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억 원 포기하고 대한민국은 무엇을 얻었나
다른 시각에서 정부 조세재정정책의 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세금과 예산은 민주정치의 전제이자 결론이며,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말>
[최기원 기자]
▲ 가상화폐 비트코인 가격이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는 가운데 11월 21일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강남점 현황판에 비트코인 실시간 거래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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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인 제도 정비 필요', 참으로 궁색한 변명이다. 2020년 법이 통과된 지 4년이 지났는데도 가상자산 소득에 과세할 준비를 하지 못했단 말인가? 미국·영국·독일·일본·호주 등 주요국 대부분이 이미 과세하는 소득에 대한민국만 세금을 못 매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사실이라면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담당자들을 모조리 문책하고, 제도 정비를 위한 입법을 게을리한 21대 국회의원들을 청문회에 불러세워 호되게 꾸짖을 일이다.
정부와 양당의 국민 기만행위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2년 전 이 시점에 양당이 2년 과세 유예안을 통과시킬 때도 명분은 '제도 정비'였다. 2021년 기재부와 국세청이 여러 차례 가상자산 과세가 가능했다고 밝혔음에도 말이다.
당시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정감사에서 "내년부터 과세가 불가피하다"며 "국회에서 특금법을 개정해 거래소별로 과세할 수 있는 기반도 갖춰져 내년부터 과세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해 추경호 기재부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며 과세가 불가능하다고 했고 민주당도 동조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기재부와 양당은 여전히 제도가 미비해서 과세할 수 없다고 한다. 해외 거래소 도피 우려? 2년 전에도 다 나왔던 얘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2년 전 과세 유예의 또 다른 주요 논거는 '투자자 보호 조치 없이 과세부터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투자자를 보호하는 법률 같은 것이 없다 해도 과세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건 투자자의 논리일 뿐 복권·뇌물 같은 보호하지 않는 불법 소득이나 상금 등의 소득에도 국가는 잘만 과세하고 있다.
그래도 백번 양보해 투자자 보호 조치가 선결 조건이라고 인정할 경우, 지난해 7월 18일 국회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시행령도 만들었고 올해 7월부터는 본격 시행되고 있다. 보호조치까지 다 한 것이다. 그런데도 과세는 안 된다고 한다.
금투세처럼 하락장에서도 상승장에서도 과세하면 안 된다는 마법의 논리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2년 전 코인 시장이 한참 하락장이었던 시절에는 절망 속에 빠진 투자자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라며 과세는 안 된다고 하더니, 모처럼 상승장인 요즘에는 좋을 때 정부가 찬물을 끼얹으려 한다고 힐난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했던 말도 뒤집으며 무슨 논리든지 만들어내는 코인 투자자들과 양당 조세 정치의 생리를 조소하지 않을 수 없다. 2026년에는 또 무슨 논리를 만들어 낼지 자못 궁금해진다.
황폐해진 가상자산 시장
이렇게 과세 무풍지대로 방치되면서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투전판마냥 부풀어 올랐다. 금융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가상자산 시가총액은 23조 원이었는데, 2024년 상반기 시가총액은 55조 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2020년 100만 명을 넘어선 이용자 수는 2024년 상반기 778만 명까지 늘어났다. 일평균 거래대금은 6조 원으로 코스피의 3분의 1 수준에 도달했다.
체이널리시스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코인 투자자 실현이익은 1.4조 원으로, 과세를 했다면 3000억 원 정도의 세금을 거둘 수 있었다. 이 세금을 포기하고 대한민국은 무엇을 얻었나? 확실히 하나 얻은 것은, 도박판과 다름없는 시장 질서와 '김치코인'의 난립 속에서 황폐해진 코인 시장과 늘어난 범죄피해자다.
▲ 2022년 5월 13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모습.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자매 스테이블 코인 테라USD(UST) 폭락으로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비트코인은 9개월여 만에 4000만 원 아래로 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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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 10위 안에 드는 대형 코인, 다른 자산에 의해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스테이블 코인조차도 한 방에 붕괴할 수 있음이 드러났다. 이어 전 세계 3위권 코인거래소 FTX도 유동성 부족으로 파산했고, 창업자 샘 뱅크먼 프리드가 고객의 투자금 수십억 달러를 빼돌린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러한 대형 코인이나 거래소의 파산 위험이 상존한다는 점은 전체 금융시스템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피해의 범위가 투자자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전반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과 국가 및 투자은행과 국부펀드들도 코인 투자를 늘려나가면서 기존의 금융 영역 및 실물경제와의 연계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변동성이 높고 투명성이 부족한 코인 시장은 '일부의 재앙'이 아닌 '모두의 재앙'이 될 우려를 안고 있다.
인구의 15%가 코인에 투자할 때까지 느슨한 규제와 비과세로 방치한 세계 3위 코인 시장 대한민국은 더더욱 그러하다. 현재 개당 1억 3500만 원까지 치솟은 비트코인 가격은 거품일까 아닐까. 2년 전 가격은 2000만 원 남짓이었다.
가상자산이 인류에게 무슨 이익을 줬나
가상자산의 범람은 기후위기 대응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가격상승에 따라 채굴 수요가 올라가면서 전기 소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케임브리지 대안금융센터(CCAF)는 비트코인 채굴이 2023년 전 세계 전기 수요의 0.2~0.9%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그리스나 호주 전체의 전기 소비량과 같은 수준이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은 가상자산 채굴이 연간 미국 전기 소비량의 0.6~2.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에서도 시베리아 지역의 채굴이 폭증하면서 전체 소비량의 1.5%까지 차지하는 데 이르자 채굴 금지 조치와 같은 규제책을 내놓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가상자산 채굴 전기료에 대해 소비세 30%를 추가 부과하는 세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렇게 코인을 둘러싼 온갖 사회경제적 해악은 떠올라도, 인류에게 어떤 이익을 주고 있는지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블록체인 기술? 코인 시장에 흘러 들어간 수천조 원의 돈이 블록체인 기술을 얼마나 발전시켰는가. 우리 삶을 무엇 하나 향상시킨 기술적 혁신이 있었는가. 탈중앙적 화폐? 피자 하나 사기 힘든 거래 수단이, 1년 사이에 가치가 10배씩 널뛰기를 하는 코인이, 돈세탁과 재산 은닉 수단으로나 활용되는 자산이, 온갖 협잡과 투기로 얼룩져 극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체제가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설령 블록체인 혁신이 가능할지라도 '가상자산 도박장'을 통해 투자금을 모금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만한 돈이 재생에너지에 투자될 수 있었다면, 교육에 투자될 수 있었다면, 의료에 투자될 수 있었다면, 과학기술에 투자될 수 있었다면 인류 공통의 삶과 미래가 훨씬 나은 방향으로 움직였을 것이다.
조세정책의 핵심 기능은 어떤 경제활동을 우대하고 제한할지 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일이다. 정부가 세금을 깎아 준다는 것은 사회가 해당 경제활동을 장려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아예 한 푼도 걷지 않겠다는 건 정부가 전적으로 밀어주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지금의 가상자산이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할 합리적 이유가 있는가? 5년 전 코인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처럼 말했던 이들의 비전 중 하나라도 실현된 것이 있는가? 결국 지난 5년 동안 누가 이익을 보았는가? 자산 소유자의 이해와 조세정책은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그것이 제대로 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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