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비상계엄에 불쾌한 美, 한미 핵우산 회의도 취소했다

박현주, 김지선 2024. 12. 4.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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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유일한 동맹인 미국에도 사전 통보 없이 계엄을 선포하며 미국이 예정됐던 확장억제 강화 관련 회의를 취소하는 등 사실상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가 미 행정부 교체 시기에 한·미 동맹에 부정적 여파를 미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외교력 전반에 대한 타격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며 계엄을 발표하는 모습. 대통령실


美 "통보 못 받아…해제 결의 준수해야"


계엄령이 해제된 뒤 백악관의 첫 입장은 "사전에 통지받지 못했다"는 당혹감 섞인 반응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리카 앙골라 방문 중 한국의 계엄령 사태를 보고 받았다. 이후 미국은 각 급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 '계엄을 해제하라'는 국회 결의를 준수하라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미 국무부의 베단트 파텔 부대변인은 "국가의 법과 규칙은 준수돼야 하며 (계엄 해제 결의도) 같은 경우"라고 말했다. 인도·태평양 업무 총괄인 커트 캠벨 부장관도 "중대한 우려(grave concern)를 갖고 한국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법치에 부합하는 해결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날 새벽 4시 27분쯤 윤 대통령이 계엄을 공식 해제하자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우려스러운(concerning) 계엄령 선포에 대해 방향을 바꿔 국회의 표결을 존중한 데 대해 안도한다"고 밝혔다. "민주주의는 한·미 동맹의 근간"이라면서다. 미국이 한국의 국내 상황과 관련해 '우려스럽다'는 표현을 여러 차례 반복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5일(현지시간) 페루 리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중앙일보 김현동 기자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이 동원되는 데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며, 북한이 한국 내 혼란을 틈타 도발하는 상황을 강하게 경계한다"며 "캠벨 부장관이 언급한 '중대한 우려'라는 표현은 미국이 동맹의 국내 상황에 대해 쓸 수 있는 최대치의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북핵 대응을 위한 한·미 연합훈련의 차질로 이어졌다. 미 국방부가 먼저 4일부터 이틀 동안 미국 워싱턴에서 진행하려던 한·미 제4차 핵협의그룹(NCG) 회의와 제1차 NCG 도상연습(TTX)이 연기됐다고 밝혔다.

NCG는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대북 억지력 강화와 관련해 일군 가장 큰 외교적 성과로 꼽히는데, 바이든 행정부 교체 전 ‘피날레’ 격으로 진행하려던 해당 회의도 취소한 것이다. 미 국방부는 연기하는 이유조차 대지 않았다.


美, 물밑에선 "극도로 예민 반응"


미국은 물밑에선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외교 경로를 통해 직접적인 메시지 발신도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는 안보 우려를 가장 긴밀히 공유하는 미국과도 계엄 선포와 관련해 사전 및 사후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불만의 표시로도 볼 수 있다. 실제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에야 외교부 차원에서 각 재외공관에 "주재국에 한국의 계엄령 선포를 통보하라"는 지시 하달이 이뤄졌고, 이를 준비하는 와중에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면서 상황이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관련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미국이 계엄령 소식을 접하고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며 "다양한 경로로 한국에 경위와 향후 상황 전개에 대해 문의를 했는데, 제대로 된 대응이 전혀 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미국으로선 한반도의 소요 사태는 곧 직접적 국가 안보 위협으로 받아들일 여지가 크다.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의 예기치 못한 대응도 고려해야 하고, 이제는 북한과 사실상 조약 동맹을 맺은 러시아가 개입에 나설 가능성까지 따져야 하는 상황이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4일 오후 윤 대통령의 계엄령 해제와 관련 "중요한 조치"라고 평가하는 입장을 냈다. 이어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이 공통의 가치를 지지하고 지역 내 안정 보장을 위해 한국과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가운데, 우리는 한·미 동맹, 한국의 안보, 그리고 한국 국민에 대한 철통 같은 의지를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또 한국에 머무르는 자국민에게 "윤 대통령의 계엄 해제 발표 이후에도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라며 "잠재적 혼란에 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주한미군 측도 "장병 및 군무원과 그 가족들이 주한미군 기지 밖의 군집 장소에 방문하는 것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달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열린 제9차 한미 전략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트럼프 귀환 앞두고…외교 '올스톱'


이번 계엄 사태가 윤석열 정부가 쌓아온 외교적 자산을 상당부분 훼손했다는 우려도 크다. 곧 들어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첫 인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아직 입장을 내지 않았지만 측근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소셜미디어 엑스를 통해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세계 각국 정상이 트럼프 당선인과 앞다퉈 만나려 시도하고 주요국은 모두 전방위적인 대미 로비와 새로운 네트워크 발굴에 힘을 쏟을 때 한국의 외교만 제로베이스로 돌아가 모든 게 멈춘 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정상 외교는 일시 정지 상태다. 오는 5~7일 예정됐던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의 방한도 무기한 연기됐다. 주한 스웨덴 대사관은 이날 "계엄령 해제 결정을 환영한다"며 "모든 민주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차이는 민주적 절차와 법치주의에 따라 해결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은 스페인 출장 중 조기 귀국하고, 강인선 외교부 2차관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이 보류되는 등 고위급 외교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런 가운데 외교부 당국자는 4일 기자들과 만나 "본부와 전 재외공관에 국내 정치 상황에 동요되지 않고 맡은 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라는 지침이 나갔다"며 "주요국을 포함해 국제사회가 협력하는 외교 활동에 대해 차질이 없도록 계속 협력하고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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