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마사지로 장악했다…80대 노인 울린 '27억 로맨스'

강병철 2024. 12. 9.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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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성을 집에 들인 게 화근이었다.

80대 초반 김상훈(가명)씨는 한 도서 지역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치매 초기라 할 수 있는 중등도 인지장애로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을 받았다. 요양보호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하는 재가급여를 신청할 수 있게 됐다.

때는 2021년, 마사지를 전문으로 하는 70대 중반의 여성 요양보호사 B씨가 농장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2주면 충분했다.

김씨와 B씨는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B씨는 아예 짐을 싸 들고 김씨 농장에 들어와 살았다. 이를 처음 알게 된 건 심부름을 하던 김씨의 20대 초반 손자였다.

80대 초반 김모씨가 로맨스 스캠을 시작으로 백화점식 실버 크라임을 당한 도서 지역의 농장 모습. 사진 김씨 가족 제공


손자는 할아버지 김씨와 B씨가 동침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가족은 깜짝 놀랐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을 정도로 혼미한 김씨의 재력을 노렸다고 봤다. 가족들은 힘을 합쳐 B씨를 내보냈다. 그런데 더 큰 일이 벌어졌다.

B씨와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굳게 믿은 김씨는 노발대발했다. 그러더니 아예 B씨와 농장 및 부속건물 전체를 무료로 빌려주는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임대차 계약서, 기사 하단에 첨부)

B씨를 곁에 두고, 두 아들과 딸 등 가족에 대해 “주거 침입으로 고발하겠다”며 농장 접근을 막았다. B씨에게 완전히 ‘가스라이팅’을 당한 결과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로맨스 스캠’은 서곡이었다.


80대 초반 김모씨는 B씨에게 로맨스 스캠에 이어 가스라이팅을 당한 뒤 자신의 농장과 부속건물 전체를 무료로 빌려주는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빨간색 동그라미(O) 속 ‘무료’라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사진 김씨 가족 제공
다음 작전이 시작됐다. 60대 초반의 종교인 M씨가 가세한 것이다. M씨는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을 받는 김씨를 신의 힘으로 치료해 주겠다”며 다가왔다. B씨는 마사지로, M씨는 정신적으로 김씨를 장악해 나갔다. B씨는 농장을 관리한다는 핑계로 김씨의 은행 일에도 간섭했다. 결국 통장에 있는 현금에도 손을 댔다. 2022년 말에는 농장 밖 별도의 주택도 구매했다. B씨는 김씨의 농장과 주택 등을 담보로 사채 5억원을 빌렸다.

■ ☞노인장기요양보험

「 =고령화에 따른 국민의 노후 불안 해소와 건강한 노후 생활을 위한 대책으로 2008년 7월 실시됐다.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이에게 신체활동이나 가사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해주는 서비스다. 재가급여·시설급여, 복지용구 지원, 특별현금급여(가족요양비)로 나뉜다.

B씨의 수법은 최근 더욱 대담해졌다. 김씨가 보유한 토지를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22억원을 추가로 빌렸다. 빌린 돈을 투자라는 명목으로 다단계업체에 송금까지 했다. 법인 계좌도 아닌 개인 계좌로도 돈이 흘러갔다. 처음에는 조금씩 들어오던 배당금은 어느 순간 완전히 끊어졌다. 게다가 김씨의 여러 통장까지 B씨가 관리하기에 이르렀다.

80대 초반 김모씨의 통장 내역. 다단계업체에 큰돈을 송금까지 했는데, 법인 계좌도 아닌 개인 계좌(빨간색 별☆ 표시 두 곳)로도 돈이 흘러갔다. 사진 김씨 가족 제공


B씨를 만나기 전 김씨는 7억원 이상의 현금과 함께 매달 1000만원 이상의 임대 수익이 있었다. 그러나 김씨 수중에 있던 돈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현금은 오간 데 없고, 여기에 김씨는 사채 5억원과 금융기관 대출 22억원 등을 짊어지게 됐다. 가족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대 정황도 보였다. 몸이 불편해 진료를 받겠다는 김씨의 요청에도 B씨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지 오래다. 반면에 사채를 빌리기 위해선 외딴곳의 대부업체까지 데리고 갔다. 가족의 노력으로 일부 금액은 반환받았지만, 여전히 돌려받지 못한 돈이 남아 있다.


독버섯처럼 번지는 실버 크라임


고령화의 그늘로 꼽히는 ‘실버 크라임(Silver Collar Crime)’이 독버섯처럼 퍼지면서 진화하고 있다. 중앙일보 ‘이것이 팩트다’가 취재한 김씨 사건은 로맨스 스캠(Romance Scam, 연애 빙자 사기), 종교 단체, 다단계 등 실버 크라임 사기의 백화점으로 불릴 만하다. 실버 크라임은 국내에서도 베이비붐 세대(1946~65년)의 은퇴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경찰청·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고령층(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사기 범죄는 4만6046건. 2021년(3만6367건)보다 30%가량 치솟아 사상 처음 4만 건을 돌파했다. 노인을 상대로 한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얘기다.

김영희 디자이너


노년을 자식에게 의존하기보다 스스로 노후자금을 마련해 놓고, 퇴직 후 경제적인 자립을 도모하는 고립된 노인이 늘어난 것도 큰 이유다. 이에 따라 고령층의 노후 자금을 노리는 금융사기나 악덕 상술로 인한 피해가 증가 추세다.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과 경찰 등 수사기관은 노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를 크게 대면형과 비대면형으로 나누고 있다.

(계속)

로맨스 그레이(Romance Grey, 노년의 사랑)를 꿈꿨지만 로맨스 스캠을 당한 일은 또 있습니다.
작년 한 은행에서 60대 후반 남성은 자신의 퇴직 연금 5000여만원을 어느 여성에게 송금하려다 기막힌 진실을 알게 됐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

노인을 노리는 기상천외한 신종 사기 기법,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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