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100년 산책] 의정 갈등 풀려면 사회과학적 상식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교양학부를 책임 맡고 있을 때였다. 조교 일을 도와주던 대학원 학생의 질문이다. “이공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성적평가가 정확하고 공정한데, 문과대학이나 사회과학의 성적평가는 각각 달라서 불공정해 보인다”는 것이다. 내 대답은 이랬다. “그래야 한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모든 문제의 해답이 정해져 있다. 하나의 물음에 맞는 하나의 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과학 영역에서는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 여럿이 되어야 한다. 그 몇 가지 답 중에 어느 것이 더 타당성이 있는가를 가려 답을 선택하게 된다. 그런데 인문학에서는 어떤 물음에 대해 같은 답이 있을 수 없고 모두 달라야 한다. 그중에서 어느 답이 객관적 가치가 있는가를 가리게 된다. 그래서 자연과학의 확실성, 사회과학의 개연성과 타당성, 인문학의 다양성과 창조성이 합쳐서 사상과 생활 관념이 공존하게 된다. 대학입시 때도 객관식 영역과 주관적 문제가 다 같이 필수조건이 된다.” 어느 것이 더 중하고 필요한가는 우리 삶의 영역과 분야에 따라 선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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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 하나에 답도 하나라는
자연과학적 접근법 벗어나야
국민은 대립·투쟁 멈추길 원해
이기심 접고 사회적 의무 다해야
」

1년 이상 지속되는 의·정 갈등
정치학과 현실정치는 사회과학 분야에 속한다. 어떤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절대 유일성을 찾는 하나의 대답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인문학적 사고와 같이 모두가 주관적으로 평가되어도 안 된다. 무엇이 주어진 과제의 진실성인가를 해결하면 그에 대한 대답과 해결 방법은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해답은 그 문제의 사회적 현실에 비추어 무엇이 최선의 가치로 타당한가를 찾아야 한다. 나와 우리의 주장을 강요해서도 안 되며, 절대 유일의 해답인 듯이 착각해서도 안 된다. 최선이 아니더라도 그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는 차선의 길과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과실의 성숙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지혜가 필요하다.
현 정부가 국민을 위한 가장 소중한 과제의 하나는 의료정책이라고 설정했다. 국민의 기대와 요청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정책이 제기되면서부터 차질을 빚고 난관에 부딪혀 일 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 안에 깔린 암초는 사회과학에 속하는 문제를 수학이나 자연과학과 일치되는 방법으로 해결 지으려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그 중요성을 인정했으면 교육부나 보건복지부가 의료계의 전문 지도층에게 중요성의 공감을 확인하고 그 해결책을 함께 연구 개발했어야 했다. 정부의 책임은 담당 기관을 후원하며 국민적인 성과를 얻어야 한다. 정부와 정권이 바뀌더라도 그 최선의 목표와 방법이 유지되어야 한다. 탁상공론으로 조사 연구한 후에 내년부터 2000명이 표준이고 다소 증감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갖는 상식이다. 그런데 2000명은 절대적 수치라고 했다. 뜻밖의 발표에 의사협회가 정면 반대 성명을 내놓았다. 의사협회 성명에 접한 국민은 매우 놀랐다. 2000명을 강요할 테면 해보라,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용하기는커녕 반정부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지 않아도 몇 해 전에는 의약 분업을 놓고 의사협회가 대정부 투쟁에서 승리해 사회문제가 되었고, 의사협회와 간호사협회 간의 갈등은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 의사협회 부회장이 간호사들에 대한 갑질 발언을 삼가지 않아 국민이 실망했다. 지금까지도 2000명 문제가 해결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문제는 2000명 수치가 아닌 줄 알면서도 누가 이기는가 싸워보자는 구실로 삼는다. 수학을 위시한 자연과학적 사고와 사회문제를 위한 사유간 격차의 결과이다. 의사협회와 사회적 비중이 비슷한 변호사협회는 성격이 좀 다르다. 사회과학적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연과학적 사고와 사회과학적 사고의 차이뿐 아니다. 국가의 중책을 맡은 정부와 의학계 관계자들의 인격과 사회적 지도력의 문제다. 중책을 맡은 지도자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의무와 애국적인 사명까지 집단이기적 가치판단으로 병들어서는 안 된다.

무책임한 전공의와 야당
정부와 의협의 대립이 노골화되면서 전공의들이 무책임하게 환자를 방치하고 병원을 떠났다. 길 가던 나그네도 물에 빠져 헤매는 사람을 보면 누구나 뛰어들기 마련이다. 의사가 치료하던 환자를 외면한다면 누가 ‘의사다운 의사’로 존경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전공의들의 그간의 처우에 대한 사회적 부조화를 이해한다. 그 의료계 안의 부조리도 의료계 내부 지도층의 책임이 컸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환자와 함께 의무를 감당하면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그것이 병원장의 책임이기도 했을 것이다. 국회 절대다수를 차지한 야당 의원들의 자세 또한 국민의 기대와는 일치되지 못한다. 이 문제 때문에 정부의 실패가 증대되면 우리에게 정치적 이득이 된다는 사고를 갖는다면 대한민국의 주인은 누구이겠는가.
이제는 정부와 의료계가 0과 100을 놓고 대립하고 투쟁하는 부끄러운 잘못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사회문제는 국민 모두의 행복과 인간다운 삶을 위해, 때로는 희생정신까지 갖고 재출발해야 한다. 그 책임은 먼저 나와 우리 편에 있다. 상대방 때문이라는 사고 자체가 잘못이다. 생각 있는 국민은 이제 정부와 의료계가 명분과 실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대립과 투쟁을 끝내길 바란다. 국민은 양보와 희생을 감수하는 지도자에게 존경심과 사랑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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