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정이 피어난다
Q : 날씨가 한층 쌀쌀해졌습니다. 겨울의 고윤정은 어떤 사람이 되나요
A : 늘 담요를 가지고 다녀요. 발이 차가워지면 곧바로 두르곤 하죠. 붕어빵도 함께입니다. 요즘 파는 곳이 잘 보이지 않아 쉬는 날에는 붕어빵 파는 곳을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위치를 검색해 보기도 해요(웃음).
Q : 올해를 돌이켜보면 고윤정이 가장 빛났던 순간 중 하나는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무빙〉으로 여우신인상을 수상한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이름이 불리자마자 극중 아버지인 류승룡, 어머니 곽선영 배우와 포옹하는데, 괜스레 코끝이 찡하더군요. 세 사람의 ‘스핀오프’ 장면 같기도 했죠
A : 그땐 너무 떨려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는데 끝나고 사진을 보니 정말 뭉클했어요. 극중 제가 맡은 희수라는 친구는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설정이었기에 곽선영 선배님과는 리딩 때 잠깐 인사 드렸을 뿐 대사를 주고받은 적 없었거든요. 나름대로는 엄마를 마음속에 떠올리면서 연기했기에 내적 친밀감은 컸지만, 세 가족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없었죠. 그때 비로소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달까요.
Q : 그 수상이 배우로서 용기를 주기도 했나요
A : 그간 옳은 길을 걸어왔다고, 여전히 잘 나아가고 있다고 칭찬받은 것 같았어요. 앞으로도 이 뜻깊은 상을 준 분들과 진심으로 축하해 준 분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죠.
Q : 실제 가족들은 어때요? 배우로서 인정받는 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해주던가요? 어머니께서는 윤정 씨를 ‘얼기설기 얽힌 채반’ 같다고도 하셨죠
A : 우리 집에 ‘돌연변이’가 나왔다고 해요! 엄마도 수학 선생님이고, 집 안 식구 모두 이과 출신인 데다 성격도 차분한 편이거든요. 부모님은 기뻐하시면서도 내심 제 선택이 유별나다고 여기시는 것 같아요(웃음).
Q : 작품으로 만난 선후배들과 잘 지내기로 유명하죠. 현장에서 그들과 소소한 감정을 나누는 일은 배우생활의 큰 즐거움인가요
A : 그럼요. 일을 일로만 대하거나 힘들다고만 생각하면 금세 지치잖아요. 촬영 현장에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먼저 향해요. 〈로스쿨〉을 찍으면서 그런 감정을 처음 느꼈고, 〈환혼: 빛과 그림자〉 〈헌트〉 〈무빙〉을 이어가면서 더 커졌어요. 아직 어린 마음 같지만 다 같이 친해져서 얼른 같이 놀고 싶은 현장을 기대해요. 실제로 제 동료들 대부분이 재밌고 참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Q : 연기는 갈수록 재밌나요
A : ‘너무너무’ 재밌어요. 현장에서 한껏 집중했을 때 생겨나는 특유의 에너지가 정말 짜릿해요. 준비해 온 만큼 해냈을 때도 물론이지만 운이 좋으면 준비한 것 이상으로 혹은 준비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연기가 흘러갈 때가 있는데, 그건 다시 하려고 해도 못하는 거잖아요. 그런 의외성과 운 좋은 순간들,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시너지를 느낄 때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재밌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Q : 요즘 고윤정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최근 새벽에 동트는 사진과 함께 “둥근 해 또 떴네 하…”라고 올린 글을 보며 한참 웃었어요. 요즘 유행하는 ‘밈’이잖아요
A : 새벽 세 시쯤인가, 차를 타고 한 시간 거리의 촬영장에 가는 길이었어요. 마침 해가 뜨더군요. 이동할 때는 무조건 잠자는 편인데 그날 따라 깨어 있었고 그 순간을 포착했죠. ‘또 해가 뜨는구나…’ 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찍었어요(웃음).
Q : 원래 ‘웃수저’인가요? 웃음 타율이 높은 것 같은데
A : 그러려고 노력합니다. 친구들에게는 꽤 웃긴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주변에 웃음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웃기려는 의지는 항상 있습니다. 차분한 대화도 좋지만, 친구들과 정신없이 웃는 분위기를 좋아해요.
Q : 카메라 앞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이 되죠. 오늘 샤넬과 함께한 촬영인데, 샤넬 옷을 입으면 어떤 힘이 생기나요
A : 옷은 ‘애티튜드’가 되기도 하잖아요. 연기할 때도 캐릭터로 분장하고 옷을 갖춰 입으면 연습 때와는 또 다른 몰입감과 힘이 생겨요. 그래서 옷이 주는 힘은 정말 커요. 특히 샤넬은 제게 자유로운 우아함을 선사해요.
Q : 이 옷을 입고 훌쩍 떠나고 싶은 곳이 있다면
A : 지난 5월 샤넬 2024/2025 크루즈 컬렉션 쇼 참석차 방문했던 프랑스 마르세유에 다시 가보고 싶어요. 그곳 특유의 자유로움이 강하게 느껴졌거든요. 바닷가 근처에 바람이 많이 불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러닝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어요.
Q :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 촬영 중이죠. 의외로 알콩달콩한 로코 장르는 거의 하지 않았더군요
A : 제게는 로맨틱 코미디가 꽤 멀게 느껴져요. 로맨스는 인물의 감정 표현이나 기복에 따라 몰입하게 되는데, 그런 부분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있었죠. 이 작품은 로맨스도 물론이지만, 다른 장르의 요소들이 두루 포함돼 있어서 감독님, 작가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열심히 촬영하고 있어요. 기대해 주세요!
Q : 현장에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가요
A : 원래 그러지 못했어요. 데뷔 초에는 감독님이나 선배님들이 선생님처럼 어렵고, 다가가기 멀게 느껴졌거든요. 게다가 연기 전공자가 아니어서 많이 부족하다는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나 봐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너무 기본적인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실까 봐 혹은 선배님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아서 혼자 고군분투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동료들과 친해지고 나서 자연스럽게 작품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다음 신에 대한 이야기, 서로 해석한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매 장면들이 풍성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Q : 〈이 사랑 통역 되나요?〉의 차무희는 ‘톱스타’ 캐릭터죠. 실제로 자신의 직업을 연기하기에 더 편한 면도 있었나요
A : 아무래도 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처럼 제 일상과 비슷한 부분은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는데요. 단지 저는 배우일 뿐 ‘톱스타’는 아니어서 공항 입국 신이라도 생기면 K팝 스타들의 입국 영상을 찾아보면서 인사하는 방법을 연습해 보기도 했어요(웃음).
Q : 팬들은 지금의 당신 모습도 좋아하지만, 5년 후 혹은 10년 후까지 배우로서 무르익었을 때의 모습을 가장 기대하더군요. 점점 새로워지는 자신을 느끼나요
A : 내가 생각했거나 의도했던 흐름이 아니어도 조금은 즐기게 됐달까요. 데뷔 초에는 그저 열심히만 했다면, 요즘 현장에서 어떤 부분을 좀 더 풍성하게 연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이 일을 정말 즐기고 있구나 싶어요. 이 즐거움이 영원했으면 좋겠어요.
Q : 오늘도 해가 저물었는데 이렇게 웃음 가득한 대화를 나누고 있죠
A : 물론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그런 기분이나 감정은 곧 없어질 텐데 괜히 지치고 피곤한 티를 내면 서로 민망하잖아요! 농담을 주고받더라도 함께 떠드는 게 낫지, 함께 ‘다운’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매니저님은 저를 집에 데려다주고, 다시 아침에 저를 픽업하러 오고, 헤어 & 메이크업 스태프도 저보다 먼저 숍에 가서 준비하고, 촬영이 끝나면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친구도 있어요. 늘 제가 한 시간은 더 자는 것 같아요. 모두 저보다 훨씬 피곤한 분들인데.
Q : 고윤정에게 요즘 힘을 주는 음식은? 한 달간 단 한 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라면을 먹겠다고 대답한 적도 있어요
A : 제육볶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이 라면이라 그렇게 대답했는데, 알고 보니 정답은 제육볶음이었어요. 생각해 보니 제가 매일 먹고 있더라고요. 다른 반찬 없이 그것만 먹을 수 있어요.
Q : 매일매일 오래도록 지켜나가고 싶은 모습은
A : 무엇이든 즐기는 모습. 부정적인 생각이나 에너지로 일을 대하고 싶진 않아요. 이 순간을 사랑하고 즐기는 마음이 영원했으면 좋겠어요.
Q : 사람이 매번 즐거울 수만은 없잖아요. 고윤정이 즐거운 일상을 가꿔나가는 방법은
A : 여건이 된다면 무조건 푹 자기! 그리고 제육볶음 맛있게 먹기.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과 재밌는 얘기하기. 조금만 신경 쓰면 챙길 수 있는 것들이에요. 거창한 것만이 삶을 즐겁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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