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尹 셀프 쿠데타, 굴욕적 실패…'주술사에 현혹' 말 나올 정도"
" "윤석열 대통령의 셀프쿠데타(self-coup) 시도가 극적으로 실패했다." "
미국 외교지 포린폴리시(FP)가 3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해제하자 내린 평가다. FP는 이번 사태를 현직 지도자가 독재 권력을 탈취하는 '친위 쿠데타(autogolpe·권력자가 더 큰 권력을 얻으려 스스로 벌인 쿠데타)'로 규정했다.
매체는 "궁지에 몰린 윤은 자기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비상한 시도로 계엄령을 선포했다"면서 "하지만 국회가 이를 거부한 후, 셀프쿠데타는 굴욕적인 실패로 끝났다"고 평했다. 이어 "이번 위기는 윤의 탄핵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영국 BBC는 "윤의 성급한 행동은 분명 한국을 놀라게 했다"며 이번 사태가 2020년 미국 대선 결과 불복에 따른 미 의회 점거 사태(2021년 1월 6일)보다 한층 심각하게 한국의 민주주의 평판을 더 손상할 수 있다고 짚었다. 리프-에릭 이즐리 이화여대 교수는 BBC에 "윤의 계엄령 선포는 법적 권한 남용이자 정치적 오산이다"면서 "불필요하게 한국의 경제와 안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평했다. 이즐리 교수는 "윤은 그동안 스캔들 등에 맞서느라 필사적이었는데, 이제 모든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한국 정치 사정에 밝은 미네기시 히로시(峯岸博) 니혼게이자이신문 편집위원은 4일 칼럼에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통해 자신을) 지지해 온 보수층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라며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도) '이 사람(윤 대통령)은 못 따라가겠다고 느꼈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내에선 국방장관이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했다는 일부 보도도 있지만, '대통령이 주술사에게 현혹되지 않았나'라며 황당해하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대통령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외신들은 향후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통해 정권을 살리려는 듯했지만, 그 대신 그는 자신의 몰락을 거의 확실하게 만들었다"며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국회는 아마도 그를 탄핵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4일 본지 사설을 인용해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후 대통령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의심스럽다"면서 "대통령 탄핵에 대한 논의는 불가피해졌다"고 전했다.
NYT "한국 민주주의, 이 폭풍 이길 것 확신"
외신들은 계엄 사태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시험대에 올랐지만, 단시간 내에 안정을 되찾은 모습도 함께 전했다. AFP통신은 '한국의 정치적 격변은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회복력을 보여줬다'는 기사에서 "계엄령 선포는 정치 변혁의 모범으로 칭송받는 한국에서도 민주주의가 취약하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셀레스트 애링턴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AFP통신에 "(계엄령이) 민주주의에 약간의 균열을 냈다"면서도 사태가 빨리 무마됐다는 사실이 "민주주의의 회복력과 힘에 대한 희망을 준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의 한인들은 서울에서 벌어진 상황들을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라는 기사에서 현지 한인들 반응을 소개했다. 버지니아주(州) 애넌데일에서 보험회사를 운영하는 김종준(56)은 계엄령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고 NYT에 전했다. 그는 1998년 대학원 진학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뒤 이전만큼 고국의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이날 시위 장면을 보며 과거 전두환 정권에 맞서 거리로 나섰던 1980년대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정치가 왜 80년대로 돌아가는지 모르겠다"며 현재 한국 정치 상황이 "부끄럽다"고 했다. 다만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이 폭풍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도 강조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추악한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 상태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면서 "정치적 양극화가 깊이 자리 잡았고, 반대 진영은 서로를 필멸의 원수로 여긴다"고 꼬집었다. 이어 매체는 "이번 계엄 실패는 국가가 반성하고 재정비할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더 큰 분열과 적대감을 조장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외신 "북한·중국, 계엄 이용 가능성"
이번 계엄 사태가 한국의 외교 등 대외관계에 미칠 영향에 주목해야 한단 지적도 나왔다. 메이슨 리치 한국외대 교수는 로이터통신에 "이번 사태는 한국을 매우 불안정해 보이게 한다”며 "금융·통화 시장과 한국의 외교적 지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닛케이의 미네기시 위원은 "윤 대통령의 거취에 관계없이 한국 정부가 기능 부전에 빠지는 사태는 피할 수 없다"며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도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 매체는 계엄 상황을 우려한 일부 자국민들이 한국 여행을 단념한 사례가 있었다고도 전했다. NHK는 "하네다 공항 국제선 출발 로비에서 한국 여행 예정이었던 부모 자녀 여행객이 공항까지 왔지만 결국 한국 행을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한·미 관계가 계엄을 계기로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NYT는 "약 3만명의 미군이 주둔하는 한국은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가 경쟁하는 지역에서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라며 "윤 대통령의 움직임이 바이든 행정부를 놀라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어 "민주주의 대(對) 독재를 외교의 틀로 사용해 온 바이든은 북한·중국·러시아에 대응할 방어벽으로 한국과 군사 동맹을 강화해 왔다"며 "바이든이 이번 위기를 어떻게 처리할지 놓고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북한·중국 등이 이번 사태를 자국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줄리언 보거 가디언 선임기자는 윤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을 계엄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을 두고 "자기실현적 예언이 될 위험이 있다"면서 "김정은은 한국의 약점을 이용하려 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북한이 공격적으로 움직이면 윤석열 대통령과 군대에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다"고 짚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생각이 같고 강력한 동맹 중 하나인 한국이 모범적이지 못한 민주주의를 드러냈다"며 "중국이 이 사실을 놓고 서방보다 자국 시스템의 이점을 과시하는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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