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음식과 약] 초가공식품에 대한 오해

2024. 12. 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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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초가공식품이 만악의 근원인가? 요즘 건강 뉴스를 보면 그런 것만 같다. 2024년 9월 학술지 ‘란셋’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하버드 공중보건 대학원에서 미국 성인 20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30년 동안 추적한 연구 결과, 초가공식품을 가장 많이 섭취한 사람은 가장 적게 섭취한 사람에 비해 연구 기간 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이 11% 더 높고 관상동맥질환 위험이 16%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연구 결과에는 두 가지 약점이 있다. 우선 식품 섭취에 대한 연구는 설문조사에 의존하므로 부정확하다. 무엇을 먹었는지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관찰연구이므로 인과관계를 알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초가공식품을 많이 먹어서 심혈관 질환 위험이 높아진 것인지 다른 변수가 작용한 것인지 가려내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칼로리가 높지 않고 영양적으로 균형잡힌 식단이지만 초가공식품인 경우도 있다. [중앙포토]

게다가 초가공식품의 기준 자체가 애매모호하다. 2009년 브라질 상파울루 대학교의 연구자들이 식품을 가공 정도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하는 노바 분류체계를 제안했다. 최소로 가공되거나 가공되지 않은 식품을 1, 요리 재료로 사용되는 설탕, 소금 같은 가공식품은 2, 가공식품은 3, 초가공식품은 4로 번호를 매긴 것이다. 첨가물 가짓수가 적으면 가공식품, 가짓수가 많으면 초가공식품이다. 플레인 요구르트에 설탕이나 잼을 넣어 달게 만들면 초가공식품이 된다. 두부는 첨가물을 몇 가지 사용했느냐에 따라 가공식품이 될 수도 있고 초가공식품이 될 수도 있다. 집에서 찌개를 끓이면 비가공식품이지만 찌개에 조미료를 넣으면 초가공식품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소량의 조미료를 넣는다고 해서 식품의 속성이 크게 달라지거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바뀐다고 볼 과학적 근거는 빈약하다. 설탕이나 향료를 넣는다고 요구르트가 갑자기 건강에 해로운 식품으로 변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앞서 소개한 하버드대 연구에서 가당 요구르트, 냉동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시리얼, 팝콘, 크래커는 심혈관질환 위험 감소와 연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이 분석한 10개 초가공식품 카테고리 중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은 단 두 가지로 당분 음료와 육류, 가금류, 생선을 가공한 식품이었다. 당류와 가공육을 지나치게 섭취하면 건강에 해롭다는 기존 견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연구 결과인 셈이다.

초가공식품의 진짜 문제를 하나 찾는다면 맛있고 저렴하며 편리해서 많이 먹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2019년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에서 20명의 실험 참가자들은 초가공식품 식단일 때가 최소로 가공한 식품이 주어졌을 때보다 약 500㎉ 더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가공식품으로 먹은 2주 동안 체중이 0.9㎏ 늘었고 최소로 가공한 식품을 먹은 2주 동안은 0.9㎏ 줄었다. 가공 여부보다 건강에 더 중요한 건 양이다. 소식하자.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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