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여행] 중국과 인도가 스며들어… 독특한 하나의 ‘말레이’로

김용현 2024. 12. 5.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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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멜팅 팟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야경을 장식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관광객들이 겐팅 하이랜드 테마파크를 찾은 모습과 한류 영향을 받은 겐팅 하이랜드 쇼핑몰의 벽화. 말레이시아 관광청 제공, 김용현 기자


지난달 23일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동쪽으로 58㎞ 떨어진 겐팅 하이랜드 테마파크. 말레이시아의 라스베이거스라 불리는 이곳 입구 양옆에는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 착안한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한 기구는 1996년 개봉한 SF 재난 액션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를 모티브로 제작됐다. 기구에 탑승한 관광객들은 곧 인류를 침공한 UFO를 격추하는 임무를 맡은 파일럿이 된다. 상영이 시작되면 탑승석이 서서히 떠오른다. 이후 정면에 위치한 스크린에 우주가 펼쳐졌다. 마치 비행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었다.

유인원의 진화한 미래를 상상한 프랑스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혹성탈출’을 소재로 한 놀이기구도 있었다. 탑승객들에겐 4D 안경이 주어졌다. 탑승객은 원형 모양의 장갑차를 타고 유인원들의 편에 서서 침략자들로부터 정글을 지켜내는 역할을 맡게 된다. 스크린에 뜨는 영화 속 세상에서 원주민을 지킨 탑승객들은 연신 손뼉을 쳤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지구를 공격하려는 외계인과 인류의 대결을 소재로 한다. ‘혹성탈출’ 시리즈는 지능이 인간만큼 발달한 변종 유인원의 대표 격인 ‘시저’ 무리와 이들 삶을 파괴하려는 악당 간의 싸움을 그린다.

이들 영화의 악역보다 더 무참하고 끈질겼던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역사가 말레이시아에 있다. 말레이시아는 400년 넘게 식민 지배를 당했다. 1511년 포르투갈의 침공을 시작으로 네덜란드와 영국 그리고 일본의 지배를 받아왔다. 1957년이 돼서야 독립을 이뤘다.

말레이·중국·인도가 공존하는 ‘멜팅 팟’

말레이시아가 미국 문화를 활용해 관광상품을 만들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담아낸 것은 ‘하나의 말레이시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로 해석된다. 말레이시아에는 중국과 인도 이민자가 섞여서 살고 있다. 이 때문에 ‘아시아의 멜팅 팟’으로 불리기도 한다.

쿠알라룸푸르 한복판을 걸으면 히잡을 쓴 말레이인과 중국인, 전통 의상을 입은 인도인까지 쉽게 마주칠 수 있다. 그만큼 말레이시아 사회에는 여러 문화가 공존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차별화된 문화를 응축한 모습이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말레이시아와 중국, 인도 간 교류는 고대부터 흔한 일이었다. 다만 중국과 인도를 떠나 말레이시아로 유입되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19세기 초부터였다. 말레이시아를 식민 지배하던 영국이 노예무역을 금지하고, 주변 국가에서 노동력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 7%를 차지하는 인도 이민자들은 고무농장에서 주로 일해왔다. 총인구의 22%에 달하는 중국 이민자들은 한때 세계 최대의 주석 생산국이었던 말레이시아에서 주석광산 노동자의 주축을 이뤘다.

닭고기 김치찌개를 아시나요

이민자들의 삶은 고달팠다. 간장과 중국식 향신료를 더해 진하게 삶은 돼지고기 요리 ‘바쿠텐’과 찰기 가득한 쌀밥은 중국 이민자들의 고된 생활을 달래주던 음식이다.

한국의 족발이나 갈비탕과 비슷한 이 음식은 말레이시아만의 독특한 식문화에 지친 여행자에게도 휴식이 됐다. 이슬람 문화권인 말레이시아는 원주민의 돼지고기 섭취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이슬람 신자가 아닌 이들은 이 규정에서 제외된다.

말레이시아 국민은 동남아시아의 지리적 특성 탓에 찰기가 없이 날리는 인디카 품종의 쌀을 주로 먹는다. 말레이시아 식당 곳곳에선 손으로 요리와 밥을 섞어 먹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인도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아침으로 인도 음식을 먹고, 점심으로 중국 음식을 즐기고, 저녁으로는 말레이 음식을 찾는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다양한 식문화를 즐긴다. 말레이인들은 중국과 인도 이민자들에게 종교뿐 아니라 식문화도 강요하지 않았다. 주로 도시와 쇼핑몰을 장식하는 식당 광고 대부분은 닭요리에 집중돼 있었다. 종교 등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류가 한창인 이곳에서도 한국 식당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다만 현지 식문화를 십분 반영한 특이한 한식도 많았다. 말레이시아에서 맛본 김치찌개에는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가 사용됐다. 다만 커다란 맛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들만의 방식인 관용과 변용을 통해 새로운 식문화를 만들어낸 셈이다.

1년 내내 골프… 열대우림 말레이의 매력

적도 부근에 있는 말레이시아의 열대우림 기후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 코코넛과 열대과일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사시사철 푸르고 따뜻하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선 한결같은 여름 휴가를 즐길 수 있다. 연중 내내 골프를 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으로 꼽힌다. 한국 골프장 방문 비용의 20%가량을 부담하면 그린피나 캐디비까지 다 낼 수 있다. 골프장 주변에서 원숭이와 마주하는 것도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온다. 산책을 좋아한다면 정글 트레킹을 해볼 수도 있다.

말레이시아는 열대지방이지만 모든 곳이 덥지는 않다. 말레이시아인들은 시원한 바람이 그리울 때면 산악지대를 찾는다. 중국 이민자 출신 사업가 림고통이 지은 겐팅 하이랜드 리조트 단지는 해발 약 1700m 고원지대에 있다. 10여분간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쇼핑몰과 테마파크가 관광객을 반긴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 찾기 좋은 곳이다.

“다문화 품은 나라, 미식가 한국인 여행 오기 안성맞춤”
아즈미 말레이시아 관광청 국장

말레이시아가 본격적인 한국 관광객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2026년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를 앞두고 동남아 관광 수요가 큰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누왈 파딜라 쿠 아즈미(사진) 말레이시아 관광청 국제홍보부 아시아·아프리카 국장은 지난달 21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코로나 펜데믹 이후 말레이시아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 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며 “다변화된 수요를 충족하는 체험형 레저 관광, 단기 영어 교육 프로그램, 골프 등에 대한 마케팅 활동을 병행해 더 많은 한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40만명이었다. 이 수치는 올해 57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말레이시아 관광청은 2026년까지 70만명이 넘는 한국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아즈미 국장은 다른 동남아 국가와 차별되는 말레이시아의 매력으로 다채로운 문화를 꼽았다. 그는 “말레이시아는 단순한 열대 휴양지가 아니라 다문화를 간직한 여행지”라며 “말레이시아를 찾으면 산과 바다 같은 풍부한 자연을 가장 먼저 연상한다. 또 다문화 덕에 발달하게 된 다양한 식문화 역시 미식가인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말레이시아의 유별난 한국 사랑도 한국인 관광객에게 매력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찬드란 라마 무티 바틱에어 말레이시아 사장은 “아내가 K-드라마를 밤새 정주행하는 등 한류의 광팬”이라며 “말레이시아를 한국인들에게 소개하고, 또 말레이시아 국민을 한국으로 보내는 가교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인천국제공항에 취항한 바틱에어는 한국 시장이 커지면서 부산과 제주 취항을 목표로 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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