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이냐 자본시장법 개정이냐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4. 12. 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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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 난다 했는데…

국회가 상법 개정안 논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여야 간 이견이 극명해 접점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에 대해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반면 정부와 국민의힘은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맞서고, 재계는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 공격이 우려된다”며 긴급성명을 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1월 26일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고 상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지만 내내 격론이 벌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담았다. 이사에 대해 ‘회사 및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하고, 직무 수행 시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기업 이사가 지배주주인 총수 이익을 위해 일반 주주에 불리한 결정을 할 경우, 상법상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된다. 이 밖에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꾸고 이사 총수의 3분의 1 이상을 독립이사로 하도록 했다. 아울러 전자주주총회 개최도 가능하게 했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결정한 후 투명한 자본 시장을 만들겠다며 당내 ‘대한민국 주식 시장 활성화 TF’까지 설치한 민주당은 상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야당은 국내 대기업 이사회들이 지배주주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쪼개기 상장’ 등으로 소액주주들을 희생시켜왔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 투자를 꺼리고 한국 증시가 저평가된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올해 정기국회 내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국민의힘은 야당의 상법 개정안을 ‘글로벌 투기자본 ‘먹튀’ 조장 자해법안’이라고 규정하며 개정안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재계 문제의식에 동조한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8단체와 주요 기업 사장단도 각각 입장문을 내고 “섣부른 상법 개정은 이사에 대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고 해외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크게 훼손시키는 ‘해외 투기자본 먹튀 조장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상법을 개정하면 한국 증시가 해외 투기자본 놀이터로 변하고 기업가치가 떨어진다는 게 재계 측 입장이다.

국회 넘어갔지만 격론에 격론

‘총주주 이익’ 재계 거센 반발

야당 안을 지지하는 쪽은 정부·여당과 재계 우려가 지나치다고 반박한다. 재계는 글로벌 투기자본 공격을 우려하며 외국계 펀드가 국내 기업 최대주주가 된 21년 전 ‘소버린 사태’를 예로 든다. 외국계 헤지펀드 자산운용사인 소버린은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에 따른 경영 공백을 틈타 지분을 14.8%까지 늘려 SK 최대주주에 오른 바 있다. 소버린은 법정 공방 끝에 지분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에서 ‘단순 투자’로 바꾸고 주식을 팔아 8000여억원의 차익을 거뒀다. 일각에서는 21년이 지난 지금 국내 증시 덩치가 커져서 외국계 헤지펀드가 국내 대기업 최대주주가 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반박한다. 외국계 펀드 대부분 이사 선임 등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일부 이사 선임을 시도하더라도 이사회 7~8명 중 감사위원 1명 정도 선출하는 수준이라 의사 결정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안이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아닌 ‘총주주의 이익 보호’라는 표현을 채택한 부분도 논쟁거리다. 재계는 법적 분쟁 시 ‘총주주’의 정의를 두고 다툼 소지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최대주주와 2대 주주, 소액주주 이해관계가 모두 다른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느냐는 반발이다. 야권과 시민단체는 상법 개정안이 최대주주 이익과 나머지 주주 이해관계가 배치되는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이사회가 회사 손해를 감수하고 총수 일가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일반 주주에 손해를 끼치더라도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합병비율을 정하는 경우 포괄적인 제동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또한 상법을 개정하면 소액주주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은 상법 개정 이후 소액주주 소송이 늘어날 가능성은 높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다만, 야권에서는 이는 이사회가 총수 일가 이익을 위해 일반 주주에 손해를 끼쳐선 안 된다는 판례를 세우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교과서에만 숨어 있던 지극히 당연한 주주 보호의무를 현실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해외 장기 투자 자금이 한국 시장으로 들어오는 기초가 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옹호했다.

여당은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맞서

2600개 상장법인 ‘핀셋’ 적용 대안

현실적으로 상법 개정안을 무력화시키기 어려운 정부·여당은 더불어민주당 개정안에 맞서 소액주주 보호를 강화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야당 주장대로 상법을 개정하면 대·중소기업 103만곳이 모두 적용받기 때문에 심각한 경영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했다. 정부·여당은 자본시장법을 통해 2600개 상장법인에 ‘핀셋’으로 적용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것도 상장법인 합병 등 자본거래만 한정해 적용하자는 입장이다.

정부는 상장법인 합병을 포함한 자본거래에 주주 보호 원칙을 넣는다. 아울러 이사회 책임을 명확히 하고 회사·주주, 대주주·소액주주의 이해 충돌 시 규범을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합병 등 자본거래 때 주주의 이익을 적극 고려하도록 했다. 법인 합병 시 주식 가격·자산 가치·수익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공정가액으로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현재는 주가만으로 가치를 매기는데,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일반 주주에 대한 신주 배정 내용을 넣기로 했다. 또 물적분할 후 자회사에 대한 상장심사 기간을 기존 5년에서 무제한으로 늘리는 거래소 상장규정 시행세칙을 개정하기로 했다.

재계는 상장사가 합병을 결의하는 과정에서 이사회가 의견서를 작성하고 공시하도록 하는 내용 등은 수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사 합병 과정에서 합병비율을 시가(주가)가 아니라 자산 가치와 수익 가치 등을 반영한 공정가액으로 산출하는 내용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민주당은 기업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으로 기업인에 대한 배임죄 처벌 완화 카드를 꺼내 들며 개정안 통과를 위한 설득 작업을 진행 중이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7호 (2024.12.04~2024.1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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