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주관사 역할 제대로 하려면...총액인수·의무 보유 등 제도 손질해야
최근 자본 시장에서 주관사(증권사) 책임 논란이 뜨겁다. 일부 주관사가 IPO 과정에서 중요 위험 요인 기재 누락, 부실한 기업 실사, 공모가 고평가, 상장 직후 대규모 주식 팔아치우기 등 다양한 밉상 행태를 보이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이런 주관사 꼴불견이 스스로 자본 시장 내 ‘문지기’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와 관련 총액인수 책임 강화, 의무 보유 기준 강화, 새로운 평판 기준 마련 등 제도 개선 등의 주문이 비등해지고 있다.
공적 기능 큰데도 자율 규제 ‘한계’
자본 시장에서 주관사는 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해주는 중개자다. 기업에는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도와주고, 투자자에게는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에 투자할 기회를 제공한다. 주관사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시장 ‘문지기’로서 기업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신뢰 있게 전달하는 공적 기능도 수행한다.
대법원은 지난 2020년 한화투자증권이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 판결에서 “IPO를 비롯한 증권의 모집과 매출은 발행회사가 직접 공모하기보다는 주관사를 통해 간접 공모하는 게 통상적”이라며 “개인 투자자들은 시장 문지기 기능을 하는 주관사의 평판을 신뢰해 투자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수용한다”고 판단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자본 시장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주관사는 시장 내에서 일종의 공적인 책임이 있다”며 “주관사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면 자본 시장의 존립 기반 자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주관사의 공적 기능이 중요함을 설파했다.
이처럼 주관사의 공적 역할이 크지만, 규제는 사실상 자율 규제에 의존한다. 전문가들은 자율 규제에 의존한 현행 체계로는 기업 실사나 공모가 산정에서의 부실 문제를 막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금융법연구센터장은 “주관사에 대한 제재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며 “미국이나 홍콩 등 금융 선진국과 비교하면 국내 주관사는 책임과 규제 수준뿐 아니라 IPO 수수료도 낮아 주관사가 단기적인 이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5월 금융감독원이 개최한 ‘IPO 주관 업무 제도 개선 간담회’에서도 이런 주관사 규제의 한계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금감원은 주관사의 IPO 주관 업무에 대한 자율 규제 틀을 유지하되, 주관사의 독립성 제고를 위해 수수료 구조 개선과 실사에 대한 법적 책임 강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김정태 금감원 부원장보는 “최근 중요 위험 요인 기재 누락, 공모가 고평가 등 IPO 주관 업무 관련 일련의 논란이 줄줄이 발생하면서 주관사 역량과 책임성에 대한 시장 신뢰가 크게 실추됐다”며 “IPO 주관 업무에 대한 자율 규제 틀을 유지하지만 주관사의 책임성과 독립성이 강화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주관사 책임 강화하려면
총액인수·의무 보유 강화 필요
전문가들은 주관사 책임 강화를 위해 무엇보다 ‘총액인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경우 총액인수 방식을 채택해 IPO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더라도 대표 주관사가 책임을 지고 IPO를 최종 성사시킬 수 있게 했다. 반면 국내 증권사는 IPO에서 손해가 날 우려가 있는 경우 IPO를 포기하기도 한다. 이에 총액인수 책임을 강화해 주관사가 단순히 중개 역할에 그치지 않고, 기업 상장에 실질적인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주관사에 총액인수 책임을 강화하면 주관사가 실사 과정에서 더욱 철저히 기업가치를 평가할 것”이라며 “이는 IPO 과정 전반의 투명성을 높이고, 공모가 부풀리기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사전 취득분에 대한 의무 보유 기준 강화도 중요한 과제로 손꼽힌다. 현재 주관사는 IPO 전 기업에 지분 투자를 할 수 있지만, 사전 취득분에 대한 의무 보유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평이다. 이에 IPO 직후 주관사의 주식 매도가 이어지며 시장 신뢰가 훼손될 가능성을 막기 위해 의무 보유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는 지분을 취득한 가격과 실제 공모가 괴리율이 50% 이상일 경우 6개월, 50% 미만이면 1개월 동안 보유 주식을 매도하지 못한다. 금융당국은 취득가와 공모가 괴리율이 30% 이상이면 6개월, 30% 미만이면 3개월 동안 의무 보유토록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주관사별 역량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주관사 평판 기준이 ‘IPO 흥행’에서 ‘장기 수익률’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의미다. 김우진 교수는 “현재 주관사 평판은 얼마나 많은 공모주를 판매했는지와 같이 흥행에 집중돼 있다”며 “상장 이후 주가 흐름에 대한 평가를 통해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평판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IPO 주관 수수료를 정률제에서 정액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현행 정률제 방식은 공모 물량이 많고 공모가가 높을수록 주관사가 수수료를 많이 가져가는 구조다. 이는 주관사들이 공모 기업가치를 과도하게 평가하는 유인이 된다. IPO 주관 수수료를 정액제로 바꿔 주관사 이익과 공모가 산정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 2020년부터 꾸준히 제기돼왔다.
주관사의 기업 실사를 보완해줄 제도로는 ‘코너스톤’ 제도가 꼽힌다. 코너스톤 제도는 발행사와 주관사가 사전에 대형 기관 투자자를 유치해 공모주 일부를 배정하고, 장기 보유를 약정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시행 중이다. 기관 투자자들이 코너스톤 투자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기업 실사 기능이 강화된다는 진단이다. 김갑래 센터장은 “코너스톤 제도는 국내 주관사의 낮은 실사 수준을 보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장기 투자 유도를 통해 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고, 단기 차익을 노린 시장 교란 행위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장기 성장 모델 개발해야”
과도한 규제는 IPO 위축 지적도
그러나 일각에서는 주관사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IPO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다. 직접적인 규제를 강화할 경우 주관사들이 상장 업무를 회피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간접적인 책임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관사 책임을 강화하더라도 책임 수준을 너무 높이면 상장 업무를 맡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 적정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효섭 실장은 “주관사가 나서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유리한 중장기 성장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 주관사의 책임 문제를 평가하는 데 있어 한국 자본 시장의 구조적 문제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의 경우 개인 투자자는 웬만하면 공모주 청약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개인 투자자 참여가 허용되면서 공모주 시장으로의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관 투자자 중심으로 운영되는 해외 시장과 달리 한국 시장은 공모 후 외생 변수로 주가가 하락하면 개인 투자자 불평이 커지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그렇다고 개인의 공모주 참여를 금지할 경우 소액주주 반발이 클 것이기 때문에 현행 제도 아래에서 문제점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7호 (2024.12.04~2024.12.10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시총 3위 나야 나~...‘스테이블코인 승인’ 소식에 리플 ‘급등’ - 매일경제
- 조원진 “尹 다른 생각 있을 듯…이재명과 손잡을 수도” - 매일경제
- 秋 “4조 삭감하고 확장 재정?…이재명표 예산 위한 꼼수 자백” - 매일경제
- 김동연 경기도지사 “尹, 이제 탄핵 아닌 체포 대상” - 매일경제
- 尹, 대다수 국무위원 반대에도 계엄 의결 밀어붙였다…왜? - 매일경제
- “비상계엄, 택배 못 받나요?”...통행금지 없어 정상 운영 - 매일경제
- 與, 尹 탈당 결론 못 내려…‘국방장관 해임·내각 총사퇴’는 뜻 모아 - 매일경제
- 목동1~3단지 숙원 풀었다…초고층·초대형 재건축 속도 - 매일경제
- ‘시총 3위’ 까지 훨훨 난 리플...“한국이 주도?” - 매일경제
- 서리풀지구 인근 부동산 ‘들썩’…신분당선·위례과천선 교통 호재 몰려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