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3) 좌우 줄서기로 갈라진 운명 “너는 왼쪽, 골프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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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역도는 결국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 그만뒀다.
몸무게 48㎏의 세 배가 넘는 158㎏ 역기를 들어 올리던 나였다.
더군다나 내 의지로 그만둔 게 아니라 강제로 잘렸기에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 당시 완도에서 출세의 기준은 원양어선이나 상선의 선장이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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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 되려고 완주수산고등학교 진학
처음 본 골프연습장, 닭장으로 오해도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역도는 결국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 그만뒀다. 몸무게 48㎏의 세 배가 넘는 158㎏ 역기를 들어 올리던 나였다. 허벅지 두께는 28인치를 자랑했다. 체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후배들한테 밀려 후보선수가 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춘기 소년의 자존심으로는 허용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 의지로 그만둔 게 아니라 강제로 잘렸기에 힘든 시기를 보냈다.
운동을 그만두고 나서야 처음으로 오후 수업에 들어갔다. 영어 시간이었는데 영어를 처음 접하고 느낀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매 수업 시간이 스트레스였다. 당시에는 선생님이 묻는 말에 대답을 못 하면 두껍고 딱딱한 출석부로 맞는 시절이었다. 열여섯 최경주에게 학교는 맞으러 가는 곳이었다. 나는 스스로 “공부는 내 길이 아니여”를 반복해 되뇌었다.
학교도 잘 안 가고 친구들이랑 노느라 땡땡이도 쳤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이 끝날 무렵 고등학교에 가려니 대책이 서지 않았다. 공부도 안 돼 있고 기본도 안 잡혀 있었다. 그런데 완도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광주로 유학을 보내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야, 니 광주 가서 뭐 하려고 그러냐. 수고나 가서 배나 타지”라고 하시길래 완도수산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 당시 완도에서 출세의 기준은 원양어선이나 상선의 선장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기관장이 되고 싶어 기계과를 선택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보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많았다.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입학식 날이었다. 갑자기 체육 선생님이 단상에서 “역도를 해봤거나 하고 싶은 녀석 있으면 앞으로 튀어나와” 하고 외쳤다. 나는 속으로 ‘웬 횡재냐’ 싶었다.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단상으로 뛰어나갔다. 나를 포함 열 명 정도가 나왔다. 선생님이 한 명씩 지목하면서 두 줄로 나눠 서게 했다. 내 차례가 됐다. “너는 왼쪽.”
영문도 모르고 서라는 데로 섰다. 이후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 “왼쪽은 골프부, 오른쪽은 역도부다.”
“골프가 뭐시여?” 골프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순간이었다. 친구들도 골프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나 포함 모두가 수군거렸다. 나는 몰래 오른쪽으로 옮기려다가 선생님한테 딱 걸렸다. “어이 최경주, 니 왼쪽으로 안 가냐. 김기석 김성훈 박현준 정대경 최경주. 니들은 오늘부터 골프부여.”
이날부터 운동부 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이 시기 한국은 88서울올림픽으로 개발이 한창이었다. 어느 날 학교 근처에 철근 구조물이 들어섰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퍼런 어망 같은 게 쳐졌다. “이야 뭔 놈의 닭장이 저렇게 크다냐.” “야 이 무식한 놈아, 닭이 그렇게 높냐? 저건 꿩 울타리여.”
매일 등하굣길에 그곳을 지날 때마다 친구들과 논쟁이 붙었다. 결국 직접 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늦은 밤 몰래 그곳으로 모인 우리는 닭이나 꿩이 놀랄까 봐 발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망을 들추고 들어갔다. 근데 웬걸. 눈에 보인 건 닭도 꿩도 아니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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