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불발된 '부산행' 플라스틱 국제협약, 남은 쟁점과 전망은?

그리니엄 김지연 2024. 12. 3.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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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 협상 속도전에 노골적 불만 제기... 침묵 지킨 미국

[그리니엄 김지연]

 2일 오전 3시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플라스틱 국제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 본회의에서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 의장이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사봉을 내려놓으며 추후 회담 재개를 알리고 있다.
ⓒ Kiara Worth, IISD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협약 성안이 2년간의 치열한 협상에도 불구하고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무산됐습니다.

국제사회는 이른바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2024년까지 5차례의 회의를 거쳐 만들기로 결의한 바 있습니다. 이에 지난달 25일부터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이하 5차 회의)에서 협상 성안이 기대됐습니다.

그러나 각국 대표단은 5차 회의에서 플라스틱 생산감축 등 주요 쟁점에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회의는 폐막일 하루 넘긴 2일 새벽 3시에 마무리됐습니다.
협상위는 2025년 추가 회의를 열어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습니다.

부산서 열린 플라스틱 회의, 교착 상태 타개 못한 까닭은?

연내 협약 성안이 어려울 것이란 우려는 개막식 당일(11월 25일)부터 회의장을 휩쓸었습니다. 루이스 바야스 발비디에소 의장이 제시한 비공식 문서(3차 초안)를 협상 기초로 두자는 협의에만 하루가 꼬박 걸렸기 때문입니다. 해당 문서를 기반으로 회의를 진행하자는 제안에 최대 플라스틱 생산국인 중국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며 협상이 순조로울 것이란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왔습니다.

이후 논의가 거듭됐으나 협상 성과는 의장 초안을 2차례 추가로 내놓는데 그쳤습니다. 법률적 문안을 다듬기 위해 설치된 법률문안그룹(LDG)은 단 한 문장도 검토할 수 없었습니다. 협상이 교착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마지막 본회의 현장을 취재한 결과, 쟁점은 역시 생산감축을 둘러싼 갈등이었습니다.

사우디 등 산유국 협상 속도전에 노골적 불만 거듭 제기

"우리는 플라스틱 자체를 종식시키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다.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시키기 위해 여기 왔다."

세계 5대 산유국인 쿠웨이트의 대표단은 폐막식 본회의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쿠웨이트를 포함해 사우디아라비아·이란 등 산유국들은 같은 의견을 거듭 피력했습니다. 플라스틱 생산에 대한 규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사우디 대표단은 "우리는 세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기) 왔다"면서도 "제3조와 제6조에 대한 논의는 (이 자리에서는) '절대 끝나지 않는(Never Ending)' 쟁점"이라고 말했습니다. 3조는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조항으로, 쉽게 말해 플라스틱 소비에 대한 규제입니다. 6조는 플라스틱 생산을 다루며 생산감축·유지·관리 등의 쟁점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즉, 산유국들은 플라스틱의 소비·생산 등 자국의 산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조항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반복한 것입니다.

회의 진행 방식에 대한 산유국들의 불만도 컸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협상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며 자국의 입장이 충분히 논의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사우디 대표단은 발디비에소 의장이 제시한 초안들에 대해 "노력은 감사하나 (이같은 과정은) 대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특히, 여러 선택지가 의장 초안에서 삭제된 점을 지적했습니다. 자국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러시아 또한 절차를 문제 삼았습니다. 러시아 대표단은 각국의 협상이 다 끝나지 않았는데도 의장 초안이 제출됐다고 말했습니다. 산유국들이 협상이 빠르게 진행되는데 불만을 노골적으로 피력함에 따라 추가 회의에서도 협상 지연이 반복될 거란 우려도 나옵니다. 인도 대표단 역시 "플라스틱이 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100여개국은 5차 회의에서 플라스틱 생산감축을 골자로 한 ‘파나마 성명’에 지지했다. 또 다른 국가들 역시 우려 화학물질의 단계적 퇴출을 골자로 한 멕시코의 제안에 동참했다. 한국은 두 제안에 모두 동참하지 않았다.
ⓒ 그리니엄
"플라스틱 협약 지연, 오염까지 늦출 순 없어"

파나마 등 일부 국가는 산유국들의 협상 태도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파나마 대표단은 "회의를 연기한다고 (플라스틱) 위기까지 연기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밤샘 끝장 논의를 촉구했습니다. 그는 "(회의를) 6개월 연기한다면 그사이 발생하는 (플라스틱) 오염은 누가 책임질 수 있냐"고 호소했습니다. 가나와 노르웨이 대표단 또한 밤샘 협상을 촉구했으나, 결국 협상은 추가 회의(INC-5.2)로 넘어갔습니다.

추가 회의 시점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립니다. 산유국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란 대표단 역시 하반기 7~8월경을 제시했습니다. 반면, 유럽연합(EU)은 내년 상반기를 요구합니다. 프랑스 대표단은 구체적으로 2025년 6월 남부 니스에서 개최될 '제3차 유엔해양콘퍼런스'에 맞춰 공동 개최를 제안했습니다.

한편, '플라스틱 협약 우호국 연합(HAC)' 회원국인 르완다·멕시코 등은 야심찬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대한 여러 국가의 지지를 상기시켰습니다. HAC는 공동의장국 노르웨이·르완다를 포함해 강력한 협약을 지지하는 68개국이 가입해 있습니다.
플라스틱 생산감축 등 강한 협약 마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폐막식 본회의에서 르완다 대표단장 겸 HAC 공동의장인 줄리엣 카베라는 생산감축 목표 수립 등 요구사항을 피력했습니다. 이어 그는 야심찬 협약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기립박수를 촉구했습니다. 직후 회의장에서는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멕시코 대표단 또한 "세계의 강력한 목소리를 모아내서 영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95여개국의 이름을 순차적으로 불렀습니다.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담은 제안서에 동참한 국가들입니다. 멕시코는 해당 제안서를 지난달 30일 제출했습니다. 한국은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침묵 지킨 미국…산유국 설득할 체인저로 떠오른 중국"

미국의 경우 5차 회의 기간 침묵을 지켰습니다. 별도 성명이나 발표 역시 없었습니다. 회의 폐막 직후 백악관과 국무부 모두 별도 발표를 내놓지 않았습니다.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 폐막 직후 각종 발표를 내놓는 것과 대비되는 행보입니다.

미국은 5차 회의 중 발표된 여러 생산감축 성명에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18일 백악관 관계자들은 환경단체들과 비공개 회의를 통해 플라스틱 생산감축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미국 정부의 입장 변화의 배경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꼽힙니다.
중국의 경우 단계적 접근 방식을 옹호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궈팡 중국 생태환경부 차관은 폐막 본회의에서 국가간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플라스틱의) 전체수명주기를 다루는 더 실용적이고 균형잡힌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 대표단은 추가 회의에서 협약이 성안되기 위해서는 중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지난 1일 밤 부산 벡스코 플라스틱 국제협약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 본회의장에서 르완다 대표단장 겸 HAC 공동의장인 줄리엣 카베라의 지지 촉구에 화답해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
ⓒ 그리니엄
"협상 지연, 놀라운 결과 아냐"…향후 전망은?

장용철 충남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2일 그리니엄과의 인터뷰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협상이 지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은 이미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발디비에소 의장의 새로운 초안이 거듭 발표되며 협약 성안에 대한 기대가 올라갔던 만큼, 다소 아쉬운 결과라고 장 교수는 평가했습니다. 장 교수는 "올해는 골격협약으로 원칙적 합의 일부를 담고 구체적인 내용은 국가별 협상을 통해 만들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습니다.

장 교수는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전망에 대해 "지속가능한 수준으로 규제하고 관리하자는 수준으로는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낙관적 견해를 밝혔습니다. 생산규제가 최대 쟁점이긴 하지만, 해당 조항을 아예 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그의 말입니다.

그는 "(생산규제를) 빼자는 건 (플라스틱 오염에) 가속페달을 밟고 나가자는 말"이라며 "미래세대에 그럼 부담을 지우는데 모두가 동의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 역시 현재까지 협약 자체에 반대하는 국가는 한 곳도 없었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후테크 전문매체 그리니엄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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