. 정교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용과 봉황이 새겨진 용봉단차는 차를 곱게 가루낸 다음 물을 살짝 가미해 틀에 찍어 만들었다. 틀에 찍어낸 후 굳힌 차를 마실 때는 다시 맷돌로 갈아서 가루를 만들었다. 그 가루를 말차처럼 대나무 솔로 격불해 마셨다. 그 과정이 너무 지난하고 고통스러워 명나라 초대 황제 주원장은 황제 자리에 오르자마자 “용봉단차 만드는 백성의 고생이 심하니 전면 폐지한다”고 선포했다. 이후 중국에서는 잎차를 우려마시기 시작했다. 송나라의 가루차 다법은 고려를 거쳐 일본에 전해졌고 일본의 말차 문화로 이어져 내려온다.
세계 GDP 22.7% 차지했던 부국 송 멸망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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