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현 "계엄군 국회 투입, 내 명령 따른 것"...법령 위반 소지 시인

이유정, 이근평 2024. 12. 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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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군의날 기념 시가행진행사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이야기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국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5일 계엄군 국회 투입에 대해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계엄 발령에 따라, 장관의 명령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계엄군에 대한 직접적 지휘권이 없으면서도 사실상 계엄사령관의 권한을 일부 행사했다는 사실을 인정, 관련 법령을 위반했을 소지가 있다고 시인한 셈이다.

김 전 장관은 5일 중앙일보에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예하 지휘관, 병력은 장관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며 이처럼 설명했다. 계엄법에 따르면 국방부 장관은 계엄사령관을 추천하고, 지휘·감독할 수 있다. 하지만 국방부 장관이 직접 계엄군에 지시를 내릴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민간인인 국방장관이 계엄 작전 주도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의 긴급 현안 질의에서도 계엄군 투입의 책임자가 누군지를 두고서 질문이 오갔다. “국회에 군 부대 투입을 명령한 게 누구냐”는 안규백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김선호 국방부 차관(장관 직무대행)은 “병력 투입 지시는 (김용현)장관이 하셨다”고 밝혔다.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도 “(나는)명령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박 총장은 이어 “국회 병력 투입 사실을 언론을 보고 알게 됐다”는 취지로 덧붙였다. 또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뒤인 4일 오전 1시 18분 계엄군의 국회 철수 명령도 김 전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박 총장은 증언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도 이 무렵 합참 지휘통제실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이는 엄밀히 따지면 민간인 신분인 김 전 장관이 계엄군의 국회 침투와 철수 등 전과정을 사실상 직접 지휘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국회 작전을 주도한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육사 47기)과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육사 48기)은 김 전 장관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다. 앞서 3일 오후 11시 48분쯤 국회에 육군 특전사 예하 제1공수여단과 707특수임무단, 수방사 예하 35특임대대 등이 진입했다.

이와 관련, 박 총장은 “‘국방부 장관이 (계엄군 관련)지시를 하려면 대통령 지시를 위임 받아야 한다’는 실무자 조언이 있었다”며 “그래서 장관에게 ‘(대통령의 권한을)위임을 받으셨냐’고 물었고, 김 장관이 ‘받았다’고 확인해 그런 줄 알고 있었다”고도 했다.

다만 계엄법에는 대통령의 권한 위임에 관한 내용은 없다. “전국을 계엄 지역으로 하는 계엄 시행의 경우 계엄사령관은 대통령의 지휘·감독을 받는다”고 규정할 뿐이다. 현행 법령 적용에 대한 유권해석은 통상 법제처가 맡는다.


사의 수리로 국회 출석 피해


법에 규정된 대로 계엄사령관을 두기는 했지만, 이는 김 전 장관이 사실상 계엄 시행 관련 전반을 총괄했다는 추론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러면서도 김 전 장관은 이날 국방위 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날(4일) 김 전 장관이 표명한 사의를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 수리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이 ‘면직 꼼수’로 책임 추궁을 회피하는 모양새가 된 셈이다.

실제 이날 국방위에는 ‘계엄 4인방’ 중 김 전 장관, 곽종근 사령관, 이진우 사령관은 나오지 않았고 박안수 총장이 홀로 ‘총알받이’가 된 모양새였다. 박 총장도 전날(4일) 점심 식사 후 사의를 표명했으나 윤 대통령은 “엄중한 안보상황을 고려해 반려했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김 차관과 박 총장은 비상 계엄 사실을 3일 밤 10시 23분 윤 대통령의 심야 발표 이후에야 알게 됐다고도 밝혔다. 박 총장은 “계엄 선포 이후 갑작스럽게 지휘통제실로 이동하게 됐고, 대통령께서 담화하시는 것을 보고 (계엄 선포를)알았다”고 답했다. 김 전 장관은 대통령 담화 직후 열린 지휘관 회의에서 박 총장에게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다는 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포고문 작성 주체도 의문


국방위에서는 계엄 포고문 작성 주체와 경위도 논란이 됐다. 김 차관은 “포고문의 작성 주체를 확인할 수 없으나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국방부에서 작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포고문은 박 총장 명의로 발표됐지만, 그는 이를 김 전 장관에게 전달받았고 “합참 지휘통제실에서 처음 봤다”고 말했다. “국회의 정치 활동 금지 등의 내용이 있어 이건 법무 검토를 해야할 것 같다”고 말하자 김 전 장관은 “검토가 완료된 상황이니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박 총장은 전했다.

국방부·군 수뇌부가 계엄령을 반대했다는 풍문도 사실로 드러났다. 김 차관은 “군 병력이 동원되는 것에 반대를 해왔고 부정적인 의견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차관의 직책에 있으면서 일련의 행동을 미연에 확인하지 못 했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덧붙였다. 박 총장도 “(계엄이)급하게 진행돼 군사적으로 대비가 안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군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게 맞다”는 취지로 말했다.

국회 병력 투입 과정에서 시민·야당 인사들과 계엄군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자,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이 박 총장에게 공포탄과 테이저건 사용을 건의한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이에 박 총장은 합참 계엄과장 등과 논의 후 “공포탄·테이저건은 사용해선 안 된다”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용현 "비상조치, 대통령님 생각"


한편 김 전 장관은 중앙일보에 보낸 메시지에서 계엄 선포의 배경을 설명하며 “‘우리 사회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종북 주사파를 비롯한 반국가세력들을 정리하지 않고는 자유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더욱이 더불어민주당의 초법적인 입법 독재로 초유의 예산 삭감과 행정·사법 체계의 마비는 선을 넘어 내란 수준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비상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대통령님의 생각이셨다”고 밝혔다.

이어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헌법의 가치와 헌정 질서를 바로잡아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줘야 한다는 강력한 대통령님의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했다.

‘대통령님’을 세 차례나 거론한 건 이번 계엄에 자신을 비롯한 참모들보다는 윤 대통령 개인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이와 관련, 김 전 장관은 언론에 보낸 입장에서 “V(대통령) 지침, 국민 안전 유혈 사태 방지 최우선, 경찰 우선 조치, 군은 최소한 1시간 이후 투입” 등의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계엄 시행 관련 지시를 내려 이행한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근평·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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