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변화에도 무너지지 않는 식욕 조절, 아보카도가 정답 [쿠킹]
자잘하게 아픈 게 일상일 때, 또는 크게 아픈 후 컨디션이 예전 같지 않을 때. 이때의 문제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는 거죠. 영양사 경력 20년이 넘는 전문가도 이런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는 데 5년이 걸렸다고 해요. ‘밝은영양클래식연구소(BNCL)’의 정성희 소장이 치열하게 겪은 경험담입니다. 스스로 임상 실험하며 염증 수치는 제자리로, 체중은 20㎏ 감량한 정성희 소장은 아픈 후에야 음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고 하죠. 건강관리에 진심인 영양사가 ‘애정’하는 식재료는 어떤 것들일까요?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었는지, COOKING 〈나를 바꾸는 음식〉에서 확인해보세요.
나를 바꾸는 음식 ⑤ 아보카도
건강관리의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내 대답은 이렇다. “결승선에 도착한 것 같은데 어느새 출발점에 와있는 일의 반복”이라고. 게다가 나의 경우는 40년 세월 동안 쌓인 관성을 바꾸는 일이었다. 살아온 삶의 기간 대비, 그중 10%에 불과한 기간 동안 체성분의 20%를 변화시키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른 사람’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나만의 식습관을 꿋꿋이 잘 이어 가던 중에도 노력이 무색하게 ‘참 잘 먹는 나’가 무서운 기세로 툭 튀어나오곤 했다. 외부 행사나 모임에 갔을 때도 그렇지만, 특히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호른몬의 변화는 생각보다 그 힘이 셌다.
물론 월경 전 증후군의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생리통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픈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통증은 없지만 무서운 기세로 잘 먹는 사람도 있다. 나의 ‘잘 먹음’의 주기는 생리를 시작하고 완료하는 주기와 흐름이 비슷했다. 생리를 막 시작하던 시절에는, 그날이 가까워지면 만화책을 20권씩 빌려 읽으며 콜라와 사이다, 스낵 2봉지를 뚝딱 해치웠다. 20대도 비슷했다. 생리 주기에 참석한 동아리 행사 뒤풀이는 곧 식욕 풀이의 시간이었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식욕을 조절하는 방법
그나마 출산 때는 조금 양상이 달랐다. 옥시토신의 행복 샤워 덕분이다. ‘애정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옥시토신은 출산 직후와 수유기에 왕성하게 나온다. 출산의 고통을 순간적으로 잊게 하고 엄마가 아기와 유대감을 형성하도록 돕는 호르몬이다. 이때 식욕도 어느 정도 조절되는데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를 정도로 마음이 편하다고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이 식욕을 줄여줘, 빠르면 산후 3주와 6개월 사이에 출산 전 몸매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 반대도 있다. 임신 기간 생리를 하지 않으며 일정하게 유지되던 여성호르몬이 출산 후 원래 대로 작용하며 식욕이 왕성해지는 경우다. 나는 후자였다. 출산 시 잠잠했던 식욕을 몸조리 때 든든히 채웠고, 모유 수유를 하며 밤잠이 부족한 채로 몇 개월을 보낸 나는 더 빨리, 더 많이 먹게 됐다.
건강관리를 몇 년간 지속하며 뼈저리게 실감한 부분이 이 지점이었다. 내 체질을 받아들이고 평생 관리해야 한다는 점,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달리는 식욕을 조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진짜 배고플 때까지 공복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어떤 방법’이 필요했다. 내가 찾은 방법은 건강한 지방 ‘아보카도’가 주는 포만감이었다.
영양밀도 높은 자연의 지방 아보카도
지방이 많이 포함된 식재료는 다양하지만, 아보카도의 지방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의 지방이다. 또, 동일한 양 대비 다양한 영양소를 포함하고 있어 영양밀도가 높다. 주 영양소인 지방 이외에도 단백질과 비타민, 그리고 미네랄에 풍부한 파이토케미컬과 식이섬유 등이 식사의 품질을 올려주기 때문이다.
간단하게는 밥에 간장과 소금, 아보카도와 계란프라이를 넣고 쓱싹 비벼 먹는 것만으로 배부른 식사가 된다. 통밀 사워도우 빵을 살짝 구워 슬라이스한 아보카도에 소금・후추를 뿌리고 바질이나 루꼴라를 올린 다음 레몬즙과 올리브유를 뿌려서 먹어도 맛있다. 또는 시금치·버섯·달걀을 넣은 오믈렛에 아보카도를 보기 좋게 장식해 먹기도 한다.
강도 높은 운동을 할 때 추천하는 레시피도 있다. 아보카도 과육에 토마토 과육과 적양파를 다지고 레몬즙·소금·후추를 넣어 만든 과카몰리를 닭 안심살 오븐구이에 올려 먹으면 포만감이 좋아 공복 시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에너지를 올리고 싶은 날에는 스무디를 만든다. 아보카도· 시금치·레몬·소금·아몬드 음료를 넣은 스무디다. 아보카도의 묵직한 식감은 스무디로 만들면 한결 부드러워진다. 이때 녹색 채소(시금치나 케일)와 레몬즙을 추가하면 신맛·단맛·쓴맛의 조화가 좋아지고 영양소 흡수도 잘 된다. 단맛이 더 필요한 사람은 소화 효소가 많은 파인애플을 추가하면 된다.
먹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
무엇보다 아보카도는 내게 먹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했다. 건강한 지방이 포만감을 유지하게 돕고, 항산화력이 체내 활성 산소를 감소시켜준 덕에 공복을 편안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호르몬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식욕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의지로 버티는 게 아니라, 몸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서포트하는 것이 핵심이다.
먹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왜 중요할까? 이때 우리 몸이 쌓여 있는 체지방을 꺼내 쓰기 때문이다. 영양학에서도 장기단식(long term fasting)은 체내 지방을 분해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며 생명을 유지하게끔 우리 몸이 디자인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나 또한 아보카도를 섭취하며 시간을 정해 식사하는 습관을 들였다. 14~16시간 공복을 유지하고, 8~10시간 사이에 두 끼에서 세 끼를 먹는 식이다. 마지막 식사는 오후 6시 안에 끝내고 11시 전에 잠자리에 든 다음, 다음 날 아침은 8시에 먹는다. 특히 생리 전 증후군으로 과식하거나, 식습관이 무너져 부종이 생기거나 그로 인해 체지방이 늘어났을 때, 생리가 끝남과 동시에 이 식습관을 철저히 지켜나갔다.
진짜 배고픔을 알아차리기까지
인도의 전통의학 체계인 아유르베다는 “진짜 배고플 때 먹는 것, 자주 먹지 않는 것이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또 하루 24시간의 리듬, 계절과 생애주기에 맞는 건강관리가 중요하다고도 강조한다. 자연의 주기와 내 몸의 흐름을 맞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의 생애주기는 사춘기(생리 시작)를 시작으로 가임기(호르몬 활동 왕성)·출산기(호르몬 변화 체감)·갱년기(완경)까지 큰 굴곡을 그린다. 매달 찾아오는 생리 주기만 해도 신체 구성이 변하고 호르몬에 의한 마음의 변화도 크다. 그러니 호르몬에 휘둘리는 일도, 진짜 배고픔을 구별하기까지 여러 고비를 넘어온 일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껍질이 푸릇한 아보카도는 아직 제맛을 보여주지 않는다. 갈색빛이 그윽하게 무르익을 때까지 며칠은 기다려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몸도 마찬가지다. 진짜 배고픔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까지, 내 몸이 변화할 때까지 스스로 충분히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정성희 영양사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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