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사’ 역할 못하는 증권사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문지민 매경이코노미 기자(moon.jimin@mk.co.kr) 2024. 12. 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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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부실한 실사…몸값은? 회사 맘대로
美, 싸게 상장 뒤 유통 시장서 가치 입증

‘증권을 인수함에 있어 인수회사를 대표해 발행회사와 인수 조건 등을 결정하고 인수·청약 업무를 통할하고 업무를 영위하는 금융투자회사.’

자본 시장과 금융투자업 법률에 명시된 주관사(主管社) 설명이다. 겉보기에는 복잡하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기업공개 혹은 증자 등 자본 조달 과정을 책임지고 맡아 관리하는 회사라는 뜻이다. 자본 조달 절차에 미숙한 기업을 돕고 건전한 투자 생태계를 만드는 게 주관사 역할이다. 하지만 한국 자본 시장 속 주관사 의미는 변질된 지 오래다. 제 역할은 하지 않고 ‘단순 흥행’에 초점을 맞춰 잇속 챙기기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터져 나온다.

이론과 반대로 가는 韓 IPO

RFP부터 시작되는 ‘오버 밸류’

최근 한국 IPO 시장은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휩싸였다. 상장 직후 주가가 떨어지는 사례가 속출해서다. 올해 11월 코스닥 신규 상장 기업 14곳 중 12곳이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떨어진 종가를 기록했다.

IPO 시장은 ‘저평가 이론(IPO underpricing)’이 통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IPO 기업은 기본적으로 알려진 정보가 적어 공모 실패를 막기 위해 공모가를 밸류에이션(기업가치)보다 낮게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저평가 이론’의 요지다.

공모가는 저평가 상태로 상장했지만, 한국 증시가 부진해 고평가 논란이 불거진 건 아닐까. 그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2024년 한 해 전체로 기간을 넓혀 분석해도 비슷한 현상이 감지된다. 결국 공모가 자체가 높게 형성됐다는 의미다. 과거 증권사 IPO 부문 업무를 맡았던 한 자본 시장 관계자는 “IPO 주관사 선정 과정에 한 번만 참여해도 한국 자본 시장 ‘공모가 오버 밸류에이션’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털어놨다.

IPO를 앞둔 비상장 기업 A가 있다고 치자. A는 일단 주관사(증권사)를 선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증권사에 제안요청서를 보낸다. 이른바 ‘RFP(Request For Proposal)’다. 일반적으로 RFP에는 ‘증권사 IPO 트랙 레코드’ ‘인력 규모 등 IPO 부문 역량’ ‘국내 IPO 동향 분석’ 같은 기본 요청 자료와 일종의 상장 컨설팅 요청이 담긴다. A기업의 적정 상장 시점은 언제라고 보는지, 또 밸류에이션은 얼마로 판단하는지 등이다. RFP를 받아 든 증권사는 피 말리는 경쟁을 시작한다. 통상 RFP가 5페이지 분량으로 오면 증권사는 100장 이상 PPT 자료를 만들어 제출한다. A기업은 받아 든 증권사 PPT 중 마음에 드는 몇 개를 선정한다. 일명 숏리스트다. 이후 작성 증권사를 대상으로 대면 설명회를 요청한다. 설명회 끝에 대표 주관사 혹은 공동 주관사를 결정하고 본격적인 상장 절차를 밟는다.

여기까지가 IPO를 위한 주관사 선정 과정이다. 동시에 공모가 고평가 논란의 시작점이다. 기업이 RFP에서 가장 중시하는 건 밸류에이션이다. 증권사도 이를 안다. 미리 기업이 희망하는 밸류에이션을 파악하고 그보다 높은 수치를 제시하는 게 일종의 관례가 됐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뎁스(depth) 있는 자료를 RFP 수령 2~3주 내 제작하려면 팀원이 야근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시간만 허비하고 성과가 없으면 안 되니까, 자연스레 높은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토로했다. 현실적 어려움은 있지만 공수표가 결국 희망공모가(기업과 주관사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공모가 범위) 산정까지 영향을 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악순환에 가깝다.

IPO 시장에서 희망공모가를 산정하는 건 주관사 역할이다. 상대평가법이 활용된다. ‘유사 사업자(피어그룹)’인 국내외 상장사 시장 가치를 끌어와 희망공모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주로 피어그룹 주가수익비율(PER) 혹은 주가매출비율(PSR)이 쓰인다. 예를 들면 이해가 쉽다. ‘감귤 판매’ 사업을 하는 B기업이 상장을 진행 중이라고 가정하자. 주식 시장에는 ‘한라봉’을 파는 C기업과 오렌지를 수입해 파는 D기업이 있다. 이때 주관사는 C와 D기업을 피어그룹으로 선정, PER을 살펴본다. 각각 PER이 10배와 15배라면 주관사는 B기업 적정 PER로 12.5배를 부여해 희망공모가를 결정한다. PER은 주가를 순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PER 수치가 높을수록 고평가 구간이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순수하게 비슷한 규모의 유사 사업자를 피어그룹으로 선정해 PER을 부여했더니 앞서 제시한 밸류에이션에 못 미치는 값이 나온 것. 주관사는 머리를 굴린다. 비슷한 규모 기업이 아닌 PER이 높은 ‘글로벌 톱 기업’과 비교를 한다거나, 사업 일부만 겹칠 뿐 핵심 사업은 전혀 관련 없는 기업을 피어그룹으로 선정하는 것. 의심 사례도 여럿이다. 삼성증권이 대표 주관을 맡은 ‘정밀측정 센서’ 업체 씨메스는 올해 10월 상장했는데, 일본 공장 설비 자동화 업체 키엔스(Keyence)와 산업 로봇 업체 화낙(Fanuc), 나스닥 상장사 코그넥스(Cognex) 등을 피어그룹으로 꼽았다. 모두 시가총액만 수십조원에 달하는 전 세계 톱티어 기업이다. 지난해 100억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낸 국내 기업과 피어그룹으로 보기에는 규모 면에서 차이가 크다.

‘디지털 테마파크’를 외치며 11월 상장한 닷밀도 마찬가지다. 닷밀은 피어그룹의 PSR을 밸류에이션 산정에 활용했는데, 피어그룹 중 한 곳으로 일본 산리오를 채택했다. 규모 자체도 괴리율이 크지만 진짜 문제는 주력 사업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산리오는 자체 캐릭터 IP를 앞세워 상품을 기획, 판매한다. 영상 증강현실(AR) 기술 기반 콘텐츠를 만드는 닷밀과 연관 관계가 적다. 닷밀 측은 산리오의 신사업 방향성(몰입형 테마파크)이 닷밀이 추구하는 사업 모델과 유사하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선 이 같은 행태를 두고 “결국 공모가를 높일수록 주관사인 증권사가 얻는 이익이 커지기 때문”이라는 말을 내놓는다. 현재 주관사 IPO 보수는 정률제다. IPO 성공 시 공모가의 1~3%를 수수료로 받는다. 과거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정액제 전환 움직임이 있었지만 증권가 반발로 막혔다.

증권사가 상장 주관사로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여의도 증권가. (매경DB)
투자자만 울리는 ‘도덕적 해이’

몸값 띄우고 상장 직후 차익 실현

IPO 주관사의 모럴해저드에 대한 지적도 잇따른다. 앞선 설명처럼 기업과 주관사는 IPO에서 가능한 한 높은 몸값을 원한다. 희망공모가를 최대치로 부풀리고 기관 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는 이유다. 수요예측은 공모가를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하는 완충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국내 IPO 시장에선 거품 씌우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주관사 마케팅에 부응해 공모 흥행을 만들어낸 기관 투자자는 장기 보유 약속을 거의 하지 않고, 상장 당일에 가격이 높을 때 수익을 내고 유유히 빠져 나온다.

문제는 기관 투자자뿐 아니라 주관사마저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투자증권이 에이럭스 상장 첫날 보유 지분을 매도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투자증권이 상장을 주관한 에이럭스는 지난 11월 1일 코스닥에 입성했다. 증시 입성 전부터 투자자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종목이다.

교육용 드론·로봇 전문기업 에이럭스는 지난 10월 11~17일 기관 수요예측을 실시한 결과 공모가를 회사 측 희망범위(1만1500~1만3500원) 상단을 초과한 1만6000원으로 확정했다. 당초 희망공모가 산정 때 고평가 논란이 불거졌음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에이럭스는 밸류에이션 산정 과정에서 미래 현금흐름 등을 추정하지 않고 과거 실적을 활용했다. 올 상반기 기준 최근 4개 분기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뒀다. 그러면서 비교 기업은 산업용 로봇 전문기업 브이원텍과 로보스타를 선정했다. 실적은 과거를 기준으로 삼은 반면 비교 기업으로는 미래 성장성이 높은 기업을 선택한 셈이다. 브이원텍과 로보스타의 주가수익비율은 각각 41배, 61배로 비교 기업의 평균 PER이 52배에 달한다. 더군다나 사업 구성이 유사한 코스닥 상장사 로보로보와 로보티즈는 올해 상반기 적자를 기록해 비교 기업에서 제외했다.

주관사가 희망공모가 산정 과정에서 높은 PER을 적용했다는 건 그만큼 기업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투자증권은 에이럭스 상장 후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차익 실현을 위해 상장 첫날 보유 주식 33만9500주를 매도한 것. 이는 발행주식총수의 2.56%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시장에서 대규모 물량이 쏟아져 나오며 에이럭스 주가는 상장 당일에만 40% 가까이 급락했다. 첫날 거래를 공모가 대비 반 토막 난 8450원으로 마무리했다. 한국거래소는 특정 계좌 거래량이 지나치게 많다는 이유로 11월 4일 에이럭스를 투자주의 종목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에 한국투자증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성장성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던 주관사가 상장 첫날부터 차익 실현을 위해 보유 물량을 매도한 건 앞뒤가 다른 행위라는 비판이다. 투자자를 기만한 행위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특히 주관사와 기업을 믿고 투자한 투자자는 상장 후 주가가 급락하며 손실을 입었다. 반면 한국투자증권은 막대한 수익을 거두며 투자자 분노를 일으켰다.

2020년 프리 IPO 투자 당시 한국투자증권은 에이럭스 주식을 주당 3600원에 취득했다. 이와 비교해 공모가는 344%나 높은 수준이다. 한국투자증권이 1일 가중평균주가인 1만1483원에 에이럭스 보유 주식 33만9500주를 매도했다고 가정하면 약 27억원의 차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1.1%에 해당하는 14만5500주는 1개월 의무 보유로 묶인 상황이다. 향후 투자금 회수를 위해 한국투자증권이 언제든 팔아치울 수 있는 물량이다.

물론 법을 위반하는 행위는 아니다. 대표 주관 계약 체결 당시 5% 이하 지분만 보유했기 때문에 금융투자협회 증권 인수 업무 규정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2년 이내 투자분에 한해 1개월 의무 보유가 걸리지만, 한국투자증권이 투자한 시점은 이미 4년이 지났기 때문에 규정상 의무 보유 대상이 아니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규정상 의무 보유 물량이 아니고 보유한 물량 중 30%는 자발적으로 록업(의무보유예수)을 걸어둔 상태”라며 “다른 주주들도 록업이 걸리지 않은 물량이 어느 정도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인지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규정상 문제가 없더라도 상장 주관사로서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여지는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공모주 시장 분위기가 처진 상황에서 IPO 시장 전반에 타격을 주는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한국투자증권의 행위는 규정을 따질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성장성이 높은 것처럼 마케팅을 해놓고 상장 첫날 바로 매도하는 것을 이해하는 투자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금융당국도 록업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대표 주관사로서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 소화는 IPO 시장의 숙명이다. 발행 시장 물량을 유통 시장에서 받아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앞 단계에서 투자한 회사가 보유 물량을 팔 수 있는 상황에서 높은 가격에 매도하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투자 당시와 주당 가격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면 한국투자증권도 팔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펀드 정책으로 인해 가능한 한 빨리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금융당국이 최대주주 록업은 길게 걸도록 강조하면서 주관사는 느슨하게 풀어줬다는 점이 의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거래소 본사 전경. (한국거래소 제공)
흠집 방관하는 주관사

몰랐어도 알았어도 문제

자본 시장에서 주관사의 주된 역할 중 하나는 실사, 즉 ‘듀 딜리전스(Due Diligence)’다. 시장 생태계를 교란하거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사전에 필요한 조사를 진행하고 밝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역시 충분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실사 과정에서 흠집을 발견 못하거나 혹은 알고도 모른 척한다는 의혹이 불거진다.

지난 10월 30일. 고려아연發 일반공모 유상증자 공시가 뜨자 증시가 출렁였다. 주당 150만원 넘는 주식을 원하는 누구에게나(일반공모) 67만원에 주겠다는 것. 공시 직후 고려아연 주가는 하한가(-30%)로 추락했다. 고려아연 스스로 주가를 반 토막 냈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금융감독원은 즉시 브레이크를 걸었고 결국 유증 계획은 취소됐다.

하지만 후폭풍은 여전하다. 금융감독원은 고려아연의 공개매수 모집 주관사인 동시에 유상증자 대표 주관을 맡은 미래에셋증권이 유상증자 계획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공개매수 신고서에 기재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다. 고려아연은 10월 11일 공개매수 관련 최종 정정신고서를 내면서 “회사의 지배구조, 재무 구조, 사업 내용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 계획은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명시했다.

의혹을 불러일으킨 지점은 크게 2가지다. 10월 30일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며 첨부한 기업실사보고서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10월 14일부터 10월 29일까지 고려아연 기업 실사를 진행했다. 공개매수가 진행된 10월 2~23일과 겹친다. 금융감독원이 이를 문제 삼자 공시 당사자인 고려아연 측은 단순 기재 오류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검토한 것은 지난 10월 23일 이후라고 덧붙였다. 미래에셋증권은 공개매수 사무취급과 유상증자 모집주선 모두 기업금융(IB)2본부 IB1팀에서 담당했다. 계획을 모르는 게 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감독원은 KB증권에도 칼날을 겨냥한 분위기다. KB증권은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에서 온라인 공개매수 청약 시스템 등을 지원했다. 또한 유상증자 절차에선 직접 실사를 나가진 않았지만 공동모집주선인을 맡았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계획을 철회한 것과 무관하게 의혹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상당히 유의미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증권사의 미흡한 실사 행태는 IPO 시장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6월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이노그리드는 공모 청약을 5일 앞두고 돌연 상장 예비심사 승인 취소를 통보받았다. 한국거래소가 예비심사 결과를 미승인으로 번복한 사례는 1996년 코스닥 시장이 문을 연 이래 처음이다.

이노그리드는 지난 2월 최초 증권신고서 제출 이후 7차례 정정했다. 6번째 정정 신고서에서 최대주주가 지위 분쟁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추가했다. 2019년 말까지 이노그리드 최대주주였던 에스앤알코퍼레이션의 대주주였던 박 모 씨가 2019년 유상증자를 거쳐 최대주주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주주 권리를 행사 못했다고 주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코스닥 상장 규정에 따르면, 상장 예심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심사신청서의 거짓 기재 또는 중요사항 누락’이 확인되면 예심 승인 효력이 인정되지 않는데 한국거래소가 이를 발동한 것이다. 경영권·최대주주 지위 분쟁 관련 사항은 상장 심사 핵심 사안 중 하나다.

투자자들은 이노그리드 IPO 대표 주관을 맡았던 한국투자증권으로 화살을 돌렸다. 실사를 부실하게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동시에 6번째 정정 신고서에 담긴 ‘자의적 판단’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노그리드는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당사가 내·외부 법률 검토를 거쳐 살펴본 결과 만일 위와 같은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당사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증권업계 한 관계자들은 “발행사가 숨기려는 경영권 분쟁 등까지 실사 과정에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억울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정정 신고서에 자의적 판단을 적는 행위 등에 대해선 어느 정도 관리가 필요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사례의 경우 한국투자증권은 이렇다 할 제재 등을 받지 않았다.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IPO 주관 업무 개선 방안’을 내놓고 부실 실사 제재 관련 근거 마련에 나선 상태다. 발행사 자료에만 의존하는 형식적인 실사를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M&A 매각 주관은 아예 안 하나?
글로벌 IB 독점…IPO 주관 ‘쉬운 길’만
증권가에서 IPO 주관 경쟁은 치열하지만 언제부턴가 국내 증권사의 M&A 주관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글로벌 투자은행(IB)이 매각을 주관하거나 대형 회계법인이 담당한다. 일각에선 IPO 주관 경쟁 과열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가 M&A 주관 경쟁력 강화 등 새 먹거리 발굴에 있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어려운 일’ 대신 ‘쉬운 일’을 택한 것의 결과라고 평가한다. M&A 주관 업무는 비용 측면에서 매력도가 떨어지고, 국내 M&A 시장 자체가 작기 때문에 증권사 입장에서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증권가 뒷얘기다. 이미 해외 IB와 일부 대형 회계 법인이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인력과 시스템 구축에 자금을 투입할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언급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M&A 시장에서 국내 증권사 역할은 인수금융 정도에 불과하다”며 “글로벌 IB와 비교해 국내 증권사 네트워크도 다른 데다, 국내 대형 증권사는 이미 자기자본 규모가 크기 때문에 M&A 시장에 비용을 들여 진입할 만한 유인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M&A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인력을 채용해야 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보완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며 “M&A는 성공 보수를 받는다는 점에서 안정성이 떨어지고 국내는 M&A보다 IPO를 통한 투자금 회수 사례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증권사들이 매각 주관보다는 IPO 주관에 더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천편일률 리서치 보고서도 ‘도마’
꼼꼼히 기업 살폈나…“정보 확인 쉽지 않아”
리서치센터 역시 자본 시장 속 제 역할을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업이 제시하는 IR 자료와 가이던스에 의존해 천편일률적인 보고서만 낸다는 불만이다. 유상증자 과정에서 주관사의 내부 의견이 엇갈리며 투자자 혼란을 일으키는 사례도 나타난다.

초고다층 인쇄회로기판(PCB) 제조 기업 이수페타시스는 지난 11월 8일 55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공시했다. 앞서 10월 말부터 시장에서는 이수페타시스의 유상증자 가능성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유상증자 가능성을 일축했다. 박상현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10월 31일 “유상증자와 관련한 이수페타시스 공식 의견은 사실무근”이라며 “전략적 인수·합병(M&A)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불과 8일 만에 이수페타시스가 유상증자와 경영권 인수 계획을 내놓으며 정반대 주장을 펼친 모양새가 됐다.

실적 가이던스 역시 회사 측 자료를 받아 적는 수준이라는 비판도 새겨들어야 한다. 최근 셀트리온 신약 ‘짐펜트라’ 가이던스가 대표 사례다. 당초 증권가는 2024년 3분기 짐펜트라 매출 가이던스로 500억~900억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실제 3분기 매출은 64억원에 그쳤다. 뒤늦게 증권가는 2024년 연간 가이던스와 2025년 연간 가이던스도 수정했다. 2025년 가이던스의 경우 수정폭만 수천억원이다. 미래에셋증권은 당초 2025년 짐펜트라 매출 1조원을 예상했지만, 3분기 실적 발표 후 4626억원으로 줄였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IPO 담당 부서에서 공모가 밴드를 제시하는데, 리서치센터에서 이와 다른 기업가치를 제시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애널리스트가 굳이 위험 부담을 떠안고 신규 종목에 대한 보고서를 일찍 내야 할 유인이 없다는 내부 목소리도 존재한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신규 상장 종목은 언젠가 재무적투자자(FI)의 매도 물량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며 “오버행은 주가에 큰 영향을 주는 요인인데, 애널리스트가 이를 감안하고 무리해서 먼저 적정 주가를 제시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리서치센터 인력도 과거보다 줄어든 상황에서 위험 부담을 안고 신규 종목을 커버하려는 애널리스트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7호 (2024.12.04~2024.1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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