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미운털 이때 시작됐다…文 임명한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 왜
“감사원 73년 역사상 최초의 내부 출신 원장으로 능력을 인정받고 신망이 두터워 기대가 큽니다.”
2021년 11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최재해 감사원장에게 임명장을 건네면서 한 말이다. 전임자였던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정치 도전을 시사하며 임기 도중 사퇴하자 정치적 중립성에 초점을 두고 발탁한 인사였다.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도 국회에서 최 원장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하면서 “직무를 무난히 수행할 능력과 자질을 갖췄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불과 3년 만에 헌정 사상 최초로 감사원장 탄핵소추안을 2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했다. 4일 탄핵소추안 표결도 예고했다. 민주당이 최 원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건 왜일까.
감사원 감사위원 인사권 문제가 시발점이었다. 2022년 3월 윤석열 대통령 대선 승리 직후 공석이던 2명의 감사위원 인사 문제가 신·구 권력 간 현안으로 떠올랐다. 문 전 대통령 측에서 “임기 내 인선”이라며 추천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시사하자 윤 대통령 측에선 “새 정부에 넘겨야 한다”고 맞섰다.
감사원은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원회 업무보고에서 “현 정부와 새 정부가 협의해서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이 전례에 비춰 적절하다”며 윤 대통령 측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당시 최 원장을 문재인 정부에 우호적인 인사로 판단했던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감사위원은 감사원장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기 때문에 감사원장이 제청을 거부하면 임명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 전 대통령은 결국 2022년 4월 윤 대통령 측과 협의 후 이남구 감사원 제2사무차장과 이미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감사위원 임명안을 재가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을 겨냥한 감사가 잇따르면서 갈등이 가시화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국가 통계조작, 사드 배치 지연 의혹 등 주요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 건 감사원이었다. 이후 검찰 수사 의뢰와 기소가 공식처럼 이어졌다.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서는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통계 조작 사건에서는 김수현·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정책 라인이 대거 재판에 넘겨졌다.
최 원장은 “정치 보복”, “표적 감사”라는 야당의 비판에 강하게 반박해왔다. 그는 2022년 10월 국회에서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관련해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에게 서면질의서를 발송한 것을 두고 “제가 결정했다”며 “정치 보복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런 최 원장을 향해 “유신 공포정치를 연상시킨다”(이재명 대표), “대통령의 사냥개”(윤건영 의원)라며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최달영 감사원 사무총장은 2일 감사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국가가 생명을 보호하는 의무에 소홀한 것”이라며 “정치감사로 규정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대통령실·관저 이전에 대한 부실 감사 의혹을 두고 최 원장과 야당이 또 충돌했다. 감사원은 지난 9월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 과정에 직권남용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야당 의원들은 “감사원이 감사 대상을 축소했다. 의혹을 은폐했다”(박균택 의원), “공사 과정에 위법이 있으면 관련자를 고발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박은정 의원)며 감사원에 내부 회의록 제출을 요구했다. 최 원장은 “관행에 따라 여야 합의가 있어야 한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회의록 제출 거부와 위증 등을 이유로 최 원장과 최달영 사무총장을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민주당은 앞서 2022년 7월 최 원장이 국회에서 “감사원은 (대통령 국정운영의) 지원 기관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두고 “직무상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며 사퇴촉구 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최 원장은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출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감사원이 대통령의 국정을 감시하는 기관은 맞지만, 국정을 방해하는 기관은 아니다”며 “헌법 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정치적 탄핵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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