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 임금 2년 동결"...철도노조 무리한 요구 탓 '정치파업' 논란
“2급 이상 간부의 임금을 올해와 내년에 걸쳐 모두 동결하라.”
5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이 코레일 사측과의 막바지 협상에서 추가로 내건 요구사항이다. 코레일의 부장급 이상 간부 650여명의 임금을 2년간 동결하고, 그 돈으로 노조원들의 임금인상에 보태라는 얘기다.
사측은 이 요구를 거부했고, 협상은 최종결렬됐다. 코레일 관계자는 “동결은 인상분 반납과 달리 기본급이 아예 오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향후 성과급과 연금 수령 등에도 영향을 미쳐 개인당 5000만원이 넘는 손해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당초 사측은 간부들의 임금 인상분을 반납해 그 재원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고려했지만 이보다 훨씬 무리한 요구인 탓에 수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올해 임금 교섭을 하면서 그 범위를 넘어 내년도 임금까지 미리 결정하는 것도 불가한 상황이었다.
이처럼 철도노조가 사측이 받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를 한 건 결국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퇴진 등을 요구하는 ‘정치파업’을 기정사실로 했기 때문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철도노조는 앞서 무기한 파업 돌입을 예고하면서 크게 6가지를 요구했다. 먼저 ▶정부 기준에 따른 기본급 2.5% 정액 인상 ▶231억원의 체불 임금 해결 ▶4조 2교대 완전 전환 ▶신규노선 위탁 중단 및 부족인력충원이 있다. 또 ▶과도한 감시와 처벌 중단 ▶공정한 승진제도 도입도 포함된다.
이 중 핵심사안인 체불 임금 해결은 기획재정부의 공기업 경영평가(경평)에 따른 성과급 지급기준과 직접 연결되고, 4조 2교대 전환은 국토교통부의 승인사항이다. 코레일 사측이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란 의미다.
성과급 지급기준 논란은 다소 복잡하고 사연이 길다. 코레일은 2011년부터 2017년까지 경평에 따른 성과급을 받을 때 다른 공기업과 달리 기본급의 100%가 아닌 80%를 기준으로 지급했다. 기재부의 임금지침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이후 2018년에 성과급 기준을 기본급의 100%로 하기로 노사 간에 단체협약을 맺었지만, 감사원 감사에서 이 부분이 문제가 됐다. 이에 따라 2022년 말 열린 기재부의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5년간에 걸쳐 지급 기준을 다시 80%로 낮추라고 결정했다.
코레일 경영진으로서는 단협을 어기면 노동 관련 법 위반으로 처벌대상이 되고, 그렇다고 기재부 지침을 안 지키면 여러 불이익이 우려되기 때문에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코레일이 2023년 경평에 따른 성과급을 올해 기본급의 88% 기준으로 지급한 탓에 231억원에 달하는 임금 체불이 발생하게 됐다. 철도노조는 이를 지불하라고 요구 중이다.
이에 대해 코레일 사측은 물론 국토부에서도 성과급 지급 기준과 관련한 문제점을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재부 등을 상대로 협의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철도노조에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기재부로부터 적극적으로 성과급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담은 공문을 받아오라”라거나 “2급 이상 간부의 임금을 2년간 동결하라”는 등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조건을 더 보탠 것이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철도노조가 민노총이 주도하는 정치파업에 참여를 사실상 결정해놓고, 협상을 결렬시키기 위해 사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권한 밖의 요구 조건 등을 내건 것 아닌가 하는 해석이 많다”고 전했다.
물론 철도노조는 이를 부인한다. 철도노조의 백남희 미디어소통실장은 “우리는 현 정세와 묶이는 게 가장 큰 걱정”이라며 “임금체불이나 임금인상 재원 부족사태를 고려해 조합원 설득에 필요한 사항을 요구했으며, 이게 관철되면 바로 파업 철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서울역과 부산역 등 지역별로 벌어진 철도노조의 총파업 출정식에서는 ‘윤석열 체포’ 같은 정치적 주장이 담긴 문구들도 눈에 띄었다. 정치파업이 아니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모습이다.
한편 국토부에 따르면 파업 첫날인 이날 열차는 평시 대비 90%대 초반의 운행률을 기록했다. KTX와 수도권전철 등은 90% 이상이었고, 화물열차만 60% 미만이었다.
코레일은 파업이 이어지더라도 수도권전철은 평시 대비 75%(출근시간대 90% 이상), KTX는 67% 수준의 운행률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새마을호는 58%, 무궁화호는 62% 수준이다. SR이 운행하는 SRT(수서고속철도)와 민간사업자가 운영하는 GTX-A, 인천공항철도, 서해선 등은 모두 정상운행 중이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것에 매우 유감”이라며 “정부는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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