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무장병력 투입 누구 지시였나…계엄사령관은 “장관 지시” 김용현은 “대통령 의지”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위헌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계엄군의 국회 진입 작전,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의 계엄사령관 임명, 계엄사령관 명의의 포고령 1호 발표 등은 모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주도했다는 증언이 5일 나왔다.
김 전 장관은 지난 3일 밤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 지침을 알리면서 “명령 불응 시 항명죄가 된다”는 언급도 했다고 한다.
◆국회 군 병력 투입=3일 밤 국회에는 육군 특전사 예하 제1공수여단과 707특수임무단, 수방사 예하 35특임대대 등 280여 명이 투입됐다.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한 김선호 국방차관과 박 총장은 이 같은 계엄군의 국회 투입 지시를 내린 것은 김 전 장관이었고, 철수 명령을 내린 것도 김 전 장관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대통령 발표 직후인 밤 10시30분 열린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모든 군사활동은 장관이 책임진다”며 “명령 불응 시 항명죄가 된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계엄군을 국회에) 투입한 것도 몰랐고 내가 명령하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두 사람은 비상계엄이 내려진 사실을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10시23분 심야 발표 이후에야 알게 됐다고도 했다. 김 차관은 당일 김 전 장관에게 직접 병력 투입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국회 행안위에 출석한 조지호 경찰청장은 경찰 병력이 국회 출입을 통제한 경위에 대해 “3일 밤 11시30분쯤 박안수(육참총장) 당시 계엄사령관이 전화를 걸어 ‘국회 전체를 통제해 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며 “처음엔 법적 근거가 없어서 못 한다고 했는데 이후 포고령 내용을 확인한 뒤 서울경찰청에 전체 국회 출입통제 지시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박 총장도 “조 청장과 세 차례 통화했다. 포고령이 내려간 시점에서 관련 내용을 전파하라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장관 핸드폰으로 통화했다”고 답했다.
박 총장은 계엄 상황에서 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 방첩사령관 등과도 통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곽종근(육사 47기) 특전사령관과는 여러 차례 통화했고 병력 부족과 경찰 지원 관련 이야기를 했으며, 당시 국회 현장에 있던 이진우(48기) 수방사령관과는 5~7차례, 여인형 방첩사령관과는 한 번 정도 통화했으며 유사한 대화를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당시 국회에서 거센 저항에 부닥치자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이 박 총장에게 테이저건과 공포탄 사용을 건의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박 총장은 합참 계엄과장 등 수행 인원 4명과 이 문제를 논의한 뒤 곽 사령관에게 전화해 사용하면 안 된다고 지시했고, 곽 사령관도 이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또 국회 투입 병력에 실탄이 지급됐느냐는 질문에 “제가 특전사령관한테 확인했는데 실탄 지급은 없었다고 들었다”고 답변했다. 박 총장은 국회 지도부 체포조는 누구의 지시였냐고 묻자 “그런 것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계엄사령관 임명=박 총장은 지휘관회의가 끝난 직후 계엄사령관 임명 사실을 김 전 장관으로부터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지휘관회의 후 계엄사령관은 육군총장 박안수라고 해서 그때 정확히 알았다”고 답변했다. 부사령관에는 정진팔 합참 차장이 임명됐다.
박 총장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자신이 대통령으로부터 지휘 권한을 위임받았으며, 이에 따라 계엄사에 대한 지휘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김 전 장관은 3일 밤 전국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부터 4일 새벽 국회 결의안 채택으로 계엄령이 해제될 때까지 국방부 청사 지휘통제실에 머물며 계엄 작전에 대해 세부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 총장은 이날 국방위에서 지난 4일 김용현 당시 장관에게 총장직 사의를 표명한 사실도 공개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5일 이를 반려했다.
◆계엄사 포고령 1호 작성·공포=포고령 1호는 김 전 장관이 박 총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박 총장은 “제가 (포고령 내용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몰랐기에 ‘장관님, 이것은 법무 검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김 전 장관이 ‘법무 검토를 마쳤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누가 포고령을 작성했는지에 대해 박 총장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김 전 차관은 “현재 그 작성 주체는 제가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한 가지 말씀드리는 것은 제가 현재까지 확인한 바로는 국방부에서 작성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포고령을 전달받은 박 총장은 이후 상황에 대해 “저와 같이 4명 정도가 있었는데 법적 검토가 됐다고 하는데 다시 한번 보자고 해서 같이 읽었다”며 “그런데 그분(4명)들도 저만큼이나 계엄에 대해 잘 몰라서 어떡하냐고 하면서 시간이 좀 지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시 포고령을 선포하라는 대변인 연락이 와서 (초안에는 발령시간이) 22시로 돼 있었는데 22시 이후에 포고됐기 때문에 시간이 맞지 않아 시간만 23시로 수정해 (공포)했다”고 덧붙였다.
박 총장은 포고령 외에 계엄 업무 편람이나 실행 계획 등 전달받은 서류가 추가로 없었느냐는 질의엔 “없었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 지휘통제실 방문=국회 결의안이 가결된 4일 오전 1시를 넘어서 윤 대통령이 김 전 장관과 함께 계엄사령부 상황실이 설치된 합참 지휘통제실을 방문한 사실도 확인됐다. 당시 지휘통제실에 있었던 김 차관은 “대통령이 지휘통제실 내 별도 룸(방)으로 가셨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 방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박 총장은 “김 전 장관과 같이 방에 들어갔다”면서도 “대통령이나 장관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4일 오전 4시27분쯤 용산 대통령실에서 생중계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했다. 계엄 선포 여섯 시간 만이었다. 김 전 장관은 상황이 종료되자 지휘관들에게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수고했고 안전하게 복귀하라”고 말했다고 박 총장은 전했다.
이유정·석경민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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