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왜 ‘HVAC’에 꽂혔나
11월 21일 LG전자가 6년 만에 사업본부를 재편했다. 기존 H&A, HE, VS, BS사업본부 명칭을 각각 HS, MS, VS, ES로 교체했다.
새로운 본부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단연 ‘ES(Eco Solution)사업본부’다. 나머지 세 조직은 기존 업무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반면, ES사업본부는 LG전자가 ‘재구축’을 해도 무방할 정도로 완전히 새로 태어난 사업부다. 주력은 H&A본부가 담당하던 HVAC(냉난방공조)다. LG전자가 차세대 먹거리로 점찍은 HVAC 사업을 키우기 위해 별도로 신설했다는 설명. 여기에 더해 기존 BS사업본부가 맡던 전기차 충전 사업을 이관받는다. B2B 사업을 중점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0억弗 시장, LG전자 새 먹거리
HVAC는 Heating(난방), Ventila ting(공기 순환), Air Conditio ning(공기 조절)의 줄임말이다. 즉, 공간의 냉난방과 환기 등 실내 온도·공기질을 관리하는 체계다. 단순한 에어컨, 난방 가전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HVAC는 일반 가전이 아닌 하나의 시스템에 가깝다. 가정에 하나가 들어가는 환기용 가전제품과 달리 대형 공장, 오피스용 건물, 상업 시설, 대규모 주거단지 등 적어도 수백 명이 들어가는 공간의 온도와 환기를 담당한다. 중앙 냉난방을 사용하는 건물 모두가 HVAC 기술이 적용됐다고 보면 된다.
시장 규모는 상당하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이하 GMI)에 따르면 2023년 기준 HVAC 시장 규모는 2940억달러에 달한다.
성장성도 높다. 각국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HVAC 기술 채택을 서두르고 있는 덕분이다. 별도 공조 기술 없이 기존 냉난방 기술로 온도를 조절하는 건물은, HVAC 기술이 적용되지 않은 곳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고, 환경 오염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세계 여러 국가가 냉난방공조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GMI에 따르면 HVAC 시장의 2032년까지 연평균 예상 성장률은 5.6%에 달한다. GMI는 2032년 HVAC 시장 가치가 481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LG전자는 글로벌 HVAC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기업 중 하나다. 주요 품목은 대형 공조 시스템 기기 ‘칠러’다. 타사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고효율 히트펌프’ 기술을 앞세워 높은 인기를 끈다. 역사는 비교적 짧다.
LG전자는 2011년 LS엠트론 공조사업부를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냉난방공조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내 시장을 평정하며 최대 종합공조기업으로 자리매김한 뒤,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섰다. 최근 3년간 LG전자 칠러 사업은 연평균 성장률 15%를 기록했고, 특히 2023년에는 전년 대비 매출이 30% 가까이 급성장했다. 2023년 기준 해외 매출 비중은 40%에 달한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LG전자는 올해 별도의 HVAC 담당 사업을 맡을 부서로 ES사업본부를 개설했다. 본래 HVAC 사업은 기존 H&A(생활가전)사업부 소속이었다. 차세대 먹거리로 키울 사업인 만큼 힘을 더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수주 기반으로 운영되는 HVAC 사업의 본질과 시장·고객 특성을 고려할 때 생활가전 사업과 분리된 독립 사업본부로 운영하는 것이 사업의 미래 경쟁력과 성장 잠재력 극대화에 최선의 방안이라고 판단했다”고 개설 이유를 밝혔다.
ES사업본부는 기존 BS(Business Solutions)사업본부 산하 전기차 충전 사업도 이관받는다. 이에 따라 ES사업본부는 LG의 미래 성장동력 중 하나인 클린테크(Clean Tech) 분야에서 B2B 사업 성장을 가속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신임 ES사업본부장은 HVAC 사업과 전략의 연속성 차원에서 기존 에어솔루션사업부장인 이재성 부사장이 맡는다.
주력 가전은 포화, 블루오션 찾아라
LG전자가 기존 사업본부를 해체하고 새로운 조직을 신설하는 모험을 감행한 이유는 뭘까. 전자업계에서는 ‘성장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고 본다. 주력 사업인 가전 사업은 계속된 경쟁과 중국 업체의 맹추격으로 점차 한계에 이르는 분위기다. 정체를 맞이한 가전을 뒷받침할 전장부품 등 신사업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상태다. 새로운 먹거리로 점찍은 산업이 더 빠르게 성장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는 진단이다.
LG전자 핵심 산업인 가전은 현재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는 진단이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한국 가전은 수요가 줄어든 데다 중국 업체들이 저가 제품을 앞세워 세계 시장에 적극 진출하는 탓이다. LG전자의 기존 생활가전(H&A)사업본부 매출은 올해 2분기 8조8429억원을 거뒀으나 3분기에는 8조3376억원을 거뒀다. 영업이익도 6944억원에서 5272억원으로 하락했다. 큰 하락은 없지만, 뚜렷한 성장세도 없다. 위기 타파를 목적으로 ‘융합가전’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지만, 아직 초창기라 뚜렷한 실적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시장은 정체된 상황에서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쫓아오고 있다. 최근 급부상한 ‘하이얼’은 물론 로봇청소기로 유명한 로보락까지 생활가전 제품 판매를 시작하며 국내 업체를 위협 중이다. 이들 중국 업체는 값싼 가격에 합리적인 성능을 내세워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점유율을 높여가는 상황이다.
전장을 비롯한 신사업은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올해 3분기 기준 VS사업부 매출은 2조6113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3% 하락했다. 영업이익은 11억원으로 간신히 흑자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과거 B2B 사업을 총괄했던 BS사업본부는 올해 3분기 1조3989억원 매출을 내며 2분기보다 4.5% 하락했다. 영업손실 규모는 59억원에서 769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LG전자도 발 빠르게 개편에 나섰다. 임원진이 직접 개편 이유를 설명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최근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전체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사내 방송을 통해 조직 개편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조 사장은 B2B 전담 조직인 BS사업본부 해체, 클린테크를 전담하는 ES사업본부 신설 등과 관련해선 2021년 모바일 사업 철수를 언급하며 “과거의 사업 재편 성공 사례를 이어가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LG전자는 적자 늪을 벗어나지 못하던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했다. 오랫동안 기반을 다져온 사업에서 철수하는 데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LG전자는 과감히 승부수를 띄웠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역량을 가전 사업에 집중하면서 LG전자는 오랜 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7호 (2024.12.04~2024.1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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